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균 기자 |
류승완 감독은 '부당거래'에 쏠린 선입견을 부담스러워했다. '부당거래'가 스폰서 검사 등 사회현실을 고발한 사회파 영화로 취급하는 데 대해 머리를 긁적였다. 류승완이란 이름 자체가 갖고 오는 선입견도 부담스러워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제는 제 이름이 부담이 되고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류승완=액션=키치 코미디'라는 편견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 사회파 영화라니 부담이 배가 될 만하다.
'부당거래'는 대통령까지 관심을 두고 있는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경찰이 조직폭력배를 통해 가짜 범인을 만들고, 그 사실을 악덕 검사가 눈치 채면서 벌어지는 위험한 거래를 그린 영화다. 대통령이 경찰서를 찾아가고, 스폰서 검사가 등장하는 등 영화는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가득하다. 기자간담회에선 조폭이 검찰에 준 고급 시계가 결국 기자에게 돌아간 게 평소 언론관이 녹아들어간 게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다.
류승완 감독은 "찍다보니 다큐멘터리가 됐다"면서 "이 영화는 사회고발이 아니라 캐릭터에 공감을 갖게 하는 영화"라고 강조했다.
-'부당거래'를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사회파 영화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영화를 만들 때 내 이름이 이제는 부담이 되고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다. 나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이 영화 자체를 보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단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회파? 부정도 긍정도 하고 싶지 않다. 해석하는 사람들 몫이다.
-스폰서 검사 등 실제 일어난 일들이 그려져서 더욱 그런 것 같은데. 더구나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비슷했던 일은 MB가 아동 성폭력범 때문에 경찰서를 방문한 것 정도 밖에 없었다. 스폰서 검사 같은 것은 '이게 말이 돼' 이랬다. 그런데 찍다보니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 승범이가 '왜 영화가 다큐가 돼'라고 하더라.
-대중예술도 예술의 한 종류고, 감독의 의도가 아니더라도 예술은 분명히 사회에 영향을 주는 법인데.
▶'악마를 보았다'를 예를 들자면 그 영화는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결정을 받았다. 사회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 것일텐데. 김지운 감독의 의도는 폭력에 어디까지 미쳐가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감독의 본령은 영화를 연출하고 'NG냐 OK냐'를 결정하는 것이지, 영화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까지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산보다 나무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그래도 부담이 될 법한데.
▶그래서 심각하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먼저 공개하는 것을 고려했다. '악마를 보았다'가 제한상영가를 받는 것을 보고 더욱 그런 고민이 생겼다. 베니스영화제쪽에서 현장편집본을 보고 요청하기도 했고. 그쪽에서 '짝패'를 잘 봤기도 했고. 하지만 도저히 일정이 안 맞겠더라. 결국 지금처럼 작업한 게 맞았던 것 같다.
이 영화가 특정기관을 겨냥한 것도 아니고. 검찰이 아니라 류승완이 맡은 배역이, 경찰이 아닌 황정민이 맡은 배역이 중요한 것이다. 부분을 전체로 해석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이 영화 주제를 헛소동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쓴 시나리오로 연출했는데 본인 시나리오로 만든 것보다 더 잘나왔다는 평들도 많은데.
▶기능공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할까. 그전에도 기회가 있었는데 여러 이유로 못했을 뿐이다. '악마를 보았다'를 쓴 박훈정 작가가 썼는데 개인적으로 많이 배웠다. 예전 같으면 어떻게 류승완처럼 보일까 고민했는데 10년을 그렇게 찍으니 점점 내가 없어지더라. 어떻게 하면 이 이야기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다.
-복잡한 구조를 단숨에 잘 풀어냈는데.
▶사실 이야기 구조는 '짝패'와 비슷하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대중영화에는 스타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류승완과 정두홍은 20~30분 걸려야 캐릭터를 설명할 수 있는데 황정민과 류승범, 유해진은 3분만에 풀어내더라. 앞으로는 스타들과 작업해야겠다.
임성균 기자 |
-배우들의 영화라 할 만큼 캐릭터 묘사가 훌륭하다. 그러다보니 감독으로서 쾌감은 덜했을 것 같은데.
▶이 영화는 감독의 인터뷰가 가장 덜 필요한 영화인 것 같다. 일단 왜 만들었냐가 필요없으니깐. 쾌감이라면 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아라한 장풍대작전' 때 50초 가량 되는 신을 이틀 정도 찍었다. 그 때는 해냈다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쾌감과는 다르게 이번 영화는 굉장히 즐겁게 찍었다.
균형이란 점에선 황정민 선배와 류승범 배우가 스타일도 다르고 발화점도 다르다. 리허설을 많이 해야 하는 배우가 있고 리허설을 하면 안되는 배우가 있지 않나. 두 배우의 발화점을 맞추는 데 애를 먹었다.
-류승범 연기가 상당히 인상 깊던데.
▶승범이는 제도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더 거대한 교육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종교가 자기 기준이 됐고. 이번 영화에서 승범이가 맡은 캐릭터는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깐죽거린다고 할까. 현장에서 누가 아이디어를 내면 '니가 감독할 때 해'라고 하던지, 아니면 '어우 대단해요' 이런 것들. 승범이는 내가 구사하는 유머가 어떤 것인지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아는 배우니깐.
-결국 이 영화는 류승완의 내공과 주위의 도움으로 완성됐다는 소리인데.
▶주위의 도움은 맞고 내공이라기보다 내 껍질을 깬 것 같다. 그동안은 남의 이야기를 잘 안듣고 내 식으로 맞추려 했다면 이제는 주위를 빨아들이는 걸 알게 됐다. 이번에 최민식 선배한테 그랬다. '주먹이 운다' 때 이럴 수 있었다면 더 빨아먹을 수 있었을 텐데 미안하다고.
이번에 가편집본을 보고 와이프(외유내강 강혜정 대표)가 그러더라. 이 영화는 사회적인 공분을 일으키는 영화가 아니라 인물에 대해 공감을 얻어야 하는 영화라고. 내가 장가를 잘갔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