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똑같은 마음이라도 걱정이 태산인 곳이 있다. 바로 영화계다. 한국 축구대표 선수들이 남아공 월드컵에서 선전을 펼치면 펼칠수록 극장에 관객이 뚝 떨어지는 효과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16일 개봉한 '포화 속으로'는 일단 출발은 순조롭다. 첫날 11만명이 극장을 찾았다. 월드컵에 온통 대중의 관심이 쏠려있는 상황에서 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2위를 기록한 '방자전'보다 2배가 넘는 관객이 들었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다. 17일 한국 대 아르헨티나 경기가 열리면서 극장에 관객이 줄어들 게 불 보듯 뻔하다. 실제 한국 대 그리스전이 열린 지난 12일 극장을 찾은 관객은 46만여명으로 지난 5일보다 관객이 20만명 이상 줄었다.
한국이 아르헨티나를 이겨 16강 진출을 할 경우 영화계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진다. 대중문화의 모든 관심이 월드컵이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악몽(?) 같았던 2002년이 재현될 수도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는 극장이 텅 비다시피 했다. 당시 6월 극장을 찾은 관객수는 244만명으로 5월 332만명, 7월 413만명보다 현저히 줄었다. '후아유' 등 당시 개봉작들은 쓴 맛을 톡톡히 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아공과 시차가 있다는 점이다. 23일 나이지리아와의 경기는 새벽 3시30분에 중계된다. 16강에 오를 경우 차라리 B조 1위에 오르는 게 영화계로서는 좋다. 이 경우 오는 28일 새벽 3시30분에 16강전이 열린다.
만일 아르헨티나에 지거나 비기고 나이지리아에 이겨 B조 2위로 16강에 오를 경우는 26일 오후11시에 경기가 진행된다. 토요일에 극장이 텅 비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북한이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아쉽게 진 만큼 북한전도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점도 변수다. 북한과 포르투갈 경기는 21일 오후8시30분에 열린다. TV 앞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면 영화를 비롯한 다른 대중문화는 상대적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북한과 코트디부아르 경기도 극장에 관객이 몰리는 금요일인 오는 25일 오후11시에 열린다. 이래저래 영화계로서는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포화 속으로'는 월드컵에 영화가 얼마나 영향을 받을 지 판단하는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포화 속으로'가 선전을 이어갈수록 다른 영화들도 재미있다는 소문이 나면 관객이 몰릴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당장 24일 '맨발의 꿈'이 개봉한다. '맨발의 꿈'은 동티모르에 축구 신화를 이룬 실화를 바탕으로 한 터라 월드컵과 맞물려 관심을 끈다.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가 호흡을 맞춘 스파이 로맨틱 코미디 물인 '나잇 앤 데이'도 24일 개봉한다.
16강을 넘어 8강, 그리고 4강까지 2002년의 신화를 다시 이룰 경우, 7월 극장가도 장담을 못하게 된다. 한국 축구의 선전이 극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이래저래 영화계는 좌불안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