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기자 photoguy@ |
5일 개봉한 '심장이 뛴다'(감독 윤재근·제작 오존필름)는 그저 앞으로만 내닫는 두 사람의 영화다. 그열기는 영화가 담아낸 여름의 공기만큼이나 후끈하다. 영화의 한 축을 맡은 이가 바로 배우 박해일(34)이다.
그가 맡은 '휘도'는 청춘이라 하기엔 조금 나이든, 철부지 아들이다. 재가한 어머니에게 이런저런 구실로 돈을 뜯어내면서도 딱히 미안해하지 않으며, 고급차 몰고 택시 노릇해 하루하루 벌어 살면서 '한탕'을 꿈꾼다. 박해일은 그 삐딱한 남자를 적당히 불량스럽고 적당히 안쓰럽게, 그리고 아주 생생하게 그린다.
그러나 박해일은 '한탕'과는 거리가 먼 배우다. 꼬박꼬박 작품을 하면서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가는 그는 작품성과 흥행성 사이 그 오묘한 줄타기를 신통하게 해내고 있는 드문 배우이기도 하다.
-전작이 '이끼'다. 노련하게 주무르는 강우석 감독을 경험하고 신인 감독과 작업했는데.
▶물론 간극이 있다. 작품의 방식도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다르고. 같은 장점도 다르게 느껴진다고 할까.
강우석 감독은 필모그래피에서 드러나듯 많은 관객과 소통하는 영화를 찍으시고, 연출 스타일도 명확하다. 그런 부분들이 제게도 좋은 경험이 되겠다 생각했고, 실제로도 못 만났던 배우와 스태프를 만나 좋은 경험을 했다.
반면 윤재근 감독은 직접 쓴 시나리오로 처음 장편 데뷔를 했고, 묻고 물으며 만들어갈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 함께 시너지를 내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 하다보니 그 사이에서 노하우가 생기기도 하더라.
-남녀 투톱이 나오는데 김윤진과의 만남이 짧고 굵다. 만나는 게 네 씬 쯤 되더라.
▶구도와 형식이 좋게 보자면 새롭고, 낯설 수도 있다. 남녀 배우가 나온다고 하면 흔히 멜로 구도가 되는데 이번엔 각기 다른 환경에서 마주치치 않고 살았던 사람들이 부딪치고 문제가 커가게 된다. 감독님은 두 작품을 찍는 것 같다고 하더라.
-직접 본 김윤진은 어떻던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배우로서의 힘을 제대로 느꼈다. 좋은 선배다. 깊고, 강단도 있고. 맡은 역할에 대한 에너지를 충분히 분출하셨다. 인상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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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보니 스릴러가 됐다. 장르를 잘 알고 매력을 알아서 한 건 아니었다. 이야기가 가는 느낌에 호기심이 생겨서 출발했는데 그게 스릴러가 되는 거다. 이번 작품에선 벗어나고 싶은 지점이 있었다. 이번 건 장르를 딱 구분 짓기가 쉽지 않다. 명확하다면 그거에 따라서 쭉 가면 될 텐데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는 것도 해봄직한 거 아닌가.
-휘도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한탕주의랄까? '암 그런 사람 많지' 하는 생각도 들고.
▶대사에도 있지 않나. 남 밑에서 월급 받아서 어떻게 돈 모으냐고. 차곡차곡 쌓아가는 개념의 인생이 아닌 거다. 엄마가 뭐라고 하면 '낳지 말지 그랬어' 하는, 그런 친구다. 그래도 결핍이 있고, 순정도 있고, 나름의 희망을 갖고 나름 주어진 상황에서 치열하게 살긴 한다. 그게 성실한 희망이 아니어서 그렇지. 그러다 사건에 직면해서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좀 불량스러운 캐릭터는 해왔지만 이런 '양아치'는 처음 아닌가.
▶이렇게 끝까지 드러내놓고 가는 캐릭터는 없었다. 뻔뻔하고, 대책없고… 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간 캐릭터다. 모두를 대변했다고는 못하지만 왜 그런 사람 있잖나. 그렇다고 완전히 새롭다고 보여지는 건 아닌 것 같고, 제가 들어가면서 그에 따라 변주되는 게 있나보다.
-대리만족도 하겠다.
▶대리만족이 없을 순 없다. 흥미롭게 작용한 부분이 많다.
-'한탕주의'가 꼬박꼬박 부지런히 작품을 하는 배우 박해일의 행보랑 어울리는 말은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지 않나. 그게 가능한 능력이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한 번에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영화에도 나온다. 어머니의 편지에 '모든 거 다 한 번에 이루려고 하지 말고 차근차근 올라가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참 세다. 배우 입장에서도 그 의미가, 세다. 차근차근 하나씩 하라는 것.
휘도 캐릭터가 저와 다른 면이 있기는 해도 저와 동떨어진 선상에서 가지는 않았다. 내심 성장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고, 그걸 또 관객과 나누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단지 오락거리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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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도 슬슬 물어보시더라. 입장이 전도되지 않느냐고. 휘도 쪽에 더 고민이 되고 애정이 가는 걸 보면 아직까지는 쉽게 와 닿고 하는 시기가 아닌가보다. 사실 그것도 잠깐이고 조금 더 있으면 '아 답이 없구나' 하는 식이 되겠구나 생각은 한다.
-30대 중반이 됐다. 박해일도 이제 연륜이 묻어나는 느낌이다.
▶약간씩 애 티가 덜 난다는 거지, 나이 값 못하면 문제죠 문제. 아직도 철 안들었다 하는 분도 있지만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 생각들이 많아지고, 짊어지는 짐도 생긴다. 나이 먹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요즘 노래에 적응이 안 될 때? 걸그룹도 그렇고, 아이돌에 잘 동화가 안된다. '나도 예전에 서태지 좋아했는데… 우씨' 하는 생각도 들고.(웃음)
-연기하는 데선 어떤가.
▶이게 참 조심스러운 건데, 더 진짜의 감정을 다루는 게 쉽지 않아진다. 더 어렵다.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제가 가져야 할 감정도 깊어져야 하고, 책임감이 생기고 또 요구도 되고, 또 넓기도 해야 하고… 그런 숙제가 생긴다. 그런데 저라는 사람은 그냥 한 사람이지 않나. 경험도 같은 나이 대 누군가와 비교해도 넓지 않고, 제가 가진 건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박해일이라는 사람이 '진짜로' 느끼는 감정과 경험을, 진짜 박해일을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떤 정서, 어떤 캐릭터를 그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출발은 저라는 사람인 거다.
-TV 예능 프로그램에는 계속 안 나갈 생각인가. 오죽하면 라디오 출연하는 게 기사가 됐다.
▶예능 프로그램은 간단명료해야 되거든요, 프로그램 목적에 맞게. 그렇게 말을 못한다. 저만 재미있자고 TV에 나가는 건 아니지 않나. 나가서 또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좀…. 스스로도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중구난방 이야기를 해도 천천히 정리할 수 있는 자리가 편하다.
-이러니까 걸그룹이 적응이 안되는 거 아닌가. 휴대전화도 7년째 같은 걸 쓰고.
▶그런 식으로 저를 구식으로 몰아가시려고….(웃음) 강박은 없다. 필요하면 바꿔나가겠지만 뭐가 대세라고 해서 훅 따라가는 건 아닌 것 같다. 저도 '스마트해질' 때가 되긴 했다. 물리적인 한계가 있으니까. 011 번호 언제까지 쓸 수 있는지 알아보기기는 했다. 당분간은 괜찮단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