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칸의 영진위 부스에서 홍상수 감독이 '해변의 여인'의 한 장면처럼 도형을 그려가며 자신의 영화관을 설명하고 있다. |
홍상수 감독이 다시 칸을 찾았다. 그는 신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제62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돼 올해로 다섯 번째 칸을 방문했다. 99년 '강원도의 힘'이 칸영화제에 초청된 이후 10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홍상수 감독은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했다. 일상의 소소함 속에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담는 서사 구조를 조금씩 확장하고 있다. 그의 영화에 유명 배우들이 돈 한 푼 받지 않고 기꺼이 출연하는 것은 홍상수 감독의 세계가 가진 깊이 때문이다.
17일 칸 해변에 위치한 한국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서 홍 감독을 만났다.
-어제 가진 기자회견에서 '왜 이런 영화를 만드냐'는 질문을 받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감독으로 출연한 김태우가 영화과 학생에게 받는 질문이기도 한데.
▶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적은 돈이지만 만들 수 있는 상황이 되기도 하고. 그 때마다 왜 만들었나라는 이유가 다르다. 물론 주위에서 도와줘서 가능한 일이다.
-예전에는 트리트먼트라도 있었는데 이번 영화는 아예 그마저도 없었다던데.
▶ 처음 3번까지는 시나리오가 있었다. 그러다 트리트먼트로 작업을 했는데 점점 트리트먼트 두께가 줄어들더라. 한계까지 밀려오는 압박이랄까, 그런 작업에서 영감을 얻는다.
-선호하는 배우들이 뚜렷한데. 김태우도 이번이 3번째 작업이다.
▶ 같이 몇 년 하면서 분명히 선호하는 배우는 있다. 하지만 새로운 배우들을 만나서 새롭게 얻는 것도 많다. 물론 내가 삶을 이야기할 때 필요한 인물형이어야 한다. 이번 영화의 경우 하정우는 고현정의 소개로, 공형진은 우연히 공항에서 만나서 작품을 같이 하고 싶단 이야기를 들은 것을 기억해 같이 하게 됐다.
-작품 속 주인공이 감독과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이번에도 감독 역으로 출연한 김태우가 입는 바지가 홍 감독 바지 아닌가.
▶ 말이 좀 많은 영화고, 감독이 나오는 영화라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 움직이는 말이 그를 통해 나오는 건 아니다. 이젠 작품 속 주인공과 거리가 생긴다. 나랑 너무 닮으면 객관화할 수가 없고, 너무 멀면 상투적이 될 수 있어서 중간에 놓으려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란 제목이 독특한데.
▶ 누구랑 이야기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란 단어를 들었는데 그 단어가 귀에 꽂혔다. 보통 제목을 그렇게 꽂히는 단어로 짓는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파리에서 본 포스터고, '밤과 낮'은 당시 미국에 있다가 집사람과 통화하면서 그곳과 이곳은 밤과 낮이겠구나라고 생각하다 짓게 됐다.
-더 많은 관객보단 홍상수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 사람들에겐 영화를 볼 때 습관화된 기대치가 있다. 그 기대치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차이가 있다. 그 갭을 억지로 줄이려 하다보면 내가 영화로 하고 싶은 것을 저버리게 된다.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싶지만 관객을 무엇인가 만족시키기 위해 영화를 만들고 싶진 않다. 적은 관객이라고 없는 게 아니다. 내가 상정하는 관객은 좋아하고 존경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들이다.
-반복을 이야기 서술의 주요 방식으로 사용하는 까닭은.
▶ 인생을 흔히 직선이라고 생각을 한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다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그런데 인생은 그렇게 직선으로 존재한다기보다 특정한 부분이 반복하면서 연결된다. 그래서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반복이 좋다. 또 난 일상과 미세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데 반복을 사용하면 그 차이를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 같다.
-이번 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됐는데.
▶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볼 때 해방되는 게 있다. 경쟁은 경쟁 부문을 선정하는 사람이 선택을 해서 오는 것이다. 감독주간은 감독 주간을 선택하는 사람이 택해서 오는 것이고. 그게 있는 그대로다.
-차기작을 8월부터 들어갈 계획이라던데. 제목은 정해졌나.
▶ 그나마 제목 하나 정했기에 이야기할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