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양진우 ⓒ양동욱 인턴기자 dwyang@ |
"작가님이 제가 일본어랑 영어가 가능하다는 것을 아셨는지 통역하는 역할로 2회 정도 촬영 분량을 넣으셨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배우들이랑 제작진분들은 갑작스러운 영어 대사에 걱정을 하셨대요. 촬영이 길어 질까봐. 그런데 리허설에서 제가 영어 대사를 술술 읽으니까 갑자기 '이야! 오늘 촬영 일찍 끝나겠다'라고 소리치며 기뻐하시더라고요. 저도 덩달아 웃음이 났죠."
그의 외국어 대사는 장난스러웠지만, 한편 안타까웠다. 좋아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 다른 사람 얘기만 하는 여진이 얄미워 외국어로 약을 올린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상대방이 자신의 타박을 알아듣는 것조차 미안스러운지, 그녀가 모르는 언어로 장난치듯 흉을 보는 모습이 로맨틱하고도 안쓰러웠다.
"실제 저는 선우혁과는 달라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이예요. '밀당', 그런 거 많이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죠. 어느 순간까지는 재미있겠지만, 마음을 열고 서로 나누고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배우 양진우 ⓒ양동욱 인턴기자 dwyang@ |
정말 집안 배경 좋은 '엄친아'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으나, "대학시절 모든 생활비와 등록금을 스스로 해결했다"라는 말이 다시 궁금증을 자극했다. 게다가 일본 삿포로 대학 교환학생도 실은 생활비 지원을 조건으로 한 장학생으로 뽑혀서 갔다는 것. 얘기를 듣고 보니 '진정한 엄친아'였다.
외국어 실력뿐만이 아니었다. "해보지 못한 일에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승마, 암벽타기, 보드타기, 절권도도 할 줄 알고요. 작곡도 시도해 봤죠. 기타도 연습하고 있고, 또..." 판소리까지 해봤다니 말 다 했다. 왕성한 도전정신의 소유자랄까. 그의 필모그래피 역시 참으로 다양하고 독특한 역할들로 빼곡하다.
데뷔작으로 꼽는 영화 '황산벌'에서 관창을 시작으로, '달마야 서울가자'에서 스님 역을 한 적도 있다. 영화 '파란 자전거'에선 코끼리 사육사, '세븐데이즈'의 록커, 선비, 교사, 경찰 등. 변화무쌍한 캐릭터는 그가 말하는 연기의 매력이자, 그가 연기를 하는 이유다.
"평소 접할 수 없는 인물의 삶을 접한다는 점이 제가 처음 연기에서 느낀 매력입니다.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게, 참 재미있어요. 그 매력에서 벗어나기 힘들죠. 영화 '투러버스'에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조울증을 앓고 있는 캐릭터를 연기했어요. 연기가 아니면 일생에 겪기 힘든 경험들이죠. 그 영화를 보고 다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죠. 그 때의 희열과 감동이 되살아났어요."
배우 양진우 ⓒ양동욱 인턴기자 dwyang@ |
자신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도전 의식, 남다른 열정과 호기심은 다양한 삶을 소화해내야 하는 배우의 길에 적합해 보였다. 그러나 이는 그가 배우의 길을 떠나게 만들기도 했다. 배우라는 직업 역시 그의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봤을 때는 수많은 인생의 길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땐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었고,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았어요. 원래 긍정적인 성격인데 한 번 다른 일을 생각을 하니 끝이 없었죠. 저한테 맞지 않는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주위에서 만류도 많이 했어요. 다시 연기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도 했죠. 그래도 그땐 그냥 내 길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는 "서른 즈음이라 심리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6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쌓인 게 있었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고 싶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고 싶었고, 일부러 고생을 사서했다.
"경영도 공부하고, 금융업도 해보고 사업도 했어요. 아는 동생이 사업을 하는 데 도와주기도 하고. 미술 쪽 공부도 하고, 보고 싶었던 책도 많이 읽고. 정말 안 해본 일이 없었죠. 그런데도 책을 읽으면서도 저도 모르게 '이 책 주인공을 드라마나 영화 캐릭터로 만들면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다시 그는 배우로 돌아왔다. 운이 좋게도 연기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여러 작품에 함께 할 수 있었다고. 종영을 앞둔 드라마 '역전의 여왕' 말고도 최근 촬영을 마친 영화 두 편도 올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레스트룸'과 '러브콜'이라는 작품인데, 둘 다 캐릭터가 완전히 달라요.(역시나) '레스트룸'은 제가 보험회사 직원인데 6일 동안 어떤 장소에 갇혀서 탈출하기 위해 미스터리를 푸는 내용이죠. '러브콜'이라는 작품에선 선생님 역할인데 로맨스의 주인공이고요. 두 작품을 촬영하면서 여러 가지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처음엔 일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일을 하고 싶어요. 바쁜 3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운이 좋게도 작년 여름부터 끊임없이 계속 연기 활동을 해오고 있죠. 지금은 그저 감사하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어요."
연기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이 뚜렷하고, 연기에 대해 이렇게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가, 다시 이 길로 돌아와서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