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은 멋진 기사처럼 나팔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나타나지 않는다. 어느새 옛 친구가 옆에서 조용히 걷고 있듯 슬쩍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슬쩍' 찾아온 감동은 긴 여운을 남긴다.
올 상반기 안방극장을 온통 '막장'으로 물들였던 드라마들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숨통을 틔워준 드라마가 있다. 첫 등장이 그리 강렬하진 않았지만, 조용히 다가와 나란히 걷고 있는 옛 친구처럼 우리 가슴 속 깊이 들어왔다. 최근 40%가 넘는 시청률로 방송가에 우뚝 선 SBS '찬란한 유산'이다.
사실 '찬란한 유산'이 첫 전파를 탈 때만 해도 이렇게 뜨거운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 전작 '가문의 영광'에 이어 지난 4월 첫 선을 보인 '찬란한 유산'은 '올드'해진 주말드라마 시청자 층에 젊은 시청자까지 끌어들여 보자며 시도된 '주말극에 맞지 않은 젊은 감각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기존 주말극 남녀주인공이 30대 초반인 것과 달리 '찬란한 유산' 주인공이 20대인 이유다.
그래서였을까. 모두들 전작만큼만 해도 성공이라며 입을 모았다. 그런데 방송이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 결과는 기대 이상이다. 불륜 배신 복수 등 '막장 코드'가 먹히던 안방극장에 충격을 안겨줬다. 무막장도 통할 수 있다는 진실을 입증했다.
'무막장'으로 안방극장에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찬란한 유산'이 그토록 사랑받은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엄마·아빠에게는 잊혀져가던 첫 사랑의 풋풋했던 설레임을 추억하게 했으며, 1,20대 젊은이들에게는 알콩달콩 예쁜 사랑을 엿보는 연애소설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더불어 때 묻지 않은 들꽃 같은 여인 한효주와 '엄친아' 이승기가 한 몫 톡톡히 했다.
그렇게 '찬란한 유산'은 잔잔하지만 사람들 가슴 속 깊이 잠들어 있던 감성을 하나하나 일깨웠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만나는 즐거움인가. 아내와 애인 모두를 갖겠다며 시청자를 경악케 하는 MBC '밥줘' 속 이상한 부부를 보는 불쾌함도, 바람을 피우고서도 당당히 이혼을 요구하는 SBS '두 아내' 속 뻔뻔한 남편도 없다.
못된 계모 백성희(김미숙 분)에게도 나름의 당위성이 주어졌다는 점도 시청자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온다. 좀 더 현실성 있는 캐릭터가 악역마저도 끌어안게 했다.
그런 점에서 '찬란한 유산'은 간만에 만나는 감성드라마다. 물론 여전히 안방극장에는 '막장'이 판을 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자극적일까 내기를 하는 것 마냥 점점 그 막장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찬란한 유산'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다. 감성으로 TV를 울린 '찬란한 유산', 이 작품을 뒤잇는 또 다른 무막장 감성드라마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