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킥' 정보석 "연기란 매번이 죽기살기"(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09.12.25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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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보석 ⓒ유동일 기자@


이젠 정보석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온다. 정보석은 MBC 일일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이 재발견한 최고의 배우 중 하나다. 점잖은 중견배우 정보석이 얼굴만 잘 생긴 무존재감 아버지, 심약한 숫자백치 아저씨 가 된 지 약 4개월. 장모와 아내에게 구박받다 못해 이젠 식모 아가씨를 시기하게 된 못 말리는 꽃중년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이 뜨겁다.

시트콤 달인을 넘어 도사의 경지에 오른 김병욱 PD는 '신돈'의 공민왕과 '대조영'의 장수 이해고, '달콤한 인생'의 불륜남 하동원으로 만만찮은 포스를 풍기던 정보석에게서 '멍한' 표정을 읽었다. 변화를 꿈꾸던 정보석은 단번에 시트콤 도사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역시 그 둘은 서로를 제대로 알아봤다. '지붕킥'은 히트를 쳤고, 정보석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거듭났다. '지붕킥' 집안의 구박데기 정보석은 실수연발로 웃음을 안기는 캐릭터에 그치지 않는다. 쓸쓸한 중년의 비애, 못난 남자의 열등감이 동시에 읽힌다. 배우 정보석이기에, 김병욱 PD이기에 가능한 시너지다.

'지붕킥'의 녹화가 한창이던 일산에서 화제의 인물 정보석을 만날 수 있었다. 시청자의 뜨거운 환호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나는 늘 내가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한다"며 "매번이 죽기살기"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와의 만남에서 분명히 확인한 한 가지가 있다면, 실수투성이 어리바리 정보석은 늘 작품으로 4800만에게 인정받겠다는 완벽주의자 정보석이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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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보석 ⓒ유동일 기자@



-반응이 대단하다.

▶다 뜬구름이지. 세경이 미워하는 거 한 번 나가니까 게시판 살벌해진다.(웃음)

-연기하기도 부담스럽겠다.

▶안 그래도 세경이 좀 그만 괴롭히자고 그런다. 화해하는 뭔가가 앞으로 나오지 않겠나. 연기할 때 부담이 많다. 구박하기 너무 힘든 게 뭐냐면, 눈이 너무 맑은 거다. 그 맑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애를 혼낸다는 데 스스로 자괴감이 든다.

-NG도 많이 나겠다.

▶하다보면 내가 웃겨서 NG가 많이 난다. 세경이도 웃음이 많아서 내가 혼내면 막 웃는다. 따져 보면 혼낼 상황도 아닌데, 하면서도 웃긴 거다. 그게 제일 힘들다. 오늘 촬영도 고비가 있다.(웃음)

-'지붕뚫고 하이킥'은 정보석에게 어떤 기회였나.

▶희대의 기회지. 운이 좋았다. 배우가 아무리 다른 걸 하고 싶어도 기회가 안 오면 못한다. '대조영'과 '달콤한 인생' 에서 무겁고 어두운 걸 했고, 사극을 오래 하고 해서 이젠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때였다. 그 중요한 시기에 이런 작품을 만났다. 올 초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반가웠다. 바로 오케이 했다. 중간에 잘리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다.(웃음)

-뭐라면서 캐스팅 제의가 왔나.

▶그동안 너무 멀쩡해 보였다고, 그 멀쩡해 보이던 사람이 이렇게 할 거라고 생각만 해도 웃긴다고 하더라. 진짜 재밌겠다 싶어 제작진 본인들도 웃었다고.

-그렇다고 덜컥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김병욱 감독은 캐스팅도 잘하고 작품에 대한 집중도가 워낙 좋다. 시트콤 도전이 쉽지 않지만 맘 놓고 자신있게 한다고 한 건 스스로도 팬이었던 김병욱 감독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단순히 사람을 망가뜨려 웃기는 게 아니라 내용과 캐릭터로 시청자를 웃기고, 아픔과 웃음을 공존시키지 않나. 캐릭터를 세운 다음 그걸 바탕으로 뭔가 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준다. 예전 홍상수 감독이랑 작품하고 싶다는 마음 이 있었듯 김병욱 감독과도 그런 바람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저 좀 시켜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잘 된거지.

-가장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는?

▶요구르트 아줌마와 한판을 벌인 첫 에피소드도 좋았고, '보사마' 별명을 얻은 일본 바이어 편도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족구 편이 시원했다. 사실 아픈 이야기지 않나.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자기를 못 드러내고 꾹 참으면서 어쩔 수 없이 사는 중년들이 얼마나 많나. 그게 여자라고 공히 다르진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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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뚫고 하이킥'의 정보석 <사진제공=MBC>


-연기 잘하는 배우로 정평 났는데, 예전엔 못해서 구박도 당했다더라.

▶학교 다닐 때 연출을 전공하다 선배가 내가 연출하려던 작품을 연출하겠다고 해서 양보하고 내가 주인공을 했다. 그게 첫 주인공이었는데 너무 못해서 다들 못한다고 뭐라고 했다. 오기가 생겨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드라마 '젊은 날의 초상' 땐 연기 못한다고 하루만에 쫓겨났다. 정말 좌절하고 고민 많이 했다. 그런데 '내가 보여주겠다'고 작정한 마당에 바보처럼 포기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끝까지 가보자 한 게 여기까지 왔다.

-그 시절이 옛이야기 같겠다.

▶옛이야기는 무슨, 엊그제 같다.(웃음) 타고나지 못해서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 고통의 시간들이 중요하다. 운이 좋아 좋은 작품 맡아 대충 하고 넘어갔다면 모를까, 항상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못하는 사람이다' 하면서 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능수능란함을 떠나, 열심히 들여다보며 하니 다른 색깔이 생긴 게 아닐까 싶다. 지금도 내가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 여전하다. 그냥 열심히 할 뿐이다. 내 꿈은 한 60 쯤 넘으면 편하고 쉽게, 내 생각대로 연기하는 것이다. 지금은 아직 정보석이란 배우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지붕뚫고 하이킥'에 적응해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겠다.

▶늘 작품 준비하고 시작해서 한 두달까지, 피드백이 돌아올 때까지는 고통스럽고 스트레스가 크다. 예민해서 그 때는 다른 건 아무것도 못한다. 이번엔 '지붕뚫고 하이킥' 초반이랑 연극 하던 게 겹쳐서 너무 힘들었다. 대상포진까지 왔었다. 죽는 줄 알았다. 사실 예민해질 때도 작품에 다가가는 거라 생각하면 즐거운 과정이다. 그런데 이번엔 책임을 양쪽으로 지려니 죽을 것 같더라.

-책임감이 남다르다는 평이 많더라.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다. 연출자나 감독에게 선택받는 거지만 따져보면 결국엔 시청자가 선택하는 거나 다름없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가. 매번 4800만한테 인정받으려고 노력한다. 늘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매번이 죽기살기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거다. 늘 긴장만 하면 어떻게 사나. 일을 즐겨야지. 연애할 때 새 사람을 만나고 알아간다는 설렘이 삶의 에너지가 되듯 저도 매번 제 캐릭터와 연애하는 것 같다. CF에서도 나오지 않나. 가까이 한 만큼 나와 비슷해진다고. 내가 만난 제 캐릭터를 알아가고 내 스타일로 바꿔간다. 그 재미가 엄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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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보석 ⓒ유동일 기자@


-'지붕킥'의 보석에게선 얼핏 정보석의 다른 측면도 보인다.

▶어떤 배우든 자신이 살아온 경험치를 바탕으로 연기하는거지, 동떨어진 연기는 못한다. 흉내내다보면 알맹이가 없다. 당연히 내게 있는 모습이다. 내가 좀 어눌한 부분이 있다. 말이 좀 느리고, 확신을 하기까지는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가정에서는 권위적인 가장일 것 같은데.

▶좀 그런 면이 있다.(웃음) 이거 하면서 식구들이 내가 지금껏 했던 작품 중에 제일 재밌게 본다. 아내는 작품을 쭉 모니터링 해주더라도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아이들이 더 적극적이다. 친구들 반응을 먼저 들려주고, 둘째는 얼마 전 촬영장 와서 사진 찍어갔다. '지붕뚫고 하이킥' 덕분에 집안 분위기도 좋다.

-망가지는 데 대해 우려는 없었나.

▶내가 삶 속에서 망가지는 게 아니지 않나. 그건 정보석이 하는 역할일 뿐이다. 기꺼이 즐기고 있다. 보시는 분들이 때로 욕하기도 하고 재미있어도 하시고, 그 인물을 도와주고 싶어하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생겨난다는 게 좋다. 고마운 일 아닌가. 이번 역할 하면서 시청자들과 거리감이 확 좁혀졌다. 예전엔 지나가면서 '어 정보석이네' 하고 쳐다보던 분들이 요즘엔 다가와서 인사도 하신다. 가장 큰 성과다.

-극중 보석에게 뭔가 이뤄졌으면 하는 희망이 있다면.

▶이 인물이 희망이 어딨겠나. 큰 탈 없이 이렇게만 살아진다면 좋은 거지.(웃음) 역전을 노리다간 잘못해서 큰일난다. 큰 탈 없이만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배우 정보석의 희망은 뭘까.

▶길고 얇게 가는 거. 죽을 때까지 연기하는 게 목표다. 연기하는 게 너무 재밌다. 그래서 연기하는 게 너무 감사하고 늘 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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