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정은 ⓒ홍봉진기자 honggga@ |
그녀의 역할은 원작에는 나오지 않는 요리사 장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당시 영화 찍겠다고 운동하다 스포츠맨의 몸을 갖게 됐다는 악바리 김정은의 면모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발휘됐다. 경쟁하듯 요리를 배우다 보니 라면 끓이는 게 고작이었던 그녀의 요리 솜씨가 김치를 직접 담글 수 있을 만큼 일취월장했다. 성찬 역 진구는 경쟁심을 자극하는 상대였다.
"남자배우랑 사랑을 하는 게 아니라 경쟁을 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에요. 제가 경쟁 영화의 힘든 점을 알아요. '우생순' 이후 이번이 2번째거든요. 저는 '이겨야 되겠다'가 아니라 '살아 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진구와는 서로의 실력을 견제하는 사이다. 요리를 배울 때도 늘 상대가 얼마나 잘 하나를 먼저 살피며 연습했다. 장난을 섞어 서로의 요리를 폄훼하는 두 배우의 모습은 퍽 재미있다. 진구가 "정은 누나는 손맛이 없어"라고 흉을 보면 김정은은 "구는 힘으로 요리를 한다"고 받아치는 식이다. 김정은의 표현을 빌리면 "무한경쟁"이다.
"경쟁해야 할 사이라 처음엔 멀리했어요. 요리할 땐 경쟁이었구요. 요리학원 가는 요일이 달랐는데, 가면 맨 먼저 '구는 몇시간 하고 갔어요' 물어보곤 했어요. 그러면서 '걔는 왜 일요일에 나오고 그래, 얼마나 잘하려고'라면서 혼자서 또 연습하고…."
하지만 현장에선 말없이도 위로가 되는 동료였다. 둘 모두 기존의 역할들과 상반된 역할을 맡아 비슷한 어려움을 경험한 터다. 김정은은 "우린 역할을 바꿔야 했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발랄한 김정은에게 "늘 외로워야 한다"는 주문이 떨어졌다면, 진지한 진구에게는 "성찬이가 너무 우울하다"는 평이 나왔다. 김정은은 "힘든 걸 같이 겪었다"고 회상했다.
"구가 기억은 할까 모르겠어요. 서로 감정이 막 끓어오르는 신을 할 때 제가 뒤에서 안아줬는데. 구랑은 말은 안 해도 '아 이런 마음이겠지' 하는 그런 마음이 있어요. 물론 일 있을 때마다 비난하지만….(웃음)"
배우 김정은 ⓒ홍봉진기자 honggga@ |
"네 어려웠어요. 자존심이 세고 냉철한데, 그걸 몸짓이나 표정으로 미묘하게 풀어야 했거든요. 시종일관 악녀였다면 차라리 만사 오케이였겠지만 인간에 대한 이야기,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더 깊이 해야 했어요."
고민하던 김정은은 냉철한 장은과 자신과의 접점을 한 가지 찾았다. 바로 '안 괜찮지만 괜찮아'. 늘 웃고 있는 배우 김정은이 김정은 자신에게 하는 위로처럼 들리는 말이기도 하다.
"'안 괜찮지만 괜찮아.' 본질은 저와 장은이가 조금 달라요. 저한테는 일종의 배려이기도 해요. 남들이 저 때문에 불편한 게 싫으니까 '나 상처 안났어' 하는 거죠. 극중 장은이를 이해할 수 있는 건 그게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에요. 누군가에게 기대기가 싫은 거죠. 그 마음을 표현하면 무너질까봐, 쿨하지 않으니까."
김정은은 "저에게는 좀 파워풀한 면이 필요한 것 같다"고 아쉬워하며, "저처럼 부드러운 사람은 강한 카리스마가 부럽고, 강한 사람은 좀 더 말랑말랑해지고 싶어 한다"고 했다. "김혜수씨같은 아우라, 그건 제가 아무리 변하고 아픈 일을 겪어도 그런 건 안 나올 것"이라지만, 글쎄, 김정은처럼 친근하고 달콤한 완벽주의자가 또 어디 있을까.
영화에 시시각각 등장하는 장은의 손는 100% 김정은의 손이다. 김정은의 가늘고 고운 손을 대신할 대역도 없었거니와, 시키지 않아도 모든 음식 촬영에 따라가서 손 연기를 자처했다. 김정은은 "유난 떨었다. 이거 다 문소리한테 배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우생순'을 찍느라 핸드볼을, '식객2'를 찍느라 요리를 혹독하게 배운 그녀. 2010년에는 아직 "무계획이 계획"이란다. 하지만 모두가 안다. 올해 어떤 일이 주어지든 악바리 김정은은 분명 주어진 과제를 '넙죽' 받아 열심히, 그럴싸하게 해내고 말 것이라는 걸.
혹시 소개팅 계획은 없는지 슬쩍 물었다. 김정은은 김선아와 함께 했던 소개팅은 '민망하게 끝났다'며 "소개팅은 소개팅일 뿐"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소개팅 같은 '기획성 이벤트'는 당분간 사절이란다. 김정은은 말했다. "아직도 운명을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