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가 안 재밌을 수 없는 이유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1.03.10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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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가 연일 화제다.

이소라와 김건모를 필두로 정엽, 김범수, 백지영, 윤도현, 박정현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을 한 자리에 모아 노래 대결을 시킨 이 전무후무한 기획에 가요계와 방송계의 눈이 온통 쏠렸다. 꼴찌에게 탈락이란 수모를 안기는 잔혹한 서바이벌, 그리고 자존심을 건 콘테스트에 기꺼이 동참한 최고의 가수들은 그 자체로 화제였다.


첫 방송은 역시 명불허전. 이소라가 눈을 감고 '바람이 분다'를 가만히 시작하던 순간부터 김건모가 흥겹게 '잠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를 마무리할 때까지, 도저히 TV에서 눈과 귀를 뗄 수가 없었다. 그 일곱의 노래를 대체 어느 콘서트에 가서 한자리에서 듣겠나. 노래 중간의 인터뷰는 황홀한 귀호강의 눈엣가시였으나, 어쩌겠나. '나는 가수다'는 '음악중심'이 아니요,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아닌 것을.

"최고의 쇼"라는 찬사부터 "무례이자 실례"라는 비난까지 '나는 가수다'에 대한 호오는 엇갈리지만, 가수들의 무대에 대한 감흥만큼은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가수들 스스로 극도의 긴장감 속에 펼친 열창의 무대는 감동 그 자체였으니까.

무엇보다 최고의 가수들이 서로를 의식하며 벌인 서바이벌의 효과는 대단했다. 가요 관계자들조차 "가수들이 사력을 다하는 게 보인다", "저 사람이 저렇게 진이 빠지게 노래하는 걸 처음 본다"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이란다. 최고의 가수들이 노래로 싸움을 하니 이 어찌 재미가 없겠나. '나는 가수다'의 진정한 장점은 '최고의 가수를 서바이벌에 불렀다'는 사실보다 '최고의 가수가 최선을 다할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MBC 예능국의 다른 연출자들조차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지점이었다. 한 MBC예능국 관계자는 "노래를 부르는 무대 영상만을 봤을 땐 감이 오지 않았는데 대기실의 긴장감, 가수들 사이의 경쟁심이 들어가니 정말 흥미진진한 프로그램이 되더라"고 털어놨다. 김영희 PD조차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잘 해줄 줄은 몰랐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다른 감흥도 있었다. 주요 스포츠 경기라도 있으면 1순위로 결방할 만큼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가요 프로그램을 주말 황금 시간대에 지켜본다는 감흥. 실제로 이는 김영희 PD가 내로라하는 가수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주말 황금 시간대에 노래 잘 하는 가수가 노래로 아름다움을 전하는 걸 그려 보이겠다고 그들을 설득했다. 그 호소 덕에 이 막강한 7인의 라인업이 가능했다.

일곱 가수가 자신의 대표곡을 온 힘을 다해 부르는 순간, 백만 돌파 앨범이 한 해에도 몇 장씩 쏟아지던 90년대 우리 가요의 전성기를 보는 듯 했다면 과장일까. 리얼 버라이어티의 홍수 속에 주말 저녁 남 노는 걸 보며 웃던 게 슬슬 지겨웠던 참이라고 슬쩍 고백해 본다.

첫 출발은 좋았다. 이제 '나는 가수다'에 남은 과제는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음악을 전하는 프로그램의 미덕을 이어가는 것이리라. '나는 가수다'는 오는 13일 방송에서 드디어 첫 탈락자를 가린다. 온통 '꼴찌가 누구냐'에만 쏠린 관심이 '꼴찌도 1등도 의미없다'는 경탄으로 바뀐다면 '나는 가수다'는 제 몫을 다 한 게 아닐까. 또한 순위가 의미없는 최고의 가수들을 어떻게 다독이고 배려할 것인지는 '나는 가수다'가 안은 또 하나의 과제가 될 것이다.

p.s. 잔뜩 쏠린 관심에 김을 빼는 스포일러는 최고의 무대를 만든 가수와 제작진에게도, 그 무대를 기다리는 시청자들에게도 분명 '노 매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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