↑ SBS 드라마 '온에어' |
드라마는 드라마가 가장 잘 안다. 드라마 제작소의 이면을 속속들이 파헤친 SBS 드라마 '온에어'는 2008년 드라마계의 맥을 정확히 짚어냈다.
작가 서영은(송윤아 분)과 PD 이경민(박용하 분), 톱스타 오승아(김하늘), 매니지먼트 사장 장기준(이범수 분) 사이에서 얽히고설킨 보이지 않는 기세싸움을 비롯해 제작현실과 구조적인 문제 등 우리나라 드라마계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를 낱낱이 파헤쳤다.
드라마 '온에어'의 극본대로 전개됐던 올해 드라마 상황을 총정리 해봤다.
# 대본 집필하는 작가vs 편집권 가진 연출가
작가가 아이디어 공장에서 드라마 대본을 '생산'하면 이를 예쁘게 '포장'하는 것은 연출가의 몫이다. 때문에 피디는 좋은 대본을 받기 위해, 작가는 '제 새끼' 같은 작품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인다.
'온에어'에서 작가인 영은과 PD 경민도 연일 티격태격 다투는 모습을 보여줬다. 경민은 빨간펜을 들고 동그라미를 치며 대본 검사를 하는 등 압력을 넣었고, 영은은 이에 맞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애썼다.
SBS '워킹맘'은 작가와 연출가와 알력싸움이 결말문제를 통해 드러난 케이스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직장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워킹맘'은 대본 끝부분을 싹둑 잘라 편집해,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결말로 끝나 논란이 됐다. 시청자들도 가정을 위해 결국 일을 포기한다는 황당한 엔딩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 드라마를 쓴 김현희 작가는 "애당초 여주인공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조건을 내걸고 계속 회사를 다니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편집 과정에서 이 부분이 빠져 허무한 결말이 됐다"고 말해 편집방향을 놓고 의견차가 컸음을 드러냈다.
# 캐스팅을 둘러싼 알력싸움
↑ 성현아(왼쪽)과 강성연 ⓒ임성균 기자 |
'온에어'는 대형 기획사의 배우 캐스팅 관여 문제, 배역을 따내기 위한 배우들의 기싸움, 외주제작사와 PD의 촌지 문제 등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극중 매니지먼트사 대표인 진상우(이형철 분)가 드라마 제작에 투자하면서 자사 배우인 체리(한예원 분)를 출연시키려는 장면은 올해 드라마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5일 종영한 SBS 드라마 '타짜'에서는 탤런트 성현아(33)가 '타짜'의 정마담 역으로 캐스팅됐다고 알려졌으나 갑자기 강성연(32)으로 교체됐다. 강성연은 '타짜'의 제작사 올리브나인 소속 배우인 것이 밝혀져 논란이 불거졌다. 일각에서는 드라마 '온에어'의 재현이라며 내막을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올리브나인 측은 "정마담의 비중과 스토리라인이 달라지면서 캐스팅에 혼선을 빚게 됐을 뿐, 한 번도 자사 제작 드라마의 주요 배역에 소속 배우를 기용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성현아는 "들어오는 일에 감사하고 열심히 하려는 내 모습이 바보스럽다. 이번 일은 내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고 답답한 심정으로 토로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강성연도 의도하지 않게 상대 배우의 역할을 뺏은 연기자로 낙인찍히면서 마음고생을 해야만 했다.
# 제작진-작가-출연진 간의 불화
"지금 나보고 오승아 입맛에 맞게 대본 다시 써라 그 말이에요? 감독님 지금 제 정신이세요?"
'온에어'에서 똑부러지는 작가 영은은 PD 경민에게 이렇게 쏘아붙였다. 출연진과 제작진 작가 사이에도 갈등이 있기 마련. 그러기에 작가와 배우는 등장인물의 성격, 대사 행동을 충분히 상의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의견합치를 이루지 못할 경우 드라마 제작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치닫기도 한다.
인기리에 방송 중인 MBC 월화드라마 '에덴의 동쪽'은 주연배우 중 한명이었던 이다해(24)가 하차를 결국 선언하면서 갈등이 전면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이다해는 "저의 역할이 이유 없는, 자기답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 바보처럼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토로해 배역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다.
지난 24일 열린 '에덴의 동쪽' 대본연습에서는 출연진이 나연숙(64) 작가에게 대본과 캐릭터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불만을 털어놓았고, 결국 고성으로 이어져 파행으로 치달았다. 이날 연습에는 이홍구 작가에게 바통을 넘기고 뒤로 물러났던 나 작가가 복귀했고, 주연배우 송승헌(32)과 이다해가 빠진 상태에서 진행됐다.
"캐릭터를 이해할 수 없다""진행이 잘 납득되지 않는다"는 출연진의 불만에 나 작가는 "나에게 도전하는 것이냐"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고 결국 그대로 연습실을 나갔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에덴의 동쪽' 은 다음날인 25일로 예정됐던 촬영이 전면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제작진은 "25일 촬영이 취소된 것은 대본상 수정이 필요했을 뿐"이라며 "대본 연습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작가와 출연 배우간의 갈등이 어떻게 해결될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