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기가 도래했다. 15일 제작비 100억원이 투입된 ‘차우’가 개봉하는 데 이어 23일 순제작비만 129억원을 쓴 ‘해운대’, 그리고 30일 역시 100억원이 들어간 ‘국가대표’가 차례로 개봉한다.
99년 ‘쉬리’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포문을 연 이래 올해는 코믹 괴수영화, 그리고 재난영화에 스포츠 블록버스터까지,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계속 진화해왔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과연 어떻게 진화하고 명멸했으며 지금에 이르렀을까?
‘쉬리’는 당시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를 훨씬 웃도는 24억원을 투입, ‘타이타닉’을 제치고 막대한 흥행 수입을 올렸다. 남북 대결 구도에 할리우드식 연출 방식을 더한 ‘쉬리’의 성공은 한국영화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줬다. 영화가 문화산업으로 인식되면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필요성도 깨닫게 됐다.
‘쉬리’의 성공은 ‘은행나무 침대’와 ‘퇴마록’의 연장선상에서 가능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입증한 이 영화들의 성공으로 비로소 ‘쉬리’가 탄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제작된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단순히 크기와 물량에 집착하는 우를 범했다. 할리우드를 따라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순진무구한 접근은 2002년의 재앙을 낳았다. 2,6,7,9월에 개봉한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예스터데이’ ‘아 유 레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한국영화의 악몽으로 기억된다. 같은 해 개봉한 ‘튜브’ ‘원더풀 데이즈’ 역시 참담한 흥행을 기록했다.
2001년 ‘광시곡’ ‘천사몽’ 이후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의 연이은 실패는 관객들에 이 장르에 대한 관객들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이듬해 개봉한 ‘내츄럴 시티’는 상당한 완성도에도 불구, 관객의 신뢰를 되찾기에는 부족했다.
CG에 대한 집착 역시 마찬가지 결과를 낳았다. 99년에는 ‘쉬리’ 뿐 아니라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과 ‘자귀모’, 그리고 ‘유령’이 등장했다. 세 영화들은 몰핑 기법의 도입, 드라이 포 웨트 기법 등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특수효과를 자랑했다. 세 작품은 ‘쉬리’ 이전에 기획된 작품이기 때문에 ‘퇴마록’의 연장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미흡한 이야기 전개는 들인 노력만큼 결실을 맺지 못했다.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은 한국영화계는 할리우드를 따라하는 블록버스터가 아닌 글자 그대로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한국 관객들이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되새겼다. 풍부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그래서 보다 다양해진 블록버스터들이 새롭게 준비되기 시작했다.
2000년 나란히 등장한 ‘단적비연수’ ‘비천무’는 이야기의 외연을 한국에서 넘어서 아시아를 품었다. 합작영화의 가능성이 모색된 것도 이 즈음부터다. 이듬해 등장한 ‘화산고’는 컬트 취급을 받지만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될 정도로 획기적인 시도였다.
2003년 한국영화 점유율이 50%를 넘어선 것은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의 잇단 실패에도 이 장르에 대한 도전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됐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1000만 돌파는 사형선고가 내려졌다시피 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다시 힘을 실어줬다.
이런 시도는 ‘태풍’과 ‘청연'으로 이어졌으며 마침내 ’괴물‘을 탄생시켰다. 2006년 개봉한 ’괴물‘은 한강에 괴물이 살고 있다는 설정에서 탄생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이듬해 탄생한 ’화려한 휴가‘와 ’디 워‘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이란성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 미국제일주의가 담겨있는 영화들이 종종 탄생하듯 한국형 블록버스터에도 민족주의를 담은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쉬리’의 적자로 ‘한반도’가 탄생했으며 ‘신기전’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역사는 한국영화 도전사이기도 하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현재의 얼개를 이루고 있다. 작은 시장규모를 이겨내기 위해 합작영화를 모색하고, 해외 판매를 꾸준히 모색했다. 현재 한국영화산업 시스템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탄생과 도전에 상당 부분 빚을 지고 있다.
올 여름 관객과 만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은 ‘쉬리’ 탄생 이후 10년간 계속된 한국영화인들의 도전의 산물이기도 하다. 과연 올 하반기에는, 또 내년에는 어떤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이 관객을 즐겁게 해줄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도전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