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힐 듯 잡힐 듯한데 아무리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을 때’ ‘보일 듯 보일 듯한데 전혀 보이지 않을 때’
이건 내가 목표한 성적일 수도 있고, 게임 점수일 수도 있으며, 운동회 계주에서 앞에 달리는 경쟁자일 수도 있고... 어쨌든 뭔가 성취하고 싶어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애를 쓰는데도 아슬아슬하게 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이럴 때 우리는 흔히들 ‘안달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안날나는 일’에 미칠 듯이 시달리다가 결국은 성취했을 때는 어떤가? 힘들었던 만큼 그 기쁨도 몇 배가 되지 않는가?
그래서일까? 대부분 사람들은 연애도 안달나 미치겠다, 라고 하면서도 밀당, 즉 밀고 당기기를 즐긴다. 아마도 나한테 잡힐까, 말까 하는 일종의 간질간질한 스릴감이 있어야만 그 사람이 내 사람이 됐을 때 더욱 소중하게 느껴져서일까? 어쨌든 ‘밀당’의 수준을 넘어서 ‘나쁜 남자’, ‘나쁜 여자’한테 끌리는 것만 봐도 사람들은 쉬운 일엔 별로 매력을 못 느끼는 것 같다.
이렇게 안날나는 걸 제대로 이용(?)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 드라마 ‘나쁜 남자’의 주인공 김남길이다. 드라마가 아직 초반부지만, 일단 방송된 부분만 보면 ‘나쁜 남자’ 맞다. 극중의 온갖 여자들을 다 흔들어놓고 있으니까. 신분상승을 꿈꾸는 가난한 여자에, 재벌집의 철부지 딸에, 아이 있는 유부녀에, ‘나쁜 남자’ 맛을 살짝 간보고 나더니 지금 다들 난리났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떠나질 않는 ‘나쁜 남자’ 생각에 말이다. 심지어 뭔가 음모를 숨기고 있어 신비주의로 보이기까지 하니, ‘나쁜 남자’ 이미지 제대로 성공했다 이 말씀이다.
하지만 드라마 내용은? 음... 가끔씩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시놉시스나 등장인물 뭐, 이런 건 다 납득이 가지만, 스토리면에서 이해 안 되는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어, 건욱(김남길)에게 재벌집 아들인 척 자신을 속였다며 재인(한가인)이 화를 낸다. 예쁜 여자, 한가인은 절대 안 할 것 같은 욕도 약간 섞어가며 심하게 말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드라이브를 하고, 떨어진 만년필을 주웠다는 인연으로 갑자기 절친처럼 친해진다. 이런 식으로 내용들이 비약적으로 전개될 때, 손발이 오그라들며 민망해진다 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남자’가 화제인 건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답은 김남길 때문이다. ‘나쁜 남자’가 갖춰야할 몇 가지 기본 덕목을 다 담고 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 덕목 중의 첫째, 일단 카리스마 있는 눈빛 되겠다. ‘나쁜 남자’가 사슴 같은 눈망울이라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의 눈빛은 강렬하다. 마치 햇빛에 빛을 모아서 종이를 태우게 만드는 볼록렌즈랑 내기해도 이길 정도로. 그 눈빛으로 여자들을 뚫어질 듯 쳐다보니 그 마음에 불 지르는 건 당연한 공식 아닌가.
두 번째, 약간 저음으로 깔고 있는 목소리다. 여자 마음을 들었다 놨다할 나쁜 남자 목소리가 은쟁반 옥구슬 굴러가듯 가늘고 예뻐서는... 쩝~ 역시 안어울리니까. 여기선 저음의 목소리로 유부녀에게 툭 건넨다. ‘첫사랑 해봤어요?’ 이런 식으로.
세 번째, 몸연기(?)가 된다. 사춘기 여학생들만 봐도 전교 1등 하는 남자보다 농구 잘하는 남자에게 더 매력을 느끼지 않는가. ‘나쁜 남자’가 100미터를 20초에 달리고, 턱걸이 달랑 두 개밖에 못 한다면? 뭔가 좀 언발런스하지 않냐, 이 말이다. 극중에서 스턴트맨으로 날아다니고, 오토바이 타고... 여하튼 김남길의 날쌘 모습은 제대로 보여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게 단순히 외모빨(?)로만 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단순히 얼굴이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이 눈에 힘준다고 눈빛 연기가 되는가 이 말이다. 다시 말해서, 연기력이 없었다면 ‘나쁜 남자’ 김남길은 절대 ‘나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그의 연기력이 이렇게 성장하게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큰 교통사고로 거의 2년에 걸친 재활치료라는 시련과 그 이후로 색깔있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연기력을 갈고 닦은 것이란다. 만약 그에게 이런 시간들이 없었다면? 음, 글쎄~ 어쩌면 2003년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잠깐 보여줬던 깔끔하고 착해보였던 어린 남편 이미지 정도로 그치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7년 동안 이러저런 연기로 갈고닦은 긴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선덕여왕의 ‘비담’으로 일취월장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어쨌든 얼굴만 잘 생긴 ‘향기없는 꽃’이 아니라 멋진 배우로 성장한 '나쁜 남자' 김남길, 그의 다음 연기가 기대된다. 하지만, 결과는 다음 주나 되어야 확인할 수 있겠다. 월드컵 때문에 밀려서 말이다.
<이수연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