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호빈 ⓒ양동욱 인턴기자 |
"'욕망의 불똥'할 시간이 돼서요."
정호빈이, 변했다. 복수를 하기 위해 원수의 집사로서 와신상담의 시간을 보는 중에도 애청하는 드라마 '욕망의 불똥' 방영 시간은 칼 같이 지키는 남자. 김집사다.
MBC '선덕여왕'의 문노, SBS '산부인과'의 워커홀릭 의사 윤서진, KBS 2TV '아이리스'의 냉철한 국정원 요원 강철환으로 강한 인상을 남겨왔던 정호빈이 '드라마광' 김집사로 변신해 어느 때보다 열혈 연기를 펼치고 있다.
차갑고 진지할 수록 웃음이 터져 나오는 김집사는 이제껏 시트콤에 등장했던 반전 캐릭터의 집대성이다. 코믹 연기마저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 정호빈을 '몽땅 내 사랑' 촬영장에서 만났다.
"길에서 초등학생들이 '집사 아저씨'라고 불러요."
MBC '몽땅 내 사랑' 첫 시트콤 연기에 도전한 정호빈이 연기하는 김집사는 이제껏 봐온 코믹 캐릭터와는 사뭇 다르다. 진지한 태도로 일관하며 정극과 시트콤을 오간다. 그러나 진짜 애청자들은 김집사를 가장 '웃긴' 캐릭터로 꼽는다.
"진지하게 웃기니까. 김원장을 향한 복수를 불태우다 갑자기 드라마 놓친다고 시간 체크하는 연기를 진지한 표정으로 하면서 하다보면 웃겨요. 톤을 바꿔서 하는 대사는 아니고 느닷없이 한 마디씩 하는 게 어이 없이 웃음을 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시트콤은 늘 도전해 보고 싶었던 장르였다. "드라마에서 멋지게 그려지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것을 해 보고 싶었어요. 마침 그 시점에 제의가 들어왔죠. 제작진에서는 지금껏 예능 프로나 시트콤 장르를 접해 보지 않은 배우를 찾았고, 저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픈 마음이 있었으니 잘 맞아 떨어진 셈이죠."
막상 김집사라는 캐릭터를 접하자 걱정도 됐다. 조금이라도 시트콤 장르에 경험이 있는 배우들이 더 잘 살리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이 들었다. "정극 분위기에서 갈수록 망가지면서 시청자들과 친해질 수 있는 캐릭터로 변화해 가는 역이라고 설명하시더군요. 실제로 길을 가다 보면 초등학생들이나 청소년들이 '집사 아저씨'라며 많이 알아봐 주세요."
↑MBC 시트콤 '몽땅 내 사랑' 촬영장에서 리허설 중인 정호빈 |
실제로도 '욕망의 불꽃' 자주 봐요."
극중 그가 가장 많이 하는 대사 중 하나인 '욕망의 불똥'. 그것이 현재 방영중인 MBC 주말극 '욕망의 불꽃'을 칭하는 것임을 시청자들도 알 터. 정호빈은 실제로도 '욕망의 불꽃'을 자주 본다는 답했다. 그는 "드라마 광 캐릭터를 위해 실제로도 드라마를 보고 있어요. '욕망의 불꽃'도 그렇고, 다른 드라마도 시간 나면 챙겨서 보려고 하죠. 제가 공중파로 '욕망의 불꽃' 홍보 많이 했네요"라며 웃었다.
정호빈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김집사라는 캐릭터가 탄생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일치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따로 시트콤을 모니터하거나 다른 캐릭터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그저 모든 캐릭터를 대본에 충실하게 연기하려는 그의 철칙을 지켰다.
"작가들이 어떤 캐릭터를 표현하려는 고민을 했을 겁니다. 저는 단지 그런 대사나 지문을 보고 내가 김집사라면 이런 분위기를 이런 내면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을 끊임없이 고민하죠. 코믹 캐릭터지만 너무 가볍지 않고 내면이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어요. 대본을 통해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배우들의 최대 숙제라고 봅니다."
시트콤으로 연기 변신에 성공한 연기자들은 항상 장르를 통해 새로운 매력을 선보여 왔다. '주얼리 정' 정보석은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래퍼로 변신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정호빈 역시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롭게 선보이기 위해 준비 하고 있는 세 가지가 있다고 귀띔했다.
"시트콤이 끝나기 전까지 보여주려고 구상하고 있는 게 세 가지 정도 있어요. 작가들과 상의해서 분기별로 하나 씩 선보이면 어떨까 생각 중인데요. 도전을 해 보고 싶었어요. 시트콤이라는 장르 안에서 보여 줄 수 있는 내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도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니까 너무 큰 기대는 마시고. 그냥 편안하게 봐 주세요."
"정극 '아테나'와 시트콤 '몽땅 내 사랑' 오갈 땐, 모노극을 하는 기분."
정호빈은 현재 '몽땅 내 사랑' 말고도 SBS 드라마 '아테나:전쟁의 여신'에도 출연 중이다. '몽땅 내 사랑'에서의 김집사가 지시를 받는 역할인데 반해, '아테나'에서 그는 국정원 소속 특수기관 NTS 강철환 실장 역할로 차분하고 냉철한 판단력으로 요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시트콤과 첩보드라마 양쪽 촬영장을 오가며 연기를 펼치는 데 어려움은 없을까.
"김집사가 새로운 도전이라면, 강철환 역은 정극을 하는 배우로서 해보고 싶었던 역할이었어요. '아테나'에서 실장으로 있다가 '몽땅 내 사랑'으로 오면 집사로 왔다 갔다 하는 게 재미있어요. 즐기고 있습니다. 연극으로 치면 1인 2역 모노극 같은 느낌이랄까요. 진지하게 나왔다가 코믹하게 상황에 맞게 변신하는 게 재미있어요."
"'몽땅 내 사랑' 식구들이 '아테나'에 나오는 것을 보고 멋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기존 제 연기들을 오래 봐 오신 분들은 '김집사 잘 하고 있다'고 응원을 많이 해 주시고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저의 또 다른 모습을 새롭게, 좋게 봐 주시니까 감사하죠."
그에게 '몽땅 내 사랑'은 어떤 작품인지 묻자 "복수 활극"이라는 무시무시한(?) 답이 돌아 왔다. "초반부터 복수를 하기 위해 원장 집에 잠입하고, 그 때문에 모든 고난을 겪어 내잖아요. 베이스에 깔린 게 복수인, 이런 시트콤은 없었거든요. 원수에게 복수를 해 보려고 작당을 하는 데, 뭔가 자꾸 삐걱거리죠. 그게 우리 시트콤의 매력이 아닐까요."
그럼 복수는 언제쯤 하는 걸까. "본격적인 복수가 언제 시작될지 저도 궁금해요. 가끔은 혹시 김원장(김갑수 분)이 다 알고 있는 거 아닌가 싶을 때도 있죠. 다 알고 저랑 전실장(전태수 분)이 어떻게 나오나 두고 보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김원장을 그러고도 남죠.(웃음)"
↑MBC 시트콤 '몽땅 내 사랑' 촬영장에서 리허설 중인 정호빈 |
"시트콤하면서 일부러 NG낼 때도 있어요."
시트콤 리허설 현장에서 자리에 없는 김원장을 향해 홀로 대사를 연습한다. 진지하게 연습에 몰두하고 있어, 리허설이라기 보다는 마치 연극의 독백 장면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그러나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 NG를 내버린다.
"시트콤에 출연하면서 NG를 많이 내고 있습니다. 연말에 'NG왕' 이런 거 뽑힐 것 같아요. 사실은 일부러 처음 시작할 때 NG를 내는 경우도 있어요. 시트콤을 하면서 느낀 게 저 혼자 잘 한다고 NG가 안 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한 두 번 정도 NG를 내서 배우들이 호흡에 적응하고 난 뒤 분위기를 몰아서 찍어야 촬영이 잘 되더군요."
"그게 제가 발견한 드라마와 시트콤의 큰 차이점이예요. 정극에서는 에너지를 한 번에 확 몰아서 해야 재미있게 됩니다. 또 드라마의 경우 연기하는 공간에 압박감이 있고, 첫 테이크로 집중력을 몰아서 가야 좋아요. 그런데 시트콤은 오히려 시간이 조금 지나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형성한 뒤 촬영이 잘 되는 것 같아요."
시트콤 연기, 이대로 라면 훌륭히 완수하지 않을까 싶다. 그 다음엔 어떤 계획을 설계중일까. "지금 저는 카리스마 있는 배역들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코믹한 모습, 슬픈 애정연기, 지독한 나쁜남자, 잔인한 악역, 사이코패스 등 해보고 싶은 연기가 많아요.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연기는 무궁무진하죠. 저는 그 역할들을 다 해보고 싶습니다."
배우로서 욕심이 큰 만큼 쉼 없이 계속 작품을 하는 것이 2011년 새해 그의 소망이다. 알고 보면 다작 연기자인 그는 데뷔 이래 쉬지 않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 왔다.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쉬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고. 자신의 연기를 지켜봐 주는 분들이 있으니 즐겁다.
"쉼 없이 제 작품을 챙겨 봐 주시는 모든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작품을 하든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쭉~ 오래 오래 저를 지켜봐 주세요.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