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룡 vs 박희순, 그들을 보는 긴장 그리고 쾌감

김관명 기자 / 입력 : 2009.12.0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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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류승룡 박희순


잘 만든 스릴러일수록 보는 내내 몸은 아프다. 쪼이고 뭉쳐 영화관에서 일어날 때쯤이면 온 몸이 뻐근해야 소위 '웰메이드' 스릴러인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나 '친절한 금자씨'가 그랬고,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가 그랬으며, 원신연 감독의 '세븐데이즈'가 그랬다. 여기에 올 해 하나 추가해야할 작품이 있다. 바로 윤재구 감독의 '시크릿'이다.

배우로만 보면 형사 차승원과 그 아내 송윤아를 전면에 내세운 '시크릿'이지만, 사실 이 영화는 류승룡의 영화다. 동생이 처참히 살해된 조폭 우두머리 재칼 역인데, 그 보는 맛이 여간한 게 아니다. "킥"이라는 소름끼치는 의성어 한 마디에 부하들이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그 맛, '루악'(사향 고양이의 배설물로 만든 고급커피)을 한 알씩 씹으면서 도도한 척 얼굴 일그러뜨리는 그 맛, "손가락은 안써..껍집을 그냥 벗길 거니까"라고 걸걸하게 저음을 내뱉는 그 맛. 오죽하면 영화 끝난 뒤 "킥" "킥" 해댄 남성관객이 그리 많았을까.


하지만 류승룡에게 꼭 이런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조폭 이미지만 있는 건 아니다. '7급 공무원'에서 관객을 수없이 웃겼던 국정원 해외팀장이 바로 류승룡 아니었나. 신입 강지환을 오지게 훈련시키면서 '악질 돌아이'처럼 내뱉은 "누가 앉으래? 누가 서래? 누가 열래? 누가 닫으래?"에 배꼽 잡은 관객 진짜 많았다. 그러면서 극 후반부 살짝 비춰진 진한 후배사랑의 감동 역시 연극판에서 훈련한 류승룡이기에 가능했다.

류승룡은 최근 '시크릿' 개봉을 앞두고 가진 스타뉴스 인터뷰에서 그랬다. "악역의 방점을 찍고 싶었다. 매가 하늘 위에서 돌다가 먹이를 확 잡아채듯,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모습을 보이려 했다"고. 맞다. 당신은 방점을 찍었고, 먹이를 확 잡아챘다.

'시크릿'의 류승룡에 빠져들다 보면 2007년작 '세븐데이즈'의 박희순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사실 '시크릿'의 각본을 쓰고 첫 연출을 맡은 윤재구 감독은 '세븐데이즈'의 각본을 쓴 주인공이다(세상은 이렇게 연결되는 거다). '시크릿'은 가제가 '세이빙 마이 와이프'(아내 구하기.Saving My Wife)였고, 원신연 감독의 '세븐데이즈'는 가제가 '세이빙 마이 도터'(딸 구하기. Saving My Daughter)였다.


스릴러 '세븐데이즈' 역시 승률 100%의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가 창졸간에 딸을 유괴당한 김윤진을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눈에 띈 건 형사(김윤진과는 친구 사이다)로 나온 박희순이었다. '시크릿'의 류승룡이 '다크나이트'에서 고(故) 히스 레저가 열연한 악당 조커의 괴기스러운 이미지에 가까웠다면, 박희순은 영화 내내 때로는 깐죽대며 때로는 능글맞게 처신한 코믹 조커에 가까웠다.

그가 범인을 잡은 후 '미란다 원칙'을 나름 패러디한 그의 수다는 지금 떠올려 봐도 재미있다. "넌 변호사를 선임해도 소용없고 묵비권을 행사하면 계속 쳐맞는거야." 여기에 문을 제대로 못열겠다고 한 열쇠수리공에게 한 "너 말 참 쉽게 한다. 젊은 애가 직업의식이 없어"도 초절정 코믹감을 유감없이 과시한 '세븐데이즈'의 보석이었다. 같은 유괴영화였지만 '그놈목소리'가 갖추지 못한 건 바로 박희순이라는 빛나는 조연 아니었을까.

해서 류승룡 박희순, 어서 새 역할로 오라. 그게 소름끼칠 정도로 흉한 조폭이든, 깔깔 거릴 수 있는 덜렁이 형사든, 이 땅의 선량한 관객들은 당신들을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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