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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을 앞둔 KBS 2TV '아이리스'가 잦은 회상장면으로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지난 10일 방송분에서는 주인공 김현준(이병헌 분)과 최승희의 행복했던 옛 시절이 5분여 정도 연이어 등장했다.
'아이리스'에 긴 회상신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드라마가 막바지에 접어들수록 더 잦아진 회상신에 시청자들은 '시간 때우기'가 아니냐며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다.
물론 극 전개에 필수적인 회상신도 있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길고 잦은 회상신은 사실 드라마 제작의 어려움 탓일 때도 많다.
드라마가 후반으로 갈수록 촬영에 여유가 사라지고, 그날 받은 대본을 바로 소화해야 할 때, 몇 분의 회상신은 촬영의 부담을 크게 덜어준다. 하지만 쉽게 넘어간 몇 분을, 시청자들은 귀신처럼 알아본다.
이 같은 열악한 상황은 비단 '아이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인기 드라마들, 특히 막바지 연장을 결정지은 인기작들의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하다.
회상신 만이 문제랴. 최근 방송된 MBC '선덕여왕'은 우왕좌왕하는 엑스트라들이 그대로 찍힌 엉성한 전투장면으로 실망감을 안기기도 했다. KBS 2TV '꽃보다 남자'는 엉성한 오리 CG가 두고두고 회자됐다. 과거 SBS '연개소문'은 합판에 건물 그림을 인쇄해 붙인 세트로, MBC '주몽'은 열명 남짓한 전투부대 설정으로 창피를 당한 바 있다.
방송 관계자들은 "1주일간 촬영해 1회 70분, 1주일에 140분에 달하는 드라마 제작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140분이면 영화 한 편의 상영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길이다. 촬영 과부하가 안 걸릴 수가 없다.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인 쪽대본과 속도경쟁이나 다름없는 촬영 스케줄은 이 같은 방송 환경이 낳은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1990년대만 해도 1회 50분 남짓이었던 미니시리즈의 길이는 점차 늘어나 60분, 70분을 훌쩍 넘기기에 이르렀다. 광고 단가가 높은 황금 시간대에 방송되는, 시청률까지 높은 드라마의 길이가 늘어나면 방송사의 수익도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에 너 나 할 것 없이 방송 시간 늘이기에 애를 쓴 탓이다. 더욱이 경쟁 드라마가 방송되지 않을 때는 시청률이 더 상승하는 탓에 편성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위기감을 느낀 지상파 방송3사는 지난해 '드라마 길이를 최대 72분 이내로 하자'고 합의를 도출, 현재까지 이 수준을 간신히 지키고 있다. 지나친 방송 분량 경쟁은 드라마의 질을 하락시키고 결과적으로 시청자로부터 외면 받을 수 있다고 방송 3사 모두가 공감한 결과였다.
쪽대본과 날림 촬영이 드라마의 완성도 저하로 이어지고 결국 시청자의 외면을 낳는 현재의 드라마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은 없을까. 드라마 관계자 및 콘텐츠 전문갸들은 "주 1회 드라마의 부활"을 제안하기도 한다. '전원일기', '수사반장',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등 한 주 한 번 방송되는 드라마로 작품의 질을 높이고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주 2회 드라마가 방송가의 대세이자 풍토로 자리 잡은 이때 각계의 지적에도 주 1회 드라마 정착에는 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지상파 드라마국 관계자는 "사라진 지 불과 몇 년 안 되는 단막극 되살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반복되고 있는 관행을 넘어 드라마의 법칙으로 자리 잡은 주 2회 120분 방송 환경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