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 국가대표급 두 언니에 빠졌다

[이수연의 클릭!방송계]

이수연 / 입력 : 2009.08.1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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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성적, 일, 운동 등 모든 면에서 남자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뜻의 ‘알파걸’, 탄탄한 경제력과 능력을 갖춘 독신여성을 뜻하는 ‘골드미스’, 직장생활과 육아를 동시에 멋지게 해내는 여자를 말하는 ‘슈퍼맘’ 등등... 최근 잘 나가는 여자를 일컫는 말들이 많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어느 새 잘난 여자들의 잘남을 뽐낼 수 있는 사회가 됐다는 뜻일 것이다. 자, 이 잘나가는 멋진 여성들은 안방극장에도 멋지게 떴다.

이미 40%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과 엣지있는 패션 스타일로 시청자들을 엣지있게 사로잡은 드라마 ‘스타일’, 여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여자들이다. 좀 더 디테일하게 말하면 진짜 주인공은 ‘선덕여왕’과 ‘잡지사 신입기자’인 ‘어린 여자들’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을 더 확 사로잡는 실제적인 주인공들은 ‘어린 여자들’을 괴롭히는‘미실’의 고현정과 ‘박기자’ 김혜수이다. 그렇담, 그녀들에게 더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일단 그녀들의 과거부터 한 번 거슬러 올라가 볼까? 김혜수와 고현정은 80, 90년대 뭇남성들을 사로잡았던 하이틴 스타들이다. 일명 ‘책받침 스타’로 불렸던 그녀들의 청순함과 풋풋함은 국가대표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태희, 혜교, 지현 뺨치는 건 일도 아닐 정도로 유명했다 이 말씀.

당시 그 언니들을 보며 학창시철을 보냈던 내게도 그녀들이 긴 생머리를 날리며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실린 잡지가 집에 있었고, 같은 여자로서 참 많이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그 언니들이 이제는 거의 중년이 되어 돌아왔다. 한 명은 아이 둘의 엄마인 돌싱이요, 한명은 노처녀로 10여년 이상 살아온 길은 다르지만, 강한 카리스마가 작렬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말이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하늘의 뜻도 조작하고, 아무리 측근이라도 필요 없으면 바로 처치해버리는 ‘미실’이나, 승진을 위해서라면 상사도 치밀한 계획으로 밟아버리고, 좋아하는 남자의 깊은 상처도 이용하는 ‘박기자’의 역할이 그녀들의 카리스마를 국가대표급으로 빛나게 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역할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빛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녀들의 내재된 카리스마가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악역으로 보일 수 있었던 역할들이 빛났다고 말하고 싶다.


방송쟁이의 특성일까? ‘선덕여왕’과 ‘스타일’을 보면서 ‘만약 미실과 박기자 역할을 다른 배우가 했다면 어땠을까?’ 가끔씩 상상해보곤 한다. 이런 저런 배우들의 얼굴들을 그려넣어 보지만, 그래도 결론은 고현정과 김혜수가 딱이라는 생각이다. 동글동글한 귀여운 얼굴과 선해보이는 눈빛의 고현정이 ‘미실’역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잔인해보인다. 평소에도 겉모습과 속모습 모두 사나운 사람보단 겉으론 아닌 척하지만, 속이 독한 사람이 더 무섭지 않은가? 고현정이 표현한 ‘미실’은 딱 그래보인다 이 말이다.

그리고, 김혜수가 ‘박기자’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솔직히 ‘스타일’이란 드라마를 보지 않았을 것 같다는 결론이다. ‘스타일’은 스토리적인 부분에서 솔직히 공감하기 어려운 허술함이 보인다. 하지만, 평소 패셔니스타로서 워낙 당당하고 유명한 김혜수, 그녀의 엣지있는 스타일과 엣지있는 연기 덕분에 아쉬운 스토리가 확 가려지는 게 사실이니까.

그리고, 그녀들의 국가대표급 카리스마에 열광하게 되는 이유 또 하나! 그건 바로 같은 여자로서 부러움이다. 여자들이 사회 전반에 멋지게 활약하는 건 사실이지만, 반대로 그러지 못하는 여자들 또한 많은 게 사실이다. 몇몇 눈에 띄는 여자들이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직장에서 여자 상사보단 남자 상사가 더 많은 게 사실이요, 오로지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만을 유일한 낙으로 삼는 여자들 또한 많은 게 사실 아닌가? 그래서일까? 드라마 속에서 모든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고,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그 순간만큼은 설거지통에 씻지 않고 담겨있는 그릇들도 잊을 수 있고, 내일 당장 회사에 나가면 상사 비위 맞추며 일해야 하는 것도 잊을 수 있으니까. 마치 그 순간‘미실’이나 ‘박기자’가 된 것 마냥 말이다.

<이수연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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