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또한 누구 한 사람 지켜주려고 그런 것 아니냐."(송태하)
역시 초록은 동색이고, 자웅은 동체인 것이다. 단 2회만을 앞둔 KBS 사극 '추노'의 대길(장혁)과 송태하(오지호)가 드디어 통했다. 서로를 인정했고, 서로의 삶을 받아들였으며, 서로 같은 방향을 보기 시작했다. 추노꾼이 됐든 훈련원 무관 출신이 됐든, 과거 언년이를 좋아했든 현재 혜원이와 같이 살든, 두 남자는 짐승남인 동시에 순정남이었던 거다. 방송 22회만이다.
서로를 알아본 건 진작이다. 바로 방송초반 첫 대면을 이뤘던 갈대밭 검투신. 비록 천지호(성동일) 패거리의 화살 공격에 이날 첫 검투는 싱거운 무승부로 끝났지만, 이들 마음속엔 서로의 눈빛과 검기가 새겨졌다. "그 놈, 함부로 대할 놈이 아니야"라는 대길의 검투 후 대사처럼, "넌 누구냐?"라는 송태하의 검투 중 대사처럼. 영웅은 서로를 단박에 알아보는 법이니까.
하지만 꼬인 운명 탓에 두 짐승남은 이후 모질게 맞붙었다. 좌의정(김응수)의 돈 500냥 사주를 받아 송태하를 쫓았던 대길, 제주에 있는 원손을 구하기 위해 앞만 보며 달려야 했던 송태하. 둘은 쉼 없는 난전을 벌였다. 이 사이 오해는 더욱 쌓여갔다. "그러니까 왜 왕손이(김지석)와 최장군(한정수)을 죽였냐고?"(대길), "그러니까 네가 내 부하들을 죽인 것이더냐?"(송태하)
언년이(이다해)의 존재는 이들 순정남을 더욱 괴롭혔다. 그렇게나 팔도를 돌아다니며 찾아 헤맨 언년이 다름 아닌 송태하와 같이 있을 줄은, 혜원이 몇 번이나 "제 마음속의 정인"이라고 흐느꼈던 이가 다름 아닌 대길이었을 줄은 두 순정남은 꿈에도 몰랐던 게다. 따뜻하게 덥힌 조약돌을 건네줬던 대길의 그 순정, 평생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고 맹세한 송태하의 그 의리. 그 순정과 의리는 차라리 서로 외면하는 게 좋을 뻔 했다.
그러나 오해는 풀렸고 결국은 통했다. 인간말종 하급관리 오포교(이한위), 제 앞가림 바쁜 소시민 방화백(안석환), 비비꼬인 만년 2인자 황철웅(이종혁)은 백년을 살아도 모를 두 남자의 속정은 그렇게나 서로를 강하게 당겼던 거다. 영화 '친구'의 카피가 맞았다. "우리는 함께 있을 때 두려울 게 없었다." 그리고 18일 22회 방송분은 함께 한 그들이 얼마나 폭주할 수 있는지 보여준 시원한 한 판이었다.
그렇다고 이들의 행복한 조우가 오래 갈까. 원손은 결국 22세에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죽고, 왕위는 예정대로 봉림대군(효종)이 이어받은 '역사'라는 팩트 앞에, 두 순정남과 짐승남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들의 삶은 태생부터 비극 아니었나. 뜻이 더 컸던 송태하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정이 더 깊었던 대길은 삶과 인정의 수레바퀴에 깔려 휘발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후 세상은 노회한 좌의정이 살아남고, 기생충 같은 오포교가 살아남고, 불쌍한 방화백이 살아남고, 거리에는 노비해방을 외친 패거리들의 시체만이 쌓이진 않을까. 송태하 대길, 결국 잠시나마 통한 그 때, 서로의 적을 한방에 때려눕힌 후 '씨~익' 웃었던 그 때가 오롯이 좋지 않았을까. '추노'는 이제 그 비극의 종착지를 향해 냉정히 달려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