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 '내조의 여왕' 아줌마 천지애로 사랑받았던 그녀는 '역전의 여왕'에선 똑 부러지는 워킹맘이 되어 다시 시청자를 만났다. 할 말을 참지 않고, 눈물을 참지 않는 솔직하고 당당한 황태희는 공감 100배의 캐릭터로 천지애와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중이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MBC 드라마 '역전의 여왕'은 방송 초기 한 자릿수 시청률 꼴찌를 기록했고, 무려 10회를 연장(최종 11회)하기도 했다. '여왕' 시리즈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김남주의 마음고생이야,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그러나 좋은 드라마는 시청자가 먼저 알아보는 법이다. 2010년 MBC 연기대상에서 김남주가 대상을 차지한 그 주, '역전의 여왕'은 드디어 월화드라마 시청률 1위에 올랐다! 그녀에게는 더욱 의미심장한 승리다.
한낮에도 영하의 추위가 계속되던 1월의 저녁, 여전히 '역전의 여왕' 촬영이 한창이던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환한 표정의 그녀는 "역전할 때까지 연장하려고 했다"며 호쾌하게 웃었다.
-드디어 역전했다.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결국 역전할 줄 알았다. 역전할 때까지 연장하려고 했다.(웃음) 이렇게 좋은 드라마, 내가 사랑하는 작품이 인정받아서 더 좋다.
-연기대상도 수상했는데, 겹경사다.
▶사실 받았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았다. 시상식이 새벽 1시에 끝나면 바로 출발해서 경기도 연천 눈밭에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수상 소감에서 가족들도 빠뜨렸을 정도다. 그날 딱 40분 자고 촬영했다. 샴페인 한 잔 못 먹었다. 다 쫑파티 때로 미뤘다.
-'내조의 여왕'에 이은 2번째 작품이라 모든 게 더 남달랐을텐데.
▶'내조의 여왕' 당시 생각없이 뛰어들었다면, '역전의 여왕'은 정말 내 작품이라는 생각이 있다. 초반에는 시청률이 한 자릿수로 내려가고 했는데,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잘 되면 김남주의 힘, 또 못 되도 김남주의 탓 아닌가. 그것도 이제야 말할 수 있는 거다. 연기대상 탔을 때도 사실 그 마음고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뭔가 구차하더라.(웃음)
-그간 말하진 않았지만, 한계를 느끼기도 했겠다.
▶나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해 왔다. 늘 힘이 되는 건 내가 현실성 있고 멋진 작품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었다. 박지은 작가에게 박수쳐주고 싶다. 사실 상을 받을 때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거였다. 100여명의 스태프가 한결같이 저를 여왕으로 대접해주고, 꿋꿋이 그 자리를 지켜준 것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출연진도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정말 우리 팀 모두가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남편 김승우씨의 외조도 대단하다고 들었다. 아침마다 시청률을 문자로 보낸다던데.
▶오전 7시면 문자로 시청률을 보내준다. 우리 것만이 아니라 KBS, SBS 드라마도 같이. 오빠가 잠을 못 잔다. 7시까지 꼬박 안자고 기다려서 시청률을 보내주는 거다. 이제는 그 시간쯤 되면 으레 시청률 문자 왔겠구나 하고 스태프가 내 주위로 모인다. 시청률 역전 했을 땐 나보다 더 기뻐했다. 난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목맬 순 없었는데, 오빠는 시청률에 집착하더라.(웃음)
ⓒ이명근 기자 qwe123@ |
▶새해부터 역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서 너무 기쁘다. 황태희처럼 새해에는 모든 분들이 역전하시길 바란다. 인생 뭐 있어 역전하는 거지. 역전을 꿈꾸며 살아가는 거지.
-제목 덕인가. 제목이 좋다.
▶어머, 우리끼리는 '승리의 여왕' 했으면 처음부터 승리했을 텐데 괜히 '역전의 여왕'으로 해서 역전하는 동안 피를 말린다고들 그랬다. (웃음)
-20부작에서 무려 30부로 연장을 하기로 한다는 건 분명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텐데. '김남주는 승부사'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MBC에다 거꾸로 이야기했다. 역전할 때까지 연장하자고. 너무 분통이 터져서 역전 안하고 끝나면 못 끝내겠다고.
-아까 얘기가 농담이 아니라고?
▶정말이다.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미리 얘기를 하는 바람에 막상 연장할 땐 나한테 동의하느냐고 아무도 안 물어보는 거다. 당연히 할 줄 알고. 심지어 내가 연장에 오케이 했다고 소문이 먼저 났다.(웃음)
-김남주가 생각하는 황태희의 최고 명장면은 뭔가?
▶'그만둬도 내가 그만둬' 하면서 용식이(박시후 분) 따귀 때린 장면이다. 내게는 가장 센 신이기도 했다. 찍고 나선 '황태희 성격 장난 아니다. 본부장이고 뭐고 없구나' 했었다. 2회에서 사표를 멋지게 던지는 신도 있다. 모두 통쾌한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던 부분이다.
-극중 황태희가 '나 황태희야. 내가 이대로 죽을 것 같아' 하면서 눈을 부릅뜨는 장면이 있었다. 혹시 살면서 '나 김남주야' 했던 순간은 없었나.
▶있었다. 복귀하기 전에 슬럼프였을 때. 우리 매니저 앞에서 딱 그랬다. '나 김남주야. 여기까지 왔는데 나 이대로 죽지 않아'라고 딱 그랬다. 남 앞에서는 그렇게 얘기도 못한다.
-'내조의 여왕' 천지애와 '역전의 여왕' 황태희, 모두 이 시대 아줌마를 대변하는 캐릭터였다.
▶나도 아줌마니까 거기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 작가가 어깨가 무거웠겠지. 직장에서 통쾌한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아줌마의 로망을 보여드리려고 한다. 처음엔 천지애랑 다른 걸 보여드리려고 애썼다. 천지애가 사랑스러운 아줌마였다면 황태희는 직장에 다니는 성깔 있는 여자였으니까. 보시는 분들이 중복해서 생각하셨을 것 같아 신경이 많이 쓰였다.
-실제 김남주의 모습은 그 사이 어디쯤인가?
▶아마 천지애와 황태희의 중간 쯤이 될 거다. 닮은 점도 있더라. 요새 황태희를 보다가 '내조의 여왕'을 봤더니 완전히 푼수떼기 아줌마 같더라. 그에 비하면 황태희는 성깔이 대단하고.
▶모두가 행복한 해피엔딩이랄까? 누구랑 잘 되면 좋겠다고 하면 다른 쪽이 섭섭할 것 같다. 박시후씨는 인터뷰한 걸 보니까 정열적으로 쟁취한다고 그랬던데.(웃음) 나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여진이(채정안 분)랑 친구처럼 늙어가면 안될까?(웃음)
-김남주는 여성들의 워너비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김남주의 집'이라는 책을 내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상세히 밝히기도 했다.
▶내 삶이 궁금하다 하신 게 그 책을 낸 계기였으니까. 일과 사랑을 잡았다는데 어떻게 살까 궁금해들 하시니까 '이렇게 살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솔직하게 밝힌 거였다. 큰 결심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이렇게 키웠고, 이런 순간에 이런 생각을 했다고 가감 없이 전했던 거다.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너는 최고고, 나의 보물이고, 엄마의 아들딸로 태어나서 너무 고맙다고 항상 이야기한다. 그렇게 격려와 응원을 하고 하기 싫어하는 건 억지로 안 시킨다. 지금 단면을 보고 아이를 평가하지 않겠다고 무던히 다짐한다. 다행히 보석같은 아이들을 주셨다. 하지 말라고 해도 찾아하는 아이들이다. 나는 공부 많이 하면 눈 나빠지니까 책 보지 말라고도 그런다. (웃음)
-아이들이 또 큰 힘이 되기도 할 텐데.
▶그 격려가 고스란히 나한테 돌아온다. 20대, 30대를 여유 없이 앞만 보고 살았던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지금에 온 것 같다. 화장 하고 지우길 반복하고 밤을 새워가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살지' 하다가도 '아! 아이들을 키워야지' 하면서 마음을 잡는다. 이젠 내 인생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 사는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촬영하는 동안 아이들이 나를 못 보고 엄마 손길을 못 느꼈지만, 또 자라면 이런 엄마를 자랑스러워 할 거라고 믿고 힘을 내는 거지. 다행히 저희 직업이 쉴 때는 온전히 쉴 수가 있으니까.
-작품이 끝나면 가장 하고싶은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이들하고 함께 있는 거다. '내가 없는 동안 아이들이 잃은 게 뭘까'가 가장 걱정이 된다. 아이들은 엄마가 최고니까. 데리고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
-사랑해주신 시청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꾸준히 저희 드라마를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저희도 마음고생이 컸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계속 열심히 하니까 좋은 결말이 있는 것 같다. 제목답게 '역전의 여왕'이 될 수 있게 해주신 시청자들에게 무엇보다 감사드린다. 사랑해 주시니까 더 힘이 난다. 끝나는 날까지 함께해주셔서 어떤 결말이 나올지 확인하셨으면 좋겠다. 더 빛나는 결말을 맺을 수 있게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