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탁 "히식스, TV서 춤춘 최초의 록밴드"②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1.04.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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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탁씨 ⓒ류승희 인턴기자 grsh1@


최호 감독의 영화 '고고 70'에는 실존 록밴드 데블스가 전국보컬그룹 경연대회에서 3등상에 해당하는 구성상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1970년 7월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건 '전설의 기타리스트' 김홍탁(현 서울재즈아카데미 원장)이 이끈 히식스였다. 다음은 김홍탁 원장과의 인터뷰 2번째 편.

-당시 제2회 플레이보이컵 보컬그룹 경연대회 열기는 어땠나요?


▶관객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냐면 시민회관이 무너질 정도였어요. 춤추고 난리도 아니었죠. 다음해 열린 제3회 대회 때는 출전을 안했어요. 한번 우승했으면 됐다고 생각했죠. 다른 팀도 우승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히식스에 큰 애착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말하라 사랑이 어떻게 왔는가를'이라는 노래가 크게 히트했어요. 당시 TBC PD인 조용호씨가 작사하고 제가 작곡한 노래인데 '뭐 이렇게 긴 제목의 노래가 있냐'며 큰 인기를 끌었죠. 히식스에 왜 애착이 가냐면, 멤버 100% 모두 제가 원하는 사람을 뽑았기 때문이에요. 허스키한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뽑은 보컬이 바로 당시 대학생이었던 최헌입니다. 키보이스는 가수왕을 2명(차중락 윤항기)이나 배출했지만 제 그룹은 아니었고, 히파이브 때는 직접 작곡을 못했으니까요. 오리지널리티가 2% 부족했죠. 그러나 히식스는 안 그랬어요. 자작곡도 많아졌고.


-당대 최고 인기프로그램 '쇼쇼쇼'에도 출연하셨죠?

▶조용호 PD가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쇼프로그램으로 만든 게 바로 '쇼쇼쇼'였습니다. 지금의 열린음악회라고나 할까. 어쨌든 과감하게 록밴드인 우리(히식스)를 고정 출연시켰어요. 돌아가신 원조 개그맨 곽규석씨가 콩트도 하고, 무용수들이 나와 춤도 추고 하는 아주 버라이어티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히식스도 무대에서 무용수들과 함께 춤추고 그랬는데, 아주 힘들었어요. 조용호씨 아니면 안나갔을 거에요. 아마 TV에서 춤까지 춘 최초의 록밴드였을 겁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록밴드를 '소울&사이키델릭 그룹'이라는 불렀는데요.

▶'소울대왕' 제임스 브라운을 비롯해 템프테이션 등이 외국에서 유명했죠. 사실 어느 나라든지 록밴드가 가장 존경받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가 않아요. 조용필, 이승철 모두 록밴드 출신인데 가수로 나가면 '국민 가수'라 해서 존경하지만 그룹에 있을 때 전혀 그렇지가 않거든요. 신중현씨도 이 점을 굉장히 속상해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신중현의 '봄비'(신중현과 퀘스천스가 1970년 내놓은 '여보세요/그대는 바보' 음반 수록곡. 박인수가 불렀다)는 지금 들어도 어마어마한 곡이에요. 비틀스의 'Yesterday' 못지않은 훌륭한 곡인데 이 노래가 현재 조명이 전혀 안되고 있는 겁니다.

-요즘 우리 음악환경은 어떻다고 보시나요? 많이 섭섭하신 것 같습니다.

▶록밴드 문화는 1980년대 초까지 건재했었어요. 캐럴음반(히파이브의 69년 캐럴음반)에 사이키델릭의 명곡인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In-A-Gadda-Da-Vida'를 집어넣는 등의 실험정신이 우리 대중음악을 발전시킨 건데, 이 부분에 대한 평가가 전혀 안 이뤄지고 있어요. 한 무대에서는 'In-A-Gadda-Da-Vida'를 무려 45분 동안 즉흥연주한 적도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관객의 음악성이 지금보다 더 대단했던 것 같아요. 그런 45분짜리 음악을 인정해준 분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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