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년을 희극인으로 살아온 고 배삼룡이 유족과 후배 코미디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었다.
지난 23일 흡인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고 배삼룡의 추모식이 25일 낮 12시 경기도 광주시 분당 추모공원 휴에서 엄수됐다. 성남화장장에서 한줌 재가 된 고인의 유해가 추모공원에 안치된 것.
고인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듯 하늘에서 비가 철철 내리는 가운데 유족과 후배들은 납골함을 앞세워 하나 둘 추모공원 휴에 모였다.
추모식에서는 고인의 유족들이 참석해 유골함이 봉해져 있는 납골함과 마지막 이별을 나눴다.
외아들 배동진씨는 "고생 많이 했어. 이렇게 보내서 정말 미안해"라며 목 놓아 울었다. 딸 배주영, 배경주씨 역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버지 사랑해"라고 외쳤다.
앞서 고인의 발인식은 오전7시30분 빈소가 마련된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과 후배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진행됐다.
이어 오전8시 코미디언협회장으로 열린 영결식에는 이경규 임하룡 이봉원 김학래 오정태 이수근 유세윤 등 후배들이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기렸다. 영결식에는 고인과 절친했던 원로 코미디언 송해가 "하늘나라에서 계속 웃겨달라"고 조사를 낭독해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고 배삼룡은 1970년대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구봉서, 고 서영춘과 함께 남성 트로이카 시대를 열며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 평생 국민을 웃게 만드는 데 전력했던 고인이지만 그의 삶은 순탄치는 않았다.
JP를 지지했던 고인은 1980년대 신군부의 눈 밖에 나면서 저질 코미디로 치부돼 방송활동 금지를 당했다. 이후 고인은 미국에서 3년을 보낸 뒤 귀국, 코미디 프로그램과 악극 활동에 매진하며 코미디 열정을 불태웠다. 96년 흡인성 폐렴이 발발해 1년간 입원했지만 이듬해 부활, 전국 악극쇼를 이끌었다.
세 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오랜 투병 생활도 고인의 열정을 꺾진 못했다. 고인은 "다시 한 번 무대에 서고 싶다"는 바람을 끝까지 숨기지 않았다. 고인이 입원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후배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은 것도 고인의 열정 때문이었다.
유족과 후배들은 희극인으로서 고인의 열정을 기억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울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