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욱 PD <사진제공=MBC> |
MBC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이 화제다. 변기에 앉아 힘을 쓰고 방귀를 참느라 용을 쓰는 평범한 사람들의 세세한 치부를 건드리는 동시에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문제, 다이내믹한 노년 로맨스와 아슬아슬한 청년 로맨스, 애틋한 부성애와 질투어린 우정을 동시에 아우르는 이 사려깊은 시트콤은 최근 수도권 시청률 20%를 넘어 인기행진중이다.
그 화제의 중심에 있는 연출자 김병욱 PD를 만났다. 전작 '거침없이 하이킥'을 비롯해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등 10년여 동안 시트콤 한 길을 걸어온 그는 '시트콤의 달인', '시트콤의 귀재'란 표현이 결코 부족하지 않은 연출자다.
'지붕뚫고 하이킥'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크레디트에 '스텐레스 김'이라고 장난기 가득한 이름으로 등장하는 이가 바로 김병욱 PD다. '스텐레스' 곧 스테인리스, 흠결 없는 그 이름이 좋아 앞으로도 그 이름을 계속 크레디트마다 쓸 계획이라며 그는 웃음을 지었다. 계속되는 강행군에 3시간을 자고 3일을 지새웠다는 김 PD의 얼굴은 까칠했지만 부드러운 미소는 여전했다. 그는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이자 "가장 사랑스러운 이야기"라며 '지붕뚫고 하이킥'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인기 요인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요즘을 '쿨'한 시대라고들 하지만 모두들 마음속으로는 '핫'한 것들을 그리워한다. 쿨한 척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은 거다. 세련된 현대생활을 즐기는 것 같지만 생활고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처음에는 '신파'라고 욕도 들었지만, 결국 그 이야기가 먹히는 셈이다. 세경·신애 남매가 아버지를 만난 다음에 뜨거웠던 게시판 반응을 봐라. 아버지한테 전화했다는 분도 있고, DMB 보다가 지하철에서 울었다는 분들도 많더라. 노골적인 눈물 코드는 안 쓰지만, 사람들 가슴 속에 변하지 않는 어떤 정서가 있는 거다.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잘 표현하냐, 세련되게 표현하느냐일 것이다.
-'김병욱 시트콤'이 이제는 브랜드가 됐다.
▶시트콤이란 방송사의 분류에 따른 것일 뿐이다. 드라마와 시트콤이 무슨 차이가 있겠나. 시트콤을 1500편 연출한 사람이 말이 어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난 똑같은 걸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드라마가 아닌가. 지금의 '지붕뚫고 하이킥'을 보면 '메리대구 공방전' 후반부와 차이가 크게 없을 정도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하고싶은 드라마를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시트콤을 연출하며 고집하는 법칙, 원칙이 있다면?
▶김병욱 시트콤의 법칙이야 기자들이 더 잘 아시는 것 같다. 모든 분야가 다른 나라의 수준에 맞추려 노력하지 않나. 미국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시트콤을 만드는 게 나의 목표다. '지붕뚫고 하이킥'이 11월부터 일본에서도 방송을 시작하는데 그래서 더 열심히 만들려고 한다.
-어딘지 부족한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늘 느껴진다.
▶재미있지 않나. 내 자신이 아웃사이더였고, 그런 사람들에게 확실히 애정이 있다. 나는 모임에 나가더라도 분위기를 주도해서 이야기를 하는 편이 아니고 가만히 관찰하는 타입이다. 어딘지 부족한 사람들에게서는 그들의 심리가 읽힌다. 사람을 묘사할 때 행간에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순재가 절약을 외치는 에피소드를 보면, 직책에 비해서 사람의 그릇은 터무니없이 작은 사회 지도자를 보는 느낌이지 않나.
-'거침없이 하이킥'에 이어 출연한 이순재의 캐릭터 변화가 돋보인다. 노인들의 연애담도 새롭다.
▶'거침없이 하이킥'과는 달라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똑같은 모습이 아니길 바랐다. 그래서 아내가 있기보다는 연애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늙은 사람의 연애지만 젊은이들의 로맨틱 코미디처럼 그리고 싶었다. 다이내믹하고 액티브하게.
-오히려 젊은이들이 사랑은 더 느리다.
▶오히려 젊은이들의 연애는 조심스럽고 속도도 느리다. 순재·자옥 커플의 경우는 일일드라마가 묘사하는 나이든 사람의 연애와는 다르게 그리고 싶었다. 노인들은 벤치에 앉아서 손이나 잡고 하는 정도로 로맨스가 끝이지 않나. 그것과는 다르게 하자 했다. 사건도 많고, 더 역동적으로 그렸다.
-'지붕뚫고 하이킥'은 전작에 비해 눈물과 웃음이 조화를 이룬다는 게 이채롭다.
▶눈물이 많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지붕뚫고 하이킥'은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 중에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예전부터 이어진 갈증을 지금에야 푸는 셈이다.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 중에 가장 사랑스러운 작품이 뭐냐고 하면 그것도 단연 지금, '지붕뚫고 하이킥'이다.
난 비관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시트콤 PD을 하게 된 탓에 그 본성을 꾹꾹 누르고 지금까지 작품을 만들어왔던 거다. 염세적인 세계관을 갖고 웃기는 이야기를 하느라 고생했다. '지붕뚫고 하이킥'은 우리 팀이 가장 하고 싶었던 바로 그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