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드라마 공식은 역시 예외가 없는 것 같다. 여지없는 출생의 비밀, 하필이면 교통사고, 왜 꼭 해외유학, 또 불치병, 설마 기억상실증, 그럼 그렇지 불륜 등등. 여기에 '훈남 호위무사는 반드시 죽는다'는 '호위무사훈남생즉필사'까지.
지난 4일 방송된 KBS 인기사극 '추노'에서는 어쩌면 속시원한 일이, 어쩌면 그래도 그러지 말았어야 할 일이 벌어졌다. 추노꾼 대길 장혁이 그렇게나 쫓던 언년이 김혜원(이다해)과 그 오빠 큰놈이 김성환(조재완)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것.
10년전 양반집 자제 장혁의 아버지를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른 것도 모자라 장혁 왼쪽 눈에 큼지막한 상처까지 입혔던 '종' 큰놈이가 '알고보니' 장혁과 이복 형제였던 것(옛날 말로는 서자). 그리고 언년이는 큰놈이 어머니(장혁의 작은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가정을 꾸려 낳은 딸이었다!(이복 형의 씨다른 여동생이면 나와 어떤 관계가 되나?)
이같은 일사천리식으로 폭로된 출생의 비밀 덕분에 그래도 현실적인 한가지 부담은 덜었다. 혹시 '대길과 언년이가 이복이든, 동복이든, 한 핏줄이 아닐까'라는 쓸 데 없는 그런 상상. 만약 이렇게 되면 대길이 지금까지 해왔던 10년 고생은 그야말로 '집 나가면 개고생'이었던 게 되고, 남은 이야기를 멜로로 풀어갈 끄나풀이 뭐 하나 남아있지 않게 되기 때문이었다.
'추노'는 앞서 지난 3일 방송에서는 혜원 아씨를 남몰래 좋아했던 호위무사 백호(데니안)가 추노패의 맏형 최장군(한정수)의 칼에 최후를 맞이했다. '데니안의 재발견'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묵묵히 그림자처럼 혜원을 지켰던 백호가, 날쌔기로는 범 같고 점잖기로는 사자 같던 백호가 방송 9회만에 퇴장하고 만 것이다.
사실 백호가 멋있게 그려질 때부터 그의 죽음은 예견했어야 했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뜻을 헤아리던 몇 안 되는 호위무사 칠숙(안길강)도, '태왕사신기'에서 담덕을 향한 충정심을 죽는 그 순간까지 놓지 않았던 여성 호위무사 각단(이다희)도 너무 빨리 세상을 떴다. 하긴 그 옛날 '모래시계' 혜린(고혀정)의 보디가드 재희(이재희)도 한창 멋있었을 때 죽었으니까.
이런 뻔한 드라마 공식의 반복이 한두 번이 아님에도 거슬리는 건 이 드라마가 '추노'이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걸 아래로 내려다본 호연지기 송태하(오지호)를 부감 샷으로 잡아낸 그 장대한 스케일과, 뜨거워진 돌멩이 하나 조심스레 마룻바닥에 내놓는 장면 하나로 대길의 따뜻한 연정을 잡아낸 그 섬세한 미장센의 '추노'가 아니었나.
'추노'는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릴 일이다. 작가도 알고 PD도 알고 시청자도 알 정도로 진부하지만, 그럼에도 꽤나 써먹기 편한 드라마 뻔한 공식의 유혹에 괜히 빠지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