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들이 "전도연한테 감동" 입모은 사연

지금 프랑스 칸에서는 ‘제63회 칸 영화제’가 한창 진행 중이며 시각을 다투며 칸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몇 년 전만 해도 ‘칸 영화제’ 하면 저 멀리 바다 건너, 낭만의 나라 프랑스의 고급스런 영화제라는 생각이었을 뿐 우리랑은 뭐, 그리 친밀한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대종상 영화제’니 ‘청룡 영화제’니 하는 영화제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이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몇 년 전부터 한국의 영화들이 조금씩 소개되고 2007년에는 배우 전도연이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부터 칸은 이제 더 이상 잡지에서만 보는 영화제가 아닌 우리도 함께 즐기는(?) 영화제가 된 것 같다. 이를 증명하듯이 올해 경쟁작에 오른 ‘하녀’는 현지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는 기사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하녀’의 여주인공 전도연은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만의 배우가 아니라, ‘칸의 여왕’으로 당당히 서있다 이 말씀이다.


그렇담 전도연, 그녀가 ‘칸의 여왕’이 되기까지 단순히 운발(?)로 배우 생활을 했을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노력한 자에게 결과적으로 큰 상이 내려지는 게 세상의 법칙이니까. 물론 운이 좋아서 얼마간은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운발(?)은 운발(?)일뿐, 노력의 대가가 따르지 않으면 그 이상의 성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내가 본 전도연, 그녀는 분명히 ‘노력하는 배우’였다.

방송작가를 하면서 전도연을 만날 일이 뭐 그리 많았겠는가. 어찌 보면 만났다고 말하기에 부끄럽게도 딱 한 번을 봤을 뿐이다. 하지만, 그 한 번으로 그녀가 얼마나 멋진 배우인지를 알 수 있었다.

몇 년 전 모 토크쇼를 할 때였다. 그 당시 그녀가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사실 그녀의 오락 프로그램 출연은 꽤 이슈였었다. 워낙 영화 외에 다른 곳에는 얼굴을 비추지 않았으니까. 그런 그녀가 게스트였으니 제작진들 모두 녹화날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당시 어떤 사정에서 오전 9시 30분에 녹화를 하게 됐다. 대개 방송 프로그램들의 녹화 시간은 빨라야 오후 1시 정도인데, 오전 9시 30분 녹화 시작이란 건 방송국에선 거의 새벽이나 다름없는 시간이다. 그 날 제작진들은 녹화 준비를 해야 했으니 좀 일찍 8시 30분 정도에 녹화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대기실의 문을 연 순간, 제작진들 모두 깜짝 놀랐다. 전도연, 그녀가 이미 도착해있는 게 아닌가. MC를 비롯한 다른 연예인들은 모두 9시까지 오기로 했는데, 그녀가 앉아있으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어머~ 안녕하세요. 스태프들보다도 먼저 오시고... 언제 오셨어요?’ 하니 그녀가 대답했다. ‘7시에 왔어요.’ 라고. ‘네에~? 7시요? 아니, 녹화가 9시 30분인데 왜 이리 일찍 오셨어요?’ 하니 ‘마음도 가라앉힐 겸 일찍 왔어요. 급하게 오면 녹화를 잘 할 수 있겠어요? 미리 와서 준비해야죠’하는 게 아닌가. 고른 치아를 깨끗하게 드러내는 특유의 웃음을 보이며 말이다.

그리고 매니저에게 조용히 전해들었다. 그날 새벽 5시 전에 일어나 메이크업을 끝낸 그녀는 영화 촬영장에도 언제나 일찍 간다는 것이다. 그것도 약속 10분 전에 일찍 도착하는 게 아니라, 기본이 한두 시간 전이란다. 이유는 아무도 오지 않아도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날 촬영분에 대해 미리 감정을 준비해놓기 위해서란다.

그 얘기를 듣고 제작진들 모두 감동을 받았다. 매주 진행되는 녹화를 돌이켜봤을 때, 솔직히 약속된 시간에 딱 맞게 도착하는 게스트들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이 10~20분 이상 지각이며, (약속 시간은 녹화 30분~1시간 전이니까 그렇게 지각해도 물론 녹화 시간엔 지장이 없으니까...) 빨리 왔다고 해도 10~20분 전에 오는 것이며, 심지어 녹화 시간이 지나서 도착하는 게스트들도 심심찮다. 그런데, 거의 2~3시간 전에 도착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물론 그녀 이후로도 이런 게스트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 날 녹화를 끝내고 제작진들이 잠깐의 수다 시간을 가졌다. 주제는 ‘전도연한테 감동이었어’라는 주제꺼리로 말이다. 단순히 약속을 잘 지키는 게 아니라, 어떤 촬영이든 자신의 기를 한껏 모아서 준비하는 그녀의 자세를 보고 감동 안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가 ‘칸의 여왕’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그냥 ‘대충 그까이꺼~’ 하며 연기해서 운 좋게 ‘칸의 여왕’이 된 게 아니었다. 노력이란 씨앗의 당연한 열매였다. 그렇게 그녀를 직접 만난 건 한번이었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잠이 덜 깬 방송국 대기실에 조용히 앉아있던 그녀의 모습을. 그래서 전도연이란 배우가 더더욱 매력적이었던 그 순간을 말이다.

‘하녀’가 올해 칸 경쟁작들 중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지 알 순 없지만, 분명 그녀의 연기는 늘 그랬듯 멋질 거라는 거,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수연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