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권상우(왼쪽)와 고현정 ⓒ홍봉진 기자 honggga@ |
여성대통령이라는 소재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대물'이 종영됐다. 같은 여자 입장에서, 과연 여자대통령의 모습을 어떻게 그릴지 예고편만 보고 참 궁금했다. 그리고 기대했다. 나름대로 설레는(?) 마음으로 첫 방송을 봤을 때, 야, 앞으로 재미있겠는데?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이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첫 회 시청률이 18%라는 높은 시청률로 순조롭게 출발했으니까. 그리고, 월드스타 비가 나오는 '도망자'와의 경쟁 속에서도 꿋꿋했다. 하지만... 뭐, 아시는 분들은 다들 아시다시피, 작가, PD교체에 갑작스럽게 변질돼 버린 캐릭터 등으로 드라마가 좀 산으로 갔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중반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수목극 1위는 유지했지만, 솔직히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여성대통령이라는 독특하고 굵직한 소재답게 종영하는 날까지 힘 있는 드라마를 원했으니까 말이다. 그렇담 '대물'속 배우들은 어떨까?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드라마 속에서 (극단적으로 표현해서) 수혜자와 피해자가 나눠지는 결과가 보였다.
◆ 권상우가 얻은 것
대표적인 수혜자, 바로 하도야 검사 역이었던 권상우다. 한류스타인 그에게 '대물' 방영 바로 직전까지 참 많은 사건들(?)이 따라다녔다. 각종 구설수에, 이런 저런 말실수에, 말 많았던 결혼 사유에, 뺑소니 혐의까지... 한 가지 일만 겪어도 이미지 급 하락할 일들을 차례로 돌아가면서 말이다. 그런 그를 보며 안타까웠다. 평소 유쾌하고 솔직한 그가 '호감'에서 '비호감'으로 전락하는 것 같아 예전의 명성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걱정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대물' 드라마 한편으로 이미지 회복에 성공했다. 불의를 보면 물불 안 가리는 다혈질 검사, 딱딱하지 않고 친근하고 유쾌한 검사, 사랑을 위해서 자신을 헌신할 줄 아는 검사, 성공보다 정의를 선택하는 검사, 하도야 역이 그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행운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 재기발랄하고 멋진 검사 역 때문에, 권상우, 그가 대체 언제 줄줄이 소시지처럼 구설수에 올랐었는지조차 잊게 되고, 심지어 권상우=하도야, 같은 착각까지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거 뭐, '대물'은 그에게 완전히 하늘이 내려준 선물 같은 작품이다. 극의 흐름이 흔들리건 말건, 다른 캐릭터들이 변질되건 말건, '하도야'라는 인물은 충분히 빛이 났으니까. 그는 '대물'이란 드라마로 '이미지 회복'이라는 멋진 선물을 얻었다. 이 정도면 그의 연기 인생에서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 중에 하나r가아닐까.
◆ 고현정이 잃은 것
반대로 안타까운 배우는 바로 고현정이다. 예고편만 보고도 여자대통령이라는 역할에 그녀만큼 딱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배우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초반 몇 회 동안 '역시 고현정'이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그녀의 카리스마는 빛을 발했다. 억울하게 남편을 잃고, 그 남편의 죽음을 위해 당당하게 싸우는 '서혜림'을 보며 공감했고, 박수를 보냈다. '서혜림'이란 캐릭터도 멋졌고, 배우 고현정도 멋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회, 다음 회를 손꼽아 기다렸다. 지금까지 남자들의 전유물 같았던 정치판에서 여성대통령이 되가는 과정에 어떤 활약상을 보여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며 말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활약상은커녕, 그 동안 보여줬던 카리스마도 잃어버린 채,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로 변질돼 버린 게 아닌가. '서혜림'의 대사들을 듣고 있노라면, 손발이 오글거리는 민망함을 견딜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오토매틱으로 몸을 긁적이기도 했다. 정치가 이론만으로 되는 게 아닐 텐데, 대통령 당선이 대강 운 좋아서 되는 게 아닐 텐데, '대물'속의 여성대통령은 눈물 몇 방울, 옳은 말 몇 마디로 온 국민의 추대를 받으니 도대체 공감이 안 되더라, 이 얘기다.
물론 이 모든 건 '서혜림'이란 캐릭터의 문제였지만, 안타까운 건 이를 연기한 고현정, 그녀에게 치명타였다. '선덕여왕'에서 보여줬던 '미실'의 카리스마는 온데 간데 사라져버리고, 때로는 어리바리한, 때로는 연약해 보이는 '서혜림'의 이미지가 남아버렸으니까. 1등으로 달리다 중간에 돌에 걸려 넘어진 100M 선수처럼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고현정, 그녀가 바로 무너진 건 아니다. 하지만, 다음 작품 선정엔 그 어느 때보다 심사숙고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담 고현정, 권상우, 두 사람도 이처럼 생각할까? 각각의 배우들은 '대물'이란 작품을 어떤 작품으로 기억할지, 그들의 속마음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