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진 기자 songhj@ |
이보영은 늦은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다. 스물여섯. 대학원까지 졸업한 후에야 비로소 연기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보영이 이제야 연기를 즐길 줄 알게 됐다는 말은 그래서 진정이 담겨 있다.
일이란 생각에 쫓기듯 또는 해야 하기 때문에 연기에 몰두했던 그녀는 이제야 촬영장이 즐겁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됐다. 이보영은 지난해 개봉한 '원스어폰어타임'를 촬영하면서 연기를 한다는 즐거움에 눈을 떴다.
아직 개봉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행복합니다'로 죽을 만큼 힘든 연기란 게 무엇인지를 맛봤고, 이제 좀 더 말랑하며 조금은 색다른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11일 개봉하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감독 원태연)에서 이보영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여인을 연기했다.
조금은 엉뚱하고 조금은 발랄한, 그러나 깊은 슬픔을 간직한 여인.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던 이보영은 유쾌한 여인을 지나 죽을 만큼 힘든 사랑을 하는 여인으로 변했다. 그녀의 연기도 변했다. 이보영을 만났다.
-후반부 내레이션이 인상적인데. 전반부 권상우의 내레이션이 후반부 이보영의 내레이션을 위해 존재한 듯한 느낌이다.
▶처음에는 어색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완성된 작품을 보니 왜 필요한지 알겠더라.
-단아한 여인으로 누군가의 첫사랑 이미지였다가 어느새 유쾌한 여인으로 변신했는데.
▶'원스어폰어타임'을 할 때는 코믹영화를 해보고 싶었다. 첫사랑 말고도 다른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일하는 게 아니라 즐긴다는 게 무엇인지를 알겠더라. 그래서 연기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나는 행복합니다'로 하드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런 뒤라 대중적인 작품을 해보고 싶었다.
-다른 배우와 막바지까지 경합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오기가 생기더라. 설득할 때는 언제고 나중에 말이 또 바뀌었으니깐. 하지만 내 필모그라피를 알차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왜 이 작품을 했겠나. 즐기면서 촬영을 했다. 이보영이 왜 이 역할에 적합했는지 보여주고도 싶었고.
-여느 영화와는 달리 촬영 일정이 촉박했는데.
▶빨리 찍었다고 다른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길게 찍으나 짧게 찍으나 결과물은 비슷하지 않나. 개봉날짜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더 응축해서 찍은 것 같다.
-자칫 붕 떠 있는 캐릭터를 잘 잡아낸 것 같던데.
▶현실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했다. 신파처럼 보이지 않으려 애썼고. 상대역과 잘 친해지는 성격이 아닌데 이번 상대역인 권상우씨는 처음부터 장난을 치면서 친해지려 하더라. 처음에는 '왜 저래'라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더 빨리 친해져서 확 풀어진 듯 연기가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 뭐 권상우씨가 유부남이니 친하다고 오해를 살 일도 없었고.(웃음)
ⓒ송희진 기자 songhj@ |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살면서도 친구처럼 지내고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역인데.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전형적으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여러 삶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기에 관한 생각도 그처럼 변했나.
▶한때 왜 난 늘 뻔한 역을 할까란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변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이미지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구태여 변하려 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그런 지점이 올테니. 지금 내 모습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자는 마음이 들더라. 이런 멜로를 언제까지 할 수 있겠나.(웃음)
-원태연 감독과 이견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초반에 있었다. 그러던 차에 4회차 촬영 때 감독님이 술 한잔 하자고 하시더라. 촬영 접고 횟집을 찾았다. 맥주잔에 소주를 부어주더라. 오기에 한번에 마셨다. 원래 소주를 못마시는데 한잔 더하라고 해서 또 마셨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뒤에는 마지막까지 연기에 대한 이해가 잘 됐다. 서로.
-원래 감정이 쌓이면 곧잘 푸는 편인가.
▶풀만한 상대면 푼다. 원래 말도 짧은 편이고 쉽게 친해지지 않은 편이라 오해를 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 속 캐릭터와 성격이 많이 닮았다고 하는데 사랑 방식도 비슷한가.
▶상대에 따라 다른게 아닐까. 영화 속 캐릭터처럼 지고지순하냐면 아니다.
-의도치 않게 사생활이 공개됐는데.
▶늦게 데뷔해서 그런지 초반에는 사적인 부분이 그렇게 노출되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데 어느순간 덤덤하게 됐다. 하지만 파파라치는... 도대체 측근은 과연 누구인지. 배우에 사생활은 어느정도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할 때 그 사람, 그 배우가 아닌 다른 사람이 생각나면 안된다고 믿는다.
-여배우 나이 서른. 이제 연기를 어떻게 생각하나.
▶한 때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즐기고 싶다. 즐길 때까지, 내가 즐거울 수 있을 때까지 연기를 하고 싶다. 이제 난 막 연기를 즐기는 방법을 배웠다. 스탭 바이 스탭이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