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 감독 "'작은연못', '반지의제왕'처럼"③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0.03.2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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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균 기자 tjdrbs23@


이상우 감독은 연극계에선 누구나 인정하는 거성이다. 극단 차이무의 대표이며 '비언소' '변' '늙은 도둑 이야기' 등을 연출하는 평생 현역이다.

그런 그가 영화로 외도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영화 연출 제의를 숱하게 받았으나 "내 판이 아니다"며 고사했던 터였다. 하지만 '작은 연못'을 연출한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연못'은 이상우 감독이 깃발을 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작업이었다. 그가 부르자 문성근, 박광정, 강신일, 이대연, 김뢰하, 전혜진, 신명철, 이성민, 전혜진 등 연극무대 출신 배우들이 출연료가 웬말이냐며 버선발로 달려왔다.

한국전쟁 당시 노근리 사건을 그린 '작은 연못'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투자도 쉽지 않았고, 개봉도 여의치 않았다. 영화 촬영이 마무리된 지 4년만, 영화 제작이 결정된 지 8년만에 오는 4월15일 관객과 만난다. 이상우 감독의 일성을 들었다.

그는 사진 촬영이 와인바에서 진행되자 "나는 와인 먹는 사람이 아니니 병이 안나오게 해달라"며 웃었다.


-그동안 연극을 연출해오다 '작은 연못'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뭐 내가 그리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웃음)이 이야기는 영화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50여명이 주인공인 이야기는 연극으로는 힘들지.

-다른 영화처럼 3~4명의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끄는 게 아니라 많은 인물들 전체가 주인공이다. 그런 만큼 관객이 받아들이기가 낯설 수 있는데.

▶그러는 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더 쉬었겠지. 하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당시 사건을 겪었던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 몇 명으로 풀어나가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것 때문에 이견도 있었고. 그래도 이런 이야기가 맞다고 생각했다. 이상우가 연출하는 데 다른 영화들과 다른 색깔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영화가 굉장히 선하다. 양민에게 총을 쏘는 미군조차 선하게 그렸다. 그러다보니 익숙한 갈등구조가 없는데.

▶내가 원래 착해서.(웃음) 원래 이 영화를 구상할 때는 '반지의 제왕'처럼 만들고 싶었다. 샤우론이라는 절대악에 맞서는 선한 사람들의 노력. 서로 죽고 죽이는 문화가 세상을 지배해선 안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어떤 개인의 이야기도 아니고 또 남들 하는 식으로 하기도 싫었다. 똥고집을 부린 게지. 영화 처음 하는데 내식으로 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무리 자체가 주인공인 영화를 기획했다.

-혹자는 '작은 연못'이 반미 영화냐고도 하는데.

▶보고 싶은데로 보는 것이니깐. 미군은 당시 전쟁도 모르는 10대 후반 젊은이들이 처음에 주로 한국에 배치됐다. 도와주러 왔지만 전쟁도 상황도 몰랐던 거지. 그러다 줄줄이 죽어나가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 자체가 비극이다.

-김민기 노래인 '작은 연못'을 제목으로 사용했는데. 극 중에도 등장하고.

▶처음 기획했을 때 '작은 연못' 가사 내용이 이 영화에 딱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민기에게 허락을 구했지. 공짜로 쓰라고 하더라. 그래서 아예 김민기 노래에 뮤직비디오처럼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영화가 평화로운 마을에서 시작돼 큰 사건을 겪고 다시 아이들이 돌아오고 또 살아남은 아이 중 한명은 학도병으로 가는 식으로 마무리되는데.

▶아까 말한 것처럼 '반지의 제왕' 같은 형식으로 하고 싶었다. 평화로운 호빗족 마을에 전운이 감돌고 위기를 겪고 극복한 다음 다시 또 다른 시작이 예고되는.

-배우들의 호연이 놀라웠는데.

▶편집 감독이 커팅 포인트가 어디인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다 그림이라고. 노모에 아기까지 데려와 줬으니 감사할 뿐이다. 이 영화는 거짓말같은 편집이나 기술은 사용하지 말자고 했다. 배우들이 그렇게 현실을 잘 그려준다면 상업적인 장치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사건 자체로 끌고 나가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스타일이 이야기를 하는 법이다. '작은 연못'은 그런 스타일이 이야기를 이끄는 영화인 것이다.

-미군이 총알이 빗발치던 쌍굴 장면에도 특별한 장치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그렇다. 스케치처럼 찍었다.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하지 않아도 워낙 일어난 일이 극적이었으니깐. 실제로 당시 아기가 두 명 태어났고 또 죽었다. 아기가 울어서 총알이 날라 오니깐 아버지가 아기를 죽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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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균 기자 tjdrbs23@


-영화에 등장하는 대문바위는 마을 자체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상징하는데.

▶헌팅 가다가 우연히 그 바위를 보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배우들도 그 느낌을 알더라. 마을 자체가 진짜 식구처럼 느껴져야 했다. 그래서 나와 작업을 오래한 배우들을 모았다. 처음에는 우려도 했는데 진짜 시골 사람들처럼 보이더라.

-CG로 등장하는 고래는 역사를 상징할텐데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빼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 그게 삶이고 역사가 아닌가. 그 많던 고래들이 사라지고 있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운동을 한다. 고래를 지키자고 하는 게 이 영화의 의미가 맞닿는다고 생각했다.

-한국전쟁 60주년으로 당시를 스펙터클하게 재연하는 작품들이 많은 준비되는데.

▶반전을 이야기한다며 전쟁을 스펙터클하게 만드는 데 반대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미군이 등장하는 장면도 없었다. 워낙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으니깐 넣었다.

-북한군 학도병이 등장한다. 어른 병사가 등장했다면 마치 해방군처럼 느껴졌을텐데.

▶나도 그런 것을 경계했다. 살아남은 아이와 비슷한 또래 아이가 전쟁에 참여했다. 그런 슬픔을 그리고 싶었다.

-어찌보면 판타지영화 같은데.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점점 나쁘게 변하는 것 같다. 자기 중심적으로 변하고. 이 영화에 아이들이 거지꼴로 돌아오는데 그들의 세상은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판타지적인 느낌이 있다.

-영화가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보이는데.

▶슈퍼 16mm로 촬영한 탓이다. 이 영화는 배우와 스태프, 하나하나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졌다. 나는 깃발을 든 게 아니라 촉매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이 영화는 당시 사건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위안이 될까.

▶전쟁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마을사람이 호적에 등록된 게 178명이었다. 그 중 44명이 살아남았다. 가슴 아픈 이야기는 나도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방식을 찾았다. 공감을 찾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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