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대한민국이 남아공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23일 오전 3시 30분부터 남아공 더반 스타디움에서 16강 티켓을 놓고 나이지리아와 한판 승부를 벌여, 2 대 2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로써 한국팀은 1승 1무 1패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온 국민이 기뻐하고 있지만 대중문화 종사자들에게는 마냥 기쁜 일만은 아니다. 대중문화의 관심이 온통 월드컵에 쏠릴 경우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다.
방송과 영화, 가요 등 남아공 월드컵에 연예계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봤다.
#방송: 독점중계 아쉽지만 월드컵 반사 효과 톡톡
이번 월드컵은 SBS가 단독 중계해 시작부터 물의를 빚었다. KBS와 MBC는 SBS를 고소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시청자의 선택권까지 뺏긴 처사라는 공분이 일었다. SBS는 거리응원까지 취재를 제한해 맹비난을 샀다.
KBS와 SBS는 '남자의 자격'에 월드컵 경기 영상을 튼 것에 대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립에도 SBS를 제외한 KBS와 MBC는 월드컵 반사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제빵왕 김탁구' '동이' 등 KBS와 MBC 드라마들은 SBS가 월드컵 중계로 드라마를 결방시키면서 시청률이 수직상승했다. SBS가 예능 프로그램도 결방시키면서 타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도 웃었다. '강심장'에 고전하던 '승승장구', 그동안 일요 예능 꼴찌를 면하지 못하던 '일요일 일요일밤에' 등은 승기를 잡았다.
KBS 2TV '남자의 자격'은 이번 월드컵 예능 프로그램 중 최고 수혜자로 꼽힌다. SBS가 현지까지 가서 제작한 '태극기 휘날리며'가 별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반면 '남자의 자격'은 '이경규가 간다'를 재연한 듯한 구성으로 호평을 사고 있다.
SBS는 비록 타 방송사에 시청률은 뺏기고 있지만 광고로 활짝 웃고 있다. 한국이 16강에 진출하면서 광고 특수가 더욱 늘어 함박웃음이다.
#가요: 신곡 발표↓..응원 행사↑
월드컵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기에 가수들도 신곡을 발표하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 기간 중 새 앨범을 내놓고 용기 있게 활동하고 있는 가수는 코요태 정도를 제외하곤 찾아볼 수 없다. 지난 5월 한 달 동안 원더걸스, 슈퍼주니어, 브라운아이드소울, 다비치 등 쟁쟁한 가수들의 신곡 향연이 있던 것과도 대조적이다.
월드컵을 겨냥한 월드컵송도 과거에 비해 신통찮다. '오 필승 코리아' '승리를 위하여' 등 월드컵을 맞아 분위기를 한껏 띄우던 음악들의 활약도 미진하다.
CF를 통해 월드컵송이 전파됐던 것을 고려하면 올해는 월드컵 CF 중 이렀다할 대박이 없었던 것도 부진의 이유 중 하나다.
반면 가수들은 월드컵 CF와 공연에는 효과를 보고 있다. 브아걸 등은 월드컵 CF에 응원하는 모습으로 출연했다. 걸그룹 뿐 아니라 밴드, 아이돌 등 많은 가수들이 야외 공연에 함께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 행사와 비견될 만한 수입은 거두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방송과 결부된 행사가 많아 출연료 정도에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월드컵 기간에도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가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슈퍼스타K'의 우승자로, 최근 첫 미니앨범을 발표한 서인국이 대표적인 경우다. 서인국 소속사인 젤리피시엔터테인먼트 측은 "서인국은 축구도 좋아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건 첫 미니앨범을 낸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월드컵 기간 중이라도 여러 지역 축제 및 방송사의 행사에 나서는 것을 우선적으로 여기며 신곡을 부르고 있다"라고 밝혔다.
감성파 남성 듀오 바이브도 월드컵 시즌임에도 불구, 본업에 더욱 열중하는 팀 중 하나다. 월드컵 기간, 단독 공연이 있기 때문이다. 바이브는 지난 18일에 이어 19일에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단독 콘서트를 갖는다.
#영화:2002년 악몽 재현?..전전긍긍
영화계는 이번 월드컵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거리로, TV로, 사람들이 월드컵 응원에 나서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이 크게 줄었다. 한국 대 그리스전이 열린 지난 12일 극장을 찾은 관객은 46만여명으로 지난 5일보다 관객이 20만명 이상 줄었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르헨티나 경기가 열린 17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포화 속으로'는 6만 3430명의 관객을 동원, 전날 12만명보다 절반이 줄었다.
나이지리아와 경기는 새벽에 열린 터라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우루과이와의 16강전은 다시 관객이 대폭 줄 것으로 보인다. 황금 시간대인 토요일(26일) 오후11시30분에 열리기 때문이다.
영화계는 한국이 월드컵에서 얼마나 선전할지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자칫 2002년 월드컵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는 극장이 텅 비다시피 했다. 당시 6월 극장을 찾은 관객수는 244만명으로 5월 332만명, 7월 413만명보다 현저히 줄었다. '후아유' 등 당시 개봉작들은 쓴 맛을 톡톡히 봤다.
당장 24일 개봉하는 '맨발의 꿈'과 '나잇 앤 데이'는 첫 주말 16강전 경기로 타격이 불가피하다. 1위를 유지하고 있는 '포화 속으로' 역시 마찬가지.
한국이 우루과이를 겪고 8강에 진출할 경우는 7월 개봉 영화도 직격탄을 맞는다. 한국이 8강에 오를 경우 7월3일 경기가 열린다. 역시 황금시간대인 토요일이다. 7월1일 개봉하는 '파괴된 사나이'도 여파가 예상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8강 경기는 새벽3시30분에 열린다는 점이다.
16강을 넘어 8강, 그리고 4강까지 2002년의 신화를 다시 이룰 경우는 영화 흥행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