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영화 '아저씨', '파괴된 사나이', '그놈 목소리', '용서는 없다'의 포스터 |
한국영화 속 아동범죄로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소재는 유괴다. 몸값을 요구하건 살해를 하건 마약거래를 시키건 간에 일단은 모두 유괴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같은 소재라도 그 활용에 있어서는 영화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잔혹복수극 '복수는 나의 것'(2002년)부터 유괴된 아들에 대한 부성을 그린 '그놈 목소리'(2007년)와 같은 영화가 있는가 하면, 유괴를 계기로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는 여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세븐 데이즈'(2007년)나 딸이 납치돼 살해당한 후 용서와 구원을 찾는 어머니의 여정을 그린 '밀양'(2007년), 유괴범의 딸이 유괴 당한다는 설정의 '잔혹한 출근'(2006년)과 같은 영화도 있었다.
유괴, 납치라는 소재가 가장 잘 맞아 떨어지는 테마는 뭐니 뭐니 해도 복수일 것이다. 특히 2008년 '테이큰'의 흥행 이후 자식을 유괴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그린 영화들은 일종의 하위 장르로 자리 잡았으며, 국내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의 작품이 다수 제작됐다. 올해만 해도 '용서는 없다', '파괴된 사나이' 등이 관객을 찾았으며, '아저씨'처럼 아버지가 옆집 아저씨로 치환된 경우도 있었다.
이들 영화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잃은 슬픔과 분노 등의 감정과 처절하고 통쾌한 복수를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을 유혹했다. 영화 속 아동들이 저항하지 못하는 약자로 표현되며 관객들로 하여금 범죄에 대해 더욱 분노하고 공감하게 한다는 점에서 여성들이 연이어 살해되는 '추격자'나 '악마를 보았다' 등의 영화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
그렇다면 유독 요즘 들어 이러한 아동범죄를 대상으로 한 복수극이 늘어난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한국영화 산업의 위축이 한몫했다. 영화제작 자체가 줄어든 것은 물론이며, 2008년 '추격자'의 흥행 이후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게 드는 스릴러가 양산됐다. 스릴러물의 수가 늘어나면서 아동범죄 복수극 또한 많아지게 된 것. 올여름 극장가에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맥이 끊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이렇게 양산된 스릴러물들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영화는 스토리상의 구멍을 소재로 커버하려는 성향을 보이며 흥행에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올해 개봉작 중 '용서는 없다'는 설경구, 류승범의 조합을 내세우고도 113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으며, '파괴된 사나이' 또한 김명민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102만 관객을 동원했다. 원빈의 '아저씨'는 소녀와 아저씨간의 감정적 교류를 묘사함에 있어서는 아쉬움을 남기지만 스타일리쉬한 액션연기로 그러한 결점을 보완한 케이스다.
아동범죄 영화들은 사회적 문제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특히 최근 조두순, 김수철 사건 등 아동을 대상으로 한 안면수심의 범죄가 자주 발생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과 분노 또한 더욱 커지고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김병익 팀장은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파급력을 생각했을 때 영화관계자들의 사회적인 책임의식이 요구된다"며 "아이들이 범죄의 표적이 되거나 학대받는 내용을 2시간짜리 오락물의 소재로만 남길 것이 아니라 아동범죄의 심각성을 알릴 수 있는 문화운동과 캠페인 병행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놈 목소리'는 공소시효 폐지서명운동을 펼쳤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불법 장기매매를 다룬 일본 영화 '어둠의 아이들'은 아동학대예방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