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춘석 작곡사 |
원로 작곡가 박춘석씨가 14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0세.
뇌졸중으로 투병하던 박씨는 이날 오전 서울 강동구 둔촌동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빈소는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8일 오전 8시며, 장지는 경기도 성남 모란공원묘원으로 정해졌다.
이날 오전 한 관계자는 머니투데이 스타뉴스와 통화에서 "고인의 장례가 5일장으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이는 고인이 한국 가요계에 남긴 업적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1930년생인 고인은 부유하고 다복한 가정에서 자라 '신동'으로 불리며 불과 4살 때부터 풍금을 자유자재로 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다.
고인은 1954년 백일희가 부른 '황혼의 엘레지'를 시작으로 대중적인 곡들을 만들었으며, 2년 뒤 발표한 '비 내리는 호남선'의 히트를 계기로 천재성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고인은 1964년 트로트로 급선회, 이미자와 콤비를 이루면서 전성기를 맞게 된다. 바로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황혼의 블루스' '아네모네' '타국에서' '노래는 나의 인생'까지, 이미자와 호흡을 맞춘 곡들이 연이어 히트하며 최고 인기 작곡가 반열에 올라섰다.
1987년에는 한국 음악 저작권협회 회장을 거쳐 1995년에는 문화훈장 옥관장을 서훈 받았다. 하지만 94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에는 일체의 의사 표현이나 거동을 못하고 동생 박금석씨의 보살핌을 받아왔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가요계에 큰 족적을 남긴 고인이기에 가수들의 안타까움도 더하고 있다.
트로트 가수 태진아는 이날 오전 머니투데이 스타뉴스와 전화통화를 갖고 "가요계 큰 슬픔"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태진아는 "고인은 우리 가요계에서 큰 의미가 있는 분"이라며 "오늘 날의 이미자 선배를 있게 만드신 분이고, 그야말로 대선배들도 박춘석 선생님의 곡은 안 받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며 고인을 기억했다.
이어 "고인은 작품을 쓰는 선생님 중 큰 별이셨고, 별 중의 최고의 별이셨다"라며 "그런 큰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건 가요계 큰 슬픔"이라며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태진아는 또 "하늘나라에 가셔서도 우리 후배들, 가수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실 분"이라며 "정말 안타까운 분이 돌아 가셨다"고 거듭 슬퍼했다.
네티즌들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를 글로써 고인의 사망을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