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정 "자화자찬할 때 아냐..난 거울 안보는 배우"(인터뷰)

배우 고현정 ⓒ이명근 기자 qwe123@

열여덟 어린 나이에 미스코리아로 데뷔, 국민드라마 '모래시계'를 통해 톱스타가 됐다가, 재벌가와의 결혼으로 숱한 화제를 뿌리며 연예계에서 은퇴했다. 두 아이를 낳은 뒤 이혼, 그림자처럼 시간을 보내다 10년의 공백을 딛고 컴백한 그녀는 다시 최고의 스타가 됐다. 지금, '여배우들'을 말하기에 그녀만큼 훌륭한 이가 있을까. 배우 고현정(38). 그녀가 영화 '여배우들'(감독 이재용)로 관객을 만난다.

'여배우들'은 놀라운 기획이다. 화보 촬영을 위해 모인 6명의 톱 여배우들을 등장시킨 이 영화에서 고현정은 배우 고현정을 연기한다. 여배우에 대한 환상과 편견, 그리고 실제 여배우의 본 모습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이 당돌한 영화에서 그녀는 후배 톱스타 최지우의 이마를 툭툭 건드리며 도발하길 서슴지 않는다. 얼마 전 화제 속에 하차한 MBC '선덕여왕'의 여걸 미실이 언듯 스치는 대목이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고현정에게서도 여장부의 기운이 뚝뚝 묻어났다. 민감할 수 있는 질문에도 거침이 없었고, 답변은 시원시원했다. 단 한가지, 하차한 '선덕여왕' 미실에 대한 질문만 빼고. 그녀는 아직 방송이 진행중인 '선덕여왕'이나 개봉을 앞둔 '여배우들' 모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과연 그녀다웠다.

-'여배우들'에는 몇%의 고현정이 담겼나.

▶다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이 모습 그대로 나온 것 같다. 그런데 정말 모르겠다. 안 보여주니까. 본 게 없으니까 어느 장면 빼달라고 말도 못한다. 누구 하나 '나는 좀 봐야겠다'는 사람도 없다. 어떻게 보면 다들 프로고 여우인 거다. 굉장한 마음씀씀이다.


-앞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 두 편에 나왔다. 영화는 작가주의로 가는 것 같다.

▶그래 보인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애매한 나이대라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20대 역할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아니다, 그러려면 얼마나 힘들겠나.(웃음)

-홍상수 이재용 감독의 작은 영화에 연이어 출연하게 된 까닭이 따로 있나?

▶두 감독이 저의 엉뚱함을 즐기시는 것 같다. '네 할게요' 하면 '한다고 했어', '오케이 가는거야' 하는 식. 물론 '여배우들'은 조금 다르다. 이렇게 쟁쟁한 여배우를 모으기도 쉽지 않고, 식사하기조차 쉽지 않다. 지금 이 순간도 대견하다. 신기하고 고맙고. 기자시사가 있는 30일을 이렇게 기다려본 적이 없다. 촬영 땐 카메라 다섯대가 한꺼번에 돌아가는데 지나면 다시 안 오는 순간이 담겼다. 정신없이 찍으면서 짜릿했다.

배우 고현정 ⓒ이명근 기자 qwe123@

-순발력을 요구하는 면이 많았는데 그런 점에서 고현정이 부러웠다는 다른 배우도 있더라.

▶내 얼굴 자체가 좀 달게 생겼다. 제 얼굴이 녹차맛은 아니지 않나.(웃음) 얼굴에서 좀 단 맛이 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조금만 웃어도 되는 걸 과하게 갈 때도 있고. 그러다보니 다른 배우나 감독님에게 기대는 게 많다.

-영화에서 최지우와 싸운 대목이 많이 알려졌다. 평소엔 잘 안 싸운다는데.

▶야단을 맞거나 야단을 쳤으면 쳤지, 싸워본 적은 없다. 그래서 참 짜릿했다. 다시 생각나려고 한다.

-명성, 질투, 콤플렉스 등 배우마다 여러 표제어가 있는데 배우 고현정에게 붙은 표제어는 '스캔들'이다.

▶여섯 배우 중에 그 중 어느 하나에서라도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없지 않나. 저는 그 정도는 좋은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굳이 사생활이 없는 것 같다. 어찌됐든 다 알려져 있고. 후배들한테도 그런다. 전세기를 탈 능력이 있어서 타는 건 좋은데 그게 여러 사람들에게서 분리되는 순간을 즐기는 건지, 아니면 간첩처럼 아무도 모르게 살고 싶은건지 잘 구분하고 욕망을 가지라고.

-2004년말 컴백 당시엔 워낙 외부와 차단돼 신비주의 이야기도 들었다.

▶물론 저도 자유로울 수 없다. 컴백했을 때, 제가 너무 소탈하게 하는 것도 가증스럽지 않았을까. 뭘 해도 야단맞을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억울할 것도 없고, 오해라고 해명할 것도 없고. 그땐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대중에 노출되는 희열이 있어야 숨는 순간의 쾌감이 있는 것도 아닌가.

▶본인이 원하는 걸 정확히 알아야 된다는 거다. 저같은 경우는 너무 외롭다. 혼자 있는 건 무섭다. 터놓을 대상도 있고 터놓을 거리도 있는 게 좋지 않겠나.

-혹 터놓을 거리 없나? 남자친구라도?

▶남자친구 따위는 안 만들지. 친구는 쉽게 하는 게 아니다. 재혼을 하거나 하는 생각은 없다. 일단 이 시간까지는.

-속으로 묵히고 삭히는 스타일은 아닌가?

▶운좋게도 친구가 한 둘 있어 털어놓는 편이다. 다 오래 된 친구들이다. '이게 맞는거냐, 잘못된 거냐' 개인에 관련된 건 터놓고 많이 물어본다. 아니라고 하면 성질도 난다.(웃음) 제가 어떤 혈액형으로 보이나. 사실은 제가 A형이다. 그것도 트리플A형.

-연기든 사생활에 대한 관심이든 고현정의 대응은 에둘러 가는 법이 없고 늘 정공법이다.

▶그걸 기술적으로 잘 대응하면 숨이 막힌다. 정면으로 딱 만나 부딪혀야 여백이 남는다. 기술적으로 잘 해놓기만 하면 답이 없다. 다음에 또 똑같이 해야되는 거 아닌가. 그런 걸 왜 해야되나. 사실 그러고 나면 후회하느라 잠을 못 잔다. 그래도 어쩌겠나.

배우 고현정 ⓒ이명근 기자 qwe123@

-결혼 후 연기를 하지 않은 10년 동안에도 여배우로서의 자의식이 계속 있었나?

▶아니다. 그땐 너무 힘들고 정신없이 지냈다. 많이 깨지고 부딪히고, 아이 둘을 낳고, 일본에서도 살다 오고, 나름 다이내믹하게 살았다. 자의식이고 뭐고 없었다. 산후조리도 못했었으니까.

-그게 지금 연기의 자양분이 됐을까.

▶그런 것 같다. 그래서 100% 얻은 것만 있다고 하는 거다. 어찌됐건 그래서 제가 화제에 오를 수 있는 거 아니겠나.

-컴백 후 점차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더 꺼내고 싶은 지점이 또 생기나.

▶지금 현재, 너무 다 쓴 것 같다.

-벌써?

▶잘 모르겠다. '여배우들'에서는 '귀여운 진상'으로 애써 말씀해주시고, 악역도 해보고. 또 한다면 뭐가 남은 걸까. 뭔가 억지로 만들진 않겠지만, 그걸 찾아주는 감독이 계시면 감사한 일이다.

-얼굴근육을 미세하게 움직이는 풍부한 표정연기가 일품이다. 혹 거울 보며 연습이라도 하나.

▶그런 건 안한다. 특히 작품 들어가면. 나는 정말 거울을 안 보는 배우 중 한 명일 거다. 점을 딱 찍어주기만 하면 팍 여러 갈래로 분사시키는 걸 조금은 할 줄 아는 것 같다. 그런데 점을 찍는 건 어렵다. 그건 캐릭터일 수도 있고, 동기부여일 수도 있고, 화나 행복감일 수도 있다. 그 미세한 움직임도 거울을 보며 인식을 하기 시작하면 안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인지라 좀 더 예쁘고 싶을 거고. 동물적으로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

-'선덕여왕'으로 정말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아직 작품이 진행중인데, 지금 제가 자화자찬 할 때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방송 인터뷰에서도 별 말을 안 한 건가. 오해 사겠더라.

▶오해하거나 말거나…. 오해받는 데 대한 맷집도 길러줘야 되는 거 아닌가.

-실제로 여배우로 살아보니, 어떤가.

▶일단 좋죠. 하기 싫은데 억지로 여기에 갖다놓지는 않았겠죠. 원하고 추구했으니까 수영복 입고 세종문화회관에 선 거지.

분명히 얻는 게 많을 거다. 타고 난 것도 있겠지만 주위의 도움과 행운이 없이는 여기에 올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감사해야 할 부분이다. 보은해야지. 그래서 가십도 너무 멀리하면 안되는 거고. 그렇게 나눠야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