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를 관통하는 단 한가지..플래시 백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0.03.0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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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추노'가 지난 4일 제18화에서 시청률 33%를 기록, 여전한 수목극의 제왕임을 다시 알렸다. 이날 추노패 우두머리 천지호(성동일)가 등에 활 맞아 죽었다. 베일에 가렸던 월악산 짝귀도 등장했다. '선덕여왕'의 칠숙으로 나왔던 안길강이다. 죽고, 새로 나오고..하여간 '추노'는 '죽이는' 드라마다.

그러나 '추노'의 매력은 오히려 다른 데 있다. 이 드라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행중인 사안의 배경이나 인물의 정체에 대해 속시원히 말한 적이 없다. 일단 상황과 인물 이름부터 던져놓고 본다. 시청자가 몰라도 그만이고, 궁금해 하면 더 좋다는 투다.


드라마 초반 대길(장혁)이 양반집에서 죽을 뻔 했던 노비 모녀를 구한 뒤 심드렁히 이랬다. 어린 계집종이 목숨 살려준 은혜, 잊지 않겠다고 말한 직후다. "월악산 짝귀를 찾아가 봐." 짝귀? '타짜'에서 주진모가 연기했던 그 짝귀? 그렇담 노비패의 타짜라는 얘기? 대길과는 도대체 무슨 인연?

'추노'는 이후 '짝귀'에 대해 단 한 번도 얘기가 없다가 중반 와서 한때 개백정으로 소문났던 땡중(이대연)이 나오고 나서야 또 한 번 짝귀 얘기를 흘린다. 대길이 설화(김하은)에게 3대 싸움꾼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다. "개백정, 짝귀, 그리고 나 이대길이야!" 뭐야? 짝귀가 도대체 누구길래? 등장은 하는 거야?

그러다 마침내 지난 4일 짝귀가 나오고 짝귀의 회상신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대길과는 어떻게 만났는지가 드러났다. 자기 오른 쪽 귀가 뭉개진 것을 왕손이(김지석) 최장군(한정수)에게 보여준 직후다. "왈패였던 내가 대길과 한 판 붙었는데..남들은 그래서 내가 진 줄 알지.."라는 식으로. 이른바 화자의 회상을 통해 과거를 설명하는 '플래시 백'(Flash Back) 기법이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 '플래시 백'이야말로 '추노'가 애용해온 전매특허다. 천하의 대길이가 왕손이, 최장군과 어떻게 만났는지, 대길은 왜 추노꾼이 됐는지, 왜 추노꾼이 돼 언년이(이다해)를 쫓는지, 이 모든 게 플래시 백을 통해 궁금증이 풀렸다. '선 제시, 후 해답' 꼴이다. 하기는 '추노' 첫 장면부터 아무 설명 없이 광활한 사막에서 대길이패가 업복이(공형진)를 쫓는 장면으로 시작했으니까.

4일에는 또 한 번의 플래시 백이 나왔다. 조선에 온 청나라 장수 용골대(윤동환)가 송태하(오지호)와 어떻게 친해지게 됐는지, 용골대의 짧은 회상신을 통해 설명해준 것이다. "조선의 무관을 몰라봐서 미안하오." "오랑캐라고 부른 것 경솔했소이다." 소현세자를 옆에 두고 둘이 한바탕 검투를 한 후다. 그래서 기를 쓰고 용골대가 사형에 처할 뻔한 송태하를 구해준 것이군, 덕분에 대길이도 산 것이군..이 플래시 백을 통해 모든 궁금증은 논스톱으로 풀린다.

재미난 점은 이 플래시 백이 말하는 사람, 회상하는 사람에 따라 사실이 왜곡될 수 있는 지극히 주관적인 시점이라는 것. 따라서 소위 3인칭이나 전지적 작가 시점의 '객관성'과는 좀 거리가 멀다는 것. 짝귀가 대길과 인연을 리얼하게 말한 직후 왕손이가 "대길은 그렇게 말 안하던데?"라고 쏘아붙인 이유다. 결국 지금까지 나온 플래시 백은 또다른 누군가의 플래시 백에 의해 뒤집혀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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