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부터 '7급공무원' '괴물' '세븐데이즈' |
전국관객 400만명을 향해 가는 코미디 '7급 공무원'의 웃긴 한 장면. 여인(김하늘)의 계속되는 거짓말에 상처받은 남자(강지환), 휴대폰으로 이별을 통고한다. 한참 녹음을 한 뒤 "그래도 난 너를 사랑했다"로 멋지게 마무리를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버튼을 누르자마자 낭랑하게 들리는 '여비서' 목소리. "녹음이 취소되었습니다."
관객의 폭소가 터지는 이 장면이야말로 '7급 공무원'이 전하는 소소한 재미 중 대표격이다. 그 휴대폰 여비서 목소리로 한번쯤은 황당했을 전국 휴대폰 주인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공감이랄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는 강지환이 휴대폰으로 몰카를 찍을 때 하필이면 터져나온 이 주책맞은 여비서의 목소리도 '빵' 터졌더랬다.
하여간 요즘 영화, 휴대폰 없었으면 과연 진행이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로 신세를 톡톡히 지고 있다. 사건의 단서 내지 반전의 키를 쥐거나, 영화 '핸드폰' '폰' '착신아리'처럼 영화의 A부터 Z까지거나 휴대폰은 요즘 영화의 단골 등장인물이 돼버렸다. '세븐데이즈' 같은 현대 유괴스릴러에서 범인 목소리는 언제나 휴대폰을 통해 들린다.
김윤석 하정우 주연의 '추격자'에서도 휴대폰은 거의 조연처럼 굴었다. 전직 형사이자 현직 포주인 김윤석이 연쇄살인범(하정우)을 쫓을 때 결정적 단서를 얻은 게 바로 이 휴대폰에 찍힌 '4885'라는 전화번호 끝자리였다. 발신번호 찍히는 거야 집전화도 가능하지만, 이동성과 휴대성에 관한한 특히나 이 같은 일촉즉발의 스릴러 영화에서는 역시나 휴대폰이 제격이다.
'본 얼티메이텀'에서 전직 CIA 암살요원 제이슨 본(맷 데이먼)이 살해위기에 빠진 신문기자를 접선하는 와중에서 기막히게 활약한 것도 휴대폰이었고, '오션스 13'에서 악당 알 파치노가 그렇게나 갖고 싶었던 것도 그래서 부하들로부터 "품절됐다"는 보고를 받아야 했던 것도 황금색 삼성 애니콜이었다. '스크림'에서 영화시작하자마자 드류 배리모어에게 집전화로 겁을 잔뜩 준 범인 입장에선 그야말로 머쓱할 상황.
휴대폰의 활약상은 이뿐만이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 괴수에게 납치된 막내딸(고아성)이 살아있음을 확인케 한 단서도 그렇게나 새 것으로 바꿔달라고 투덜댔던 딸의 휴대폰이 울렸기 때문이었다. 최근작 '마더'에서 살해당한 여고생의 피해 현장을 고스란히 담은 문명의 이기도 바로 휴대폰. 특히 한 여고생이 셀카를 찍을 때 "웃어요" 같은 황당한 '여비서' 목소리가 안 나오도록 휴대폰을 고치는 장면까지 등장, '휴대폰=대한민국'임을 웅변(?)했다.
이쯤 되면 옛 공중전화나 집전화는 울고불고 할 만한 상황 아닐까. '매트릭스'에서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조작된 매트릭스 세계에서 진짜 세계인 느브가넷살호로 순간 이동하는 통로는 공중전화 아니었나. 또 '아비정전'에서 펼쳐진 장만옥과 유덕화의 안타까운 사랑의 장소도 다름 아닌 공중전화 부스. 장만옥은 수신이 되는 공중전화 부스로 전화를 계속 걸지만, 이미 유덕화는 외국으로 떠난 상태이고..그 계속 울려대는 공중전화 벨소리는 요즘 휴대폰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그런 낭만 아니면 꿈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