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근 기자 qwe123@ |
윤계상이 연기를 시작한지 6년이 흘렀다. 2004년 '발레교습소'에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막연한 눈빛으로 섰던 그는 이제 서른 둘 영화청년이 됐다. 아이돌로서 화려함을 뒤로 한 채 그는 묵묵히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고 침을 뱉는 사람도 있다. 칭찬은 적고 욕은 많은 가시밭길이었다. 그동안 윤계상은 작품 속에서 늘 성장했다. 아니 그의 출연작은 당시 윤계상의 마음을 반영했다.
제대한 뒤 찍었던 드라마 '사랑은 미치다'는 오랜 동안 사랑했던 여인과 헤어진 뒤 반쯤 사랑에 미쳐있을 때 만났다. 영화 '6년째 연애중'은 자전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비스티 보이즈'는 다른 무엇인가로 변하고 싶은 마음이 절정일 때 선택했다. 윤계상은 작품 속에서 성장했고, 작품을 거치며 성장해왔다.
11월5일 개봉하는 '집행자'(감독 최진호)에서 윤계상은 또 한 번 성장했다. 그는 백수생활 끝에 막 교도관으로 취직한 남자를 맡았다. 사회초년병으로 더러워지는 방법을 배우고 길들어져 가다가 사형을 집행하면서 또 다른 변화를 겪는 역을 표현했다. 그는 그렇게 또 한 번 변화를 시도했다.
-한동안 우울한 역을 맡다가 밝은 역으로 변화를 주려했다. 그런데 또 다시 어둡고 진지한 작품으로 돌아왔는데.
▶우울하고 진지한 작품에 더 끌리는 것 같다. 성장드라마라는 장르를 좋아하기도 하고. 드라마 '트리플' 출연을 결정하고 난 뒤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여유가 있는 시점이었다. 그래서 다시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었다.
-어떤 점이 가장 끌렀나.
▶시나리오도 좋았고, 무엇보다 조재현 선배님이 출연하신다는 점. '나쁜 남자' '악어' 등을 무척 좋아했다. 먼저 할 수 있을까부터 생각했다. 난 상상이 안되면 연기를 못하니깐. 지금 내 나이에 가장 적합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상당히 자연스러워 보이던데.
▶감독님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마음을 완전히 비우라고 하시더라. 숙제였다. 공부하지 말고 알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굉장히 불안했다. 정리가 안되면 당황하는 편이었으니깐. 그래서 촬영장에 24시간 붙어있었다. 교도소에선 대사도 별로 없고 대부분 리액션이었으니깐. 상대가 어떻게 연기하는지도 다 봐야했다.
-얻은 게 있다면.
▶리액션이 풍부해졌다.(웃음) 원래 연기 호흡이 되게 빨랐다. 성격도 그런 점이 있지만 드라마 연기는 아무래도 호흡이 빠르니깐. 그런데 이 작품을 하고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곧바로 '트리플'을 찍었는데 예전보다 여유가 생겼다는 것을 느꼈다.
-작품처럼 성장한 셈인가.
▶그런 셈이다. 요즘 생각이 진짜 많다. 연기나 삶에 대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생각을 많이 한다. 성장영화를 좋아하지만 이번을 마지막으로 성장영화는 그만해야 하나란 생각도 하고. 지금 내가 딱 그런 시기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작품을 선택했던 것일 수도 있고.
-작품들을 선택할 때마다 늘 그 때의 고민이 드러나는 것 같던데.
▶그랬다. 감정들의 변화와 고비가 있을 때마다 그런 성격의 작품을 했다. '사랑은 미치다'나 '6년째 연애중'은 사랑에 대한 아픔과 상처가 극심했을 때였다. '비스티보이즈'는 배우로서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이 클 때였다. 40분이 편집된 게 아쉽긴 하지만.(웃음) 그런 마음이 없었을 때 선택한 작품은 상처로 많이 남았다. '트리플' 때까지 8개월 동안 작품 결정을 안했던 것도 그 때문이고.
-'트리플'도 좋은 결과는 못 얻었는데.
▶그 땐 잘될 줄 알았지.(웃음) 조연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내가 이제 끝났나'란 생각도 솔직히 했다. 그런데 연출자인 이윤정PD가 "계상씨의 장점은 뭐에요"라고 묻더라. 그 때 밝은 모습, 어쩌구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을 받았다. 아, 난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구나란 생각이 들더라.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초심은 어땠나, 란 생각을 하게 됐다. '발레교습소' 때의 모습. 어쩌면 '집행자'는 그래서 했을 수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연기자로 방향을 바꿨을 때 뒤도 안돌아보고 연기에 몰입했다. '발레교습소' 때의 열정이 아직도 그대로인가.
▶그렇다. 물론 바뀐 게 있다면 효율적인 열정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 때는 무대포였다. 또 너무 빨리 잘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하지만 연기를 알게 되면 알수록 깊이를 더 느끼게 된다.
그래도 자신있다. 난 내 연기에 대한 믿음이 있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있고. 지금도 연기에 미쳐있다.
-사형 제도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됐을 것 같은데.
▶그동안 사형제도에 대한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예전에 god가 한창 배고팠던 시절 내 손으로 토끼를 죽인 적이 있다. 너무 괴로워하는 것을 보다 못해 그랬다. 그런데 그 때 손끝부터 전해지는 느낌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생명을 끊다니...사형 제도는 단호히 반대한다.
-연기를 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게 있다면.
▶연기를 하기 위해 인기를 잃고 자연인 윤계상을 찾은 것 같다. 내 인생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연기를 시작한지 6년이다.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고 돌아오라는 유혹도 많았는데.
▶정말 큰 일도 겪었고 죽을 것 같이 힘든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시간들이 지나면 이렇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게 삶이고 내가 하는 연기인 것 같다.
-윤계상이 칭찬을 받은 작품을 보면 성장 드라마였던 게 많다. 그것은 윤계상에 대한 고정 이미지가 몰입을 방해하다가 어느 순간 변화를 관객이 받아들이게 된다는 뜻이기도 한데.
▶요즘 보기 드물게 인터뷰에서 god 이야기를 예전처럼 많이 묻지 않는다. 영화 이야기를 많이 묻는다. 이젠 나를 배우로 점점 봐주고 계신 것 같다. 그래서 다음 작품이 고민이 많다. 무엇을 해야 할까, 혼란스럽다. 이런 혼란스런 마음이 또 비슷한 작품을 하도록 만들까? 훗, 멜로영화를 하게 되면 그건 다시 사랑을 시작했단 말인가. 에라,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