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재난영화 '해운대'가 16일 900만 관객을 동원했다. '해운대'는 오는 23일께 한국영화 사상 5번째로 천만 영화 대열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영화가 천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2006년 '괴물' 이후 3년만이다. '괴물'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던 한국영화로서는 '해운대'의 천만 등극은 여러 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해운대'는 앞서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다른 한국영화들과는 차이가 분명해 영화계가 '포스트 해운대'를 위해 분석에 한창이다. '실미도'를 시작으로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 등 다른 천만 영화들은 모두 사회적 이슈를 모았다.
'실미도'는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다는 이슈 외에 북파공작원이라는 잊혀진 현대사를 복원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국군 전사자 발굴이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왕의 남자'는 이준기라는 아이콘을 앞세워 예쁜 남자 신드롬을 일으켰으며, 남사당패를 재조명했다. '괴물'은 스크린 독과점 논란과 아울러 미군과 한국현대사를 한강에 출몰한 괴물과 공명시켰다.
반면 '해운대'는 흥행 외에는 다른 천만 영화와 달리 사회적인 이슈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개봉 전 CG가 미흡할 수 있다는 논란이 잠시 일었던 것 외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다.
또 지금까지 천만 영화들은 영화를 수십번씩 보는 반복관람이 이뤄졌다. 반복해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은 '오피니언 리더'로 영화에 대한 입소문을 주도, 결국 영화 흥행을 이끄는 역할도 했다. 그러나 '해운대'는 상대적으로 반복관람이 적다. 그럼에도 천만 관객에 육박했다는 것은 다른 천만영화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관객이 봤다는 뜻이기도 하다.
'해운대'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는 그 까닭을 해운대에 쓰나미가 온다는 하이컨셉트와 한국적인 정서로 꼽았다. CJ엔터테인먼트 홍보팀의 최민수 과장은 "한국 국민 누구나 알고 있는 해운대에 쓰나미가 온다는 설정이 관객의 호기심을 이끈 것 같다"고 말했다. 최 과장은 "영화에 녹아있는 한국적인 정서와 해운대라는 친숙한 공간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줄 수 없는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이슈 없는 '해운대'의 성공을 탈한국화라는 측면으로 봐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 영화 제작자는 "역사의 상흔이나 민족적인 정서를 자극하지 않고도 순수한 오락적인 재미로 성공한 사례"라고 말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오락적 재미를 극대화하는 것처럼 '해운대' 역시 의미를 담아야 한다는 한국적 강박관념에서 벗어났기에 이 같은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운대'는 세계 어느 곳을 배경으로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내용이다. 해외 각국에서 판권을 구입한 것도 그 같은 이유 때문이며, '해운대'에 별다른 사회적 이슈가 생기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결국 사회적인 울림 없는 '해운대'의 성공은 탈한국화된 소재와 볼거리, 그리고 윤제균 감독 특유의 코미디, 지역색으로 토착화를 이뤘기에 가능했다고 봐야 한다. 도시를 쓸어버리는 거대한 파도와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미 익숙한 것이다. 재난영화로서 장르도 익히 봐왔던 것이다.
하지만 광안대교에 박히는 컨테이너, 투박한 사투리, 철딱서니 없는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는 '해운대'를 토종 재난영화로 자리매김 시켰다. 뻔한 이야기, 익숙한 전개, 그리고 제작진의 철저한 엔터테이너 기질은 '해운대'가 뜨거운 감자가 될 논란을 애초에 차단시켰다.
영화계 일각에선 '해운대'의 천만 돌파를 놓고 과연 그럴 자격이 있냐란 지적도 한다. 한 영화 관계자는 "앞선 천만 영화들에 비해 영화가 내포한 의미나 깊은 맛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사회적인 이슈를 만들지 못하는 것도 영화적인 완성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점 때문에 '해운대'는 천만 관객으로 달려가고 있다. 어쩌면 '해운대'의 성공은 한국영화산업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증거로 볼 수도 있다.
할리우드는 60~70년대 양적 질적 성장을 이뤘다가 80년대 대형 블록버스터의 함정에 빠졌다. 이후 오락형 블록버스터 시대를 거친 뒤 다시 의미와 재미를 겸비한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단계로 넘어갔다. 할리우드가 본격적으로 세계시장을 겨냥한 영화들을 만든 것도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한국영화 산업도 민족적 색채를 간직한 블록버스터가 통하는 시대에서 순수한 오락형 블록버스터 시대로 넘어가는 것은 아닐지, '해운대' 이후 탄생할 다음 천만영화가 증명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