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디지털 세상이 점입가경이다. 애플이 마침내 지난 28일 아이패드를 공개했다. 지난해부터 얼리 아답터와 디지털 마니아들이 목을 빼며 기다린 태블릿 아이패드. 인터넷, 음악, 동영상, 오피스, 게임, 3G 등 못하거나 안되는 게 없다. 여기에 휴대성과 터치감, 애플 특유의 미니멀한 디자인까지. 용량도 최대 62기가까지 되니 걱정도 팔자인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신상이다. 최대 160기가의 거대함을 자랑하는 아이팟, 스마트폰의 새 물결을 튼 아이폰에 이은 '아이' 3부작의 완성판인 셈이다.
#2그래도 아날로그는 살아있다. 요즘 한창 인기몰이중인 KBS '남자의 자격'에선 오는 31일 일곱 남자들의 특별한 체험기가 펼쳐진다. 지난주 예고편에서는 석유곤로와 성냥, 양은냄비 등 추억의 물건에 환호하는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김성민 이윤석 등의 환한 얼굴들이 잠시나마 펼쳐졌다. 못난 구석이 더 많고, 빠르기보다는 느리고, 강하기보다는 약한 이들 남자와는 아주 궁합이 잘 맞을 것 같다. 하프마라톤 도전, 신입사원 체험, 지리산 종주에 이은 '남자의 자격' 아날로그 완성판인 셈이다.
세상은 디지털이다. 노래나 음악만 해도 그렇다. 과거 LP나 카세트테이프에서 CD라는 디지털 '옷'을 잠시 입었던 이들은 그 옷마저 벗어던지고 이제는 mp3 그 자체가 돼 버렸다. 소녀시대 역시 정규 3집 'Oh'를 내면서 '눈에 보이는' 앨범보다 '눈에 안보이는' 디지털음원부터 공개했다. 아이티 돕기 자선공연 음반 '아이티에 희망을'은 아예 아이튠즈나 아마존에서 mp3로만 구입할 수 있다. 팟캐스트, 이메일, 메신저, 트위터, 미투데이 등 둘러보면 세상은 디지털 천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아날로그에 환호한다. 두툼한 태그호이어는 얌전한 디지털 시계나 휴대폰 시계를 압도하고, 아이팟 도크 플레이어에 심은 붉은빛 진공관은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는 여타 트랜지스터를 압살한다. 트랙에 굵직하고 시커멓고 더러운 타이어 자국을 영광처럼 남기는 아우디 R8은 남자들의 로망이다. 좀 더 편할 수 있고, 좀 더 세련될 수 있으며, 좀 더 빠르고 깨끗할 수 있는데도 굳이 잠시 쉬고, 애써 고생하고, 일부러 에둘러가는 게 바로 아날로그의 매력이니까.
그 뚜렷한 증좌는 요즘 TV에 다 있다. 사극 '추노'나 예능 '남자의 자격' '천하무적 야구단' '1박2일' '패밀리가 떴다' '무한도전' 등 요즘 잘나가는 TV 프로그램과 그 안의 주인공들을 보시라. 야생에서 떠돌아다니는 오지호 장혁 같은 '추노' 짐승남들의 선굵고 위험한 매력, 아예 작정하고 야생에서 생고생하는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 팀원들의 보이스카웃 정신! 이들은 결코 블링블링하거나 하얗거나 세련되거나 깔끔 떨지를 않는다. 빠르지도 않고, 잘나지도 않은, 어떻게 보면 오합지졸에 낙오자 같은 캐릭터들의 이 위대한 반전.
따져보시라. '천하무적 야구단' 멤버들이 괜찮아 보이는 건, 절대 '0 아니면 1'이라는 식의 쾌도난마 캐릭터 덕분이 아니다. 오히려 '0과 1 사이에서 끊임없이 그래프를 그리는' 그들만의 아날로그 감성 덕이다. 이 악물고 연습하다 골절상을 당하고, 이런 동료 이현배에 눈물까지 흘리며 안타까워하는 이들. 오합지졸이 하루아침에 프로선수가 되는 기적이 아니라, 어제 못했다 오늘 잘하고 내일은 또 못할 수도 있는 그런 매력 덕이 아니었나.
'추노' 짐승남들은 눈과 이빨 번쩍이는 야생의 육식-흡혈 동물 이미지 한 켠에 숨은 그들의 여린 속내가 따뜻하다. 지금의 여자(김하은)를 등에 업고서도 과거의 여자(이다해)를 또다시 떠올리는, 결국엔 한 여자만을 온건히 사랑해낼 이대길 장혁의 그 결 있는 마음씨가 아름답고, 그 숨 냄새가 그윽하고, 그 체온이 뜨겁다. 죽기 전에 자신들이 세운 목표를 향해 그리 잘난 것 없는 제 한 몸으로 맞선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멋지다. 복불복 게임으로 한 데로 동료를 내쫓고 그러면서 즐거워하고 그러다 다시 품에 안는 '1박2일' 멤버들이 사랑스럽다.
2010년 디지털 세상에도 눈은 결코 JPEG 파일로 내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