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위원장 "PIFF, 亞영상산업 중심됐으면(인터뷰)

[PIFF 특집]

부산=임창수 기자 / 입력 : 2010.10.0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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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유동일 기자 eddie@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떠난다. 1996년 1회를 시작으로 15년간 부산국제영화제의 한 켠을 든든히 지켰던 그는 지난 9월 7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퇴진을 알렸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길러낸 김동호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부산에서 만난 김동호 위원장은 마침 사진집에 실린 자신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프로그래머들과 허물없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나 기자를 반기는 아이 같은 미소는 일흔 넷의 나이를 무색케 했다.


1995년 8월 18일 서울 플라자호텔. 김동호 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 자리를 제안 받은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현재 공동위원장으로 있는 이용관 교수를 비롯해 김지석, 전양준 등 부산에 연고가 있는 영화과 교수들이 부산에서 국제영화제를 만들어 보자며 집행위원장 자리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해왔고, 이를 수락해 함께 준비에 나서게 됐다고.

"당시에는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20%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한국영화가 산업적으로나 질적으로 취약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다가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해외 영화인들과 한국 영화인들 간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한국영화도 1998년 이후 급격하게 성장을 하게 됐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한국영화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함께 성장한 시기였던 거죠."

김동호 위원장은 1회 2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몰려든 가운데 대형 스크린이 올라갈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1회성으로 끝날 것이라는 주변의 회의적인 시선과 경험 없이 준비한 것에 대한 우려가 일거에 사라진 순간이었다.


"영화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들에 대한 젊은 관객들의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국제 규모의 영화제가 열리는 것이기도 했고, 당시에는 일본 문화 개방 전이라 일본영화도 수입이 금지된 시기였거든요. 그런데 부산영화제에서는 열댓 편 이상의 일본영화가 상영되고 했으니, 젊은 사람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었죠."

결과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의 출범은 시기적으로도 영리한 선택이 됐다. 영토 반환을 앞둔 홍콩의 홍콩영화제는 중국 정부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고, 일본의 도쿄영화제가 경쟁 영화제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을 때였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들 영화제의 대안으로 떠오르며 급속히 성장했다. 무엇보다 아시아권에서 개최되는 영화제라는 성격에 걸맞게 아시아의 신인감독들의 영화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에 주력한 것이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해외 영화제에서 좋은 부분은 벤치마킹도 많이 했다.

"프로그램과 전략이 좋았습니다. 좋은 영화 선정에 주력한 덕분에 처음 목적대로 아시아의 신인 감독들이 부산을 통해서 첫 영화를 선보이고 세계적인 감독으로 커나갈 수 있었던 거죠. 대표적인 케이스로 중국의 지아장커 감독이 있구요. 동시에 아시아 감독들의 영화제작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PPP나 AFA 같은 프로그램을 마련했던 것이 적중했다고 봅니다.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많은 해외 영화제를 다녔고, 좋은 것을 많이 벤치마킹한 결과죠. 노트르담 영화제를 벤치마킹해 PPP를 만들었고, 베를린 영화제의 탈렌트 캠퍼스를 변형해 AFA를 만든 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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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유동일 기자 eddie@


그간 해외 수많은 영화제를 다니며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문화 외교관으로 활동한 김동호 위원장. 그는 한국영화의 해외진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김동호 위원장은 영화 콘텐츠 자체의 중요성과 함께 대외 수출을 위한 전담부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선은 영화 자체가 국제적으로 보편성 있는 주제를 갖춰야겠죠. 다양한 소재의 영화들을 만들어 나가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도적으로는 대외 수출을 위한 전담부서가 있어야 할 겁니다. 프랑스의 유니 프랑스와 같은 기구가 좀 있어서 해외진출 영화에 대해 특별한 지원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마지막으로 일선에서 물러서는 그는 후배 영화인들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아시아 감독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지원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본래 방향을 잘 유지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영화관 전용관이 포함된 영상센터 '두레라움'과 재단 법인화에 대한 기대와 당부을 전하는 그였다.

"이전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아시아 감독들에 대한 지원을 점차 늘려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2011년 완공되는 영상센터 '두레라움'이 아시아 영상사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중심기능을 가질 수 있도록 잘 기획을 하고 추진해 주었으면 좋겠고, 그밖에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안정적인 재정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재단 법인화하면서 재단의 기금을 조성하는 일에 착수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없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김 위원장은 숱한 외풍에도 굳건히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켜냈다. 지난 15년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세계영화제 기행 국문판, 영문판과 사진전 도록까지 세 권의 책을 펴낸 그는 "우선 책을 몇 권 더 쓸 예정"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먼저 세계영화제 기행의 속편을 써야할 것 같고, 그 다음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 관한 책을 써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영화를 한 두 편 찍어볼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진행된 바는 없어요. 희망사항이죠 희망사항."

영화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사랑으로 영화인들에게 사랑을 넘어 존경을 받고 있는 김동호 위원장. 퇴임 이후의 순간마저 영화로 채울 생각인 그는 영원히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으로,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의 오늘을 세운 아버지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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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유동일 기자 ed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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