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부터 문정현 감독, 안해룡 감독, 고영재 PD, 박정숙 감독, 양익준 감독, 이충렬 감독 ⓒ임성균 기자 |
'워낭소리'(감독 이충렬)의 30만 관객 돌파, '똥파리'(감독 양익준)의 로테르담영화제 타이거상 수상, '낮술'의 미국 개봉….
독립영화의 잇단 경사 속에서도 감독들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이들은 한국 극장 상영 시스템과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사업, 정부 정책 등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분명한 대립각을 세웠다.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에서 '독립영화가 살아야 한국 영화가 삽니다'라는 주제 아래 '독립영화의 현실을 거정하는 감독모임 긴급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과 제작자인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총장,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동백아가씨'의 박정숙 감독,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안해룡 감독, '할매꽃'의 문정현 감독이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들은 영화진흥위원회의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사업 폐지를 한 목소리로 우려했다. 독립영화의 홍보 마케팅 비용 지원이 끊긴 셈이다.
우여곡절 끝에 개봉해 30만 관객이라는 독립영화 사상 최대 관객을 불러모으며 여전히 흥행중인 '워낭소리'는 영진위 개봉 지원사업의 마지막 작품으로 4000만원의 개봉지원금을 받아 힘겹게 개봉할 수 있었다.
개봉지원사업 폐지 "아쉽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안해룡 감독은 "개봉 자체가 힘든 과정이었다. 개봉 준비에 1년 이상이 걸렸다"며 "독립 영화를 정식으로 개봉하려면 광고 등의 준비에 3000∼4000만원이 소요되는데 제작비를 상회하는 금액이 되곤 한다"고 토로했다.
안 감독은 "'워낭소리'도 지원작이지만 히트하는 바람에 지원을 안해줘도 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돈 잘 버는데 무슨 지원이냐는 것이다"며 " 지금의 현실이 독립영화의 현실 자체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은 "처음으로 개봉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작품이 됐다"며 "다행히 좋은 기회로 개봉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내 보드에는 돈을 줘야 할 20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고영재 사무총장은 "보통 독립영화의 눈에 보이는 제작비는 굉장히 작다. 감독과 스태프들의 희생, 지인들의 참여 덕분이다. 각종 지원도 받는다. '똥파리의 경우' 적어도 2억5000만∼3억 원의 예산이 들어간 영화지만 투자자들이 인정해주는 것은 영수증, 양 감독이 아버지에게 빌린 9000만원 뿐"이라고 말했다.
"영화의 가치 대신 영수증만 인정해준다"
이어 "영화진흥위원회의 마케팅 개봉지원사업은 이러한 독립열화의 현실에서 완충 지대의 역할을 수행했던 제도인데 왜 2009년에 사라지게 됐는지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의 영화 정책이 상업영화와 비상업영화를 구분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독립영화를 지원하는 대신 장편과 중편, 단편으로 나누어 영화를 지원하는 식으로 방식이 바뀌면서 독립영화의 설 자리가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감독은 이어 "영화를 상업영화와 비상업영화로 나눈다고 한다. 돈 되는 것은 영화로 보고 돈 되지 않는 것은 비상업영화로 테두리에다 가두겠다는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면 슬프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 돈 되는 과가 경영학과라면 나머지는 비 경영학과가 되는 것이냐? 너무나 절망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임성균 기자 |
고 사무총장은 "관객들은 영화를 영화로 보지 독립영화냐 독립영화가 아니냐고 보지 않는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립영화라는 구분이 사라져야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최근 영진위가 한국영화 제작지원사업 일괄 접수를 받았다. 돈이 없으니 충무로의 거의 모든 영화사가 지원을 했다. 그러나 지원 주체는 제작사와 개인사업자로 제안했다. 거기에 감독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석 감독('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은 영화학과를 나오지 않았다. 3개월간 문화강좌를 다녔을 뿐이다. 그런 사람이 1000만원으로 영화를 만드는 시대가 됐다. 이런 영화 현실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현 극장관행, '제2, 제3의 '워낭소리' 못나온다"
배급사 및 극장의 관행에 대해서도 토로가 이어졌다. 디지털 상영 시설을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필름을 요구하는 극장의 관행은 프린트 비용을 감수할 수 없는 독립영화 감독들에게는 너무나 위험부담이 크다고 감독들은 입을 모았다. '동백아가씨'의 박정숙 감독은 "개봉을 위해 직접 프로젝터며 장비를 조달해야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고 사무총장은 "현재 120개 극장에서 '워낭소리'가 상영된다. 필름으로 배급했다면 약 2억5000만원의 배급 비용이 추가로 발생했을 것이지만 파일과 테이프로 해결했기에 약 2000만원으로 배급을 할 수 있었다"며 "시설을 갖추고도 필름을 요구하는 극장이 많다"고 말했다.
또 고 사무총장은 "영화를 선택할 때 순제작비와 마케팅비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극장 관행이 지속된다면 제 2, 제 3의 '워낭소리'는 나올 수 없다. '워낭소리'도 초기 극장으로부터 상영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은 데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다"며 "자본의 규모보다 콘텐츠의 힘을 우선시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