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운 "작품은 선택이 아닌 운명"(인터뷰)

배우 한여운 ⓒ송희진 기자 songhj@

한여운(25). 이름만큼이나 강한 여운이 남는다. 스타 내지 연기자라는 느낌보다는 배우의 이미지가 강하다. 왜일까.

그는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 이름을 알렸고, 영화 '라디오스타'를 통해 존재감을 더했다. '라디오스타'에서 다방 여종업원을 연기한 그는 비록 조연이었지만 주연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관객에게 심어줬다. 라디오부스에 앉아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쏟아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의 모습은 관객에게 많은 여운을 안겨줬고, 동질감을 선사했다. 이 작품을 통해 이른바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예상과 달랐다. 반짝 스타 대신 연기자의 길을 택했다. 대중적인 작품 대신 KBS 1TV 'TV소설-청춘예찬'을 선택했고, 방송중인 KBS 2TV 새 월화미니시리즈 '남자이야기'(극본 송지나·연출 윤성식)를 택했다. 이 작품을 통해서 그는 선(善)의 상징인 캐릭터 '은수'로 변신,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8일 오후 한여운을 만났다.

"작품의 선택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이 나를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작품을 선택할 단계도 아니다. 내 행보가 잔잔하다고 생각된다면 이 역시 운명이다."

-스타, 연기자, 탤런트라는 수식어보다 배우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감사하다. 내가 대중에게 보여준 작품 속 이미지와 캐릭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은 운명이다. 내가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작품이 나를 선택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운명이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나는 비주얼적인 면보다는 캐릭터에 치중한다.

-'내 이름은 김삼순', '라디오스타'로 대중에게 각인되는 배우가 됐다. 빠른 행보다.

▶연기를 시작한 지 올해 4년 차가됐다. 빠른 행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계를 밟아 나가고 있을 뿐이다. '내이름은 김삼순' 출연 당시 작은 역할이었지만 미니홈피에 하루에 1만 명이 접속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라디오 스타' 역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다. 혹자는 내게 당시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느냐고 말하지만 지금보다 덜 만족스러웠을 수도 있다. 다른 분들이 봤을 때 벅차 보이는 건 아닌 것 같다. 그저 내게 맡는 한 걸음 한 걸음 단계를 밟고 있을 뿐이다.

배우 한여운 ⓒ송희진 기자 songhj@

-후천적 배우와 선천적인 배우가 존재한다고 할 때 전자인가 후자인가.

▶전자다. 원래 성격이 활달하거나 끼가 넘치거나 아니면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게 아니다. 다른 배우들에 비해서 미흡한 게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 밖에 없다. 노력이 즐겁다. 연기자가 된 것도 내 운명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선천적인가.

-한여운에게 있어 연기와 배우란 무엇인가.

▶연극을 하는 아는 언니가 어느 날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하더라. 당시에는 '왜'라고 질문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배우는 얻는 것 보다는 포기하는 게 많은 직업인 것 같다.

항상 나를 포기하는 직업이다.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아야하고, 때론 비판도 받는다. 또 나를 버려야하는 직업이지 않은가. 이에 대해 딜레마를 느낄 때가 많다. 만약 내가 연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예쁘지 않은 모습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내가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도 배우이기에 보여야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다.

나를 버려야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배우는 결국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연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다. 연기를 하는 과정을 통해 내가 한 꺼풀씩 벗어지고 깨어지는 과정에서 쾌감을 느낀다. 보람도 있다. 내가 또다시 선택을 해야 하는 과정이 온다면 역시 연기자를 택할 것이다.

-'남자이야기'에서 은수라는 인물은 한여운이라는 배우만큼이나 신비감에 빠져있다.

▶은수는 추상적인 인물이다. 악과 상반된 선의 상징이다. 영화 '배트맨'의 조커가 악의 상징이라면 은수는 그와 대비되는 인물이다.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인물임에 확실하다. 그리고 그동안 작품 속에서 흔하게 볼 수 없던 인물이기에 사실 캐릭터 잡기가 힘들다. 이 정도면 착한 게 아닐까라는 느낌으로 연기하고 있다. 어렵다.

-실제 모습은 어떤가.

▶사실 실제처럼 하고 있다. 하하. 은수처럼 착하고 안착하고를 떠나서 보시는 분들이 한여운이 아닌 은수로 봐주셨으면 한다. 내 평소 모습을 그대로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남자이야기'를 통해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동안 친근한 이미지가 많았다. 여자라기보다는 여동생 이미지가 강했다. 이 작품을 통해 나는 여자처럼 보이고 싶다. 사실 내가 생각해봐도 막내 딸 같은 이미지가 많은 것 같다. 연인같은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겠지만 이 작품 속에서 성숙한 면을 보여드리고 싶다.

-'죽음아 나 살려라'는 철학서를 썼다. 또 책을 쓸 계획이 있는가.

▶'죽음아, 날 살려라 - 텍스트로 철학하기'에 참여하게 된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생각은 있다.

-사랑에 빠지고 싶은 계절이다.

▶사랑 하면 막연하게 '꽃보다 남자'와 같은 샤방샤방한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더 많은 본질적인 요소들이 숨겨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랑, 이 또한 연기활동의 소중한 경험치다.

배우 한여운 ⓒ송희진 기자 songh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