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한국 가요신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및 은퇴 선언, 그리고 2000년 서태지의 전격 복귀는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한국 대중음악 역사가 조금은 수정 또는 보충 설명이 필요하게 됐다. 바로 '이지아 변수' 때문이다.
92년 '난 알아요'로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96년 1월 그룹 해체와 서태지 은퇴 선언 때까지 한국 대중음악 전체 판을 뒤흔들어놓았다. 80년대 말 신촌블루스, 어떤날, 빛과소금 등으로 그나마 유지되던 대중음악의 자양분마저 끊긴 90년대 초, '이상한' 복장에 '이상한' 댄스에 '더 이상한' 노래로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난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후 96년 1월 성균관대 유림회관에서 가진 전격 해체 및 은퇴 기자회견 때까지 '하여가' '우리들만의 추억' '발해를 꿈꾸며' '교실이데아' '널 지우려 해' 'Come Back Home' '시대유감' 등을 쏟아내며 록, 댄스, 랩, 힙합 등 대중음악 전 분야의 기존 문법을 해체시키고 재창조했다.
이후 서태지의 미국행, 그리고 4년 후인 2000년 '울트라맨이야'으로 전격 컴백. 이 '4년'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과장되게 말하면 '잃어버린 4년'이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수많은 댄스그룹과 랩/힙합 그룹이 탄생했지만 그의 존재감과 아우라는 뛰어넘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태지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일련의 20세기말 한국 대중음악사는 이제 조금은 수정, 아니면 보충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바로 서태지와 비밀 결혼 및 이혼, 그리고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소송으로 그야말로 '뒤통수 치듯' 등장한 배우 이지아의 존재 때문이다. 이지아가 한국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게 2007년이니 20세기말 서태지와 연관선상에서 그녀를 떠올리는 건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지아 소속사에 따르면 이지아가 서태지를 만난 것은 지난 1993년. 그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이지아가 마침 미국 LA에서 열린 서태지와 아이들의 한인 공연에서 지인을 통해 서태지를 처음 만났다. 이후 이지아는 미국에서, 서태지는 한국에서 서로 편지와 전화로 계속 연락을 하며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1993년이면 서태지와 아이들이 2집 '하여가'를 낸 해. 1집을 통해 랩과 댄스를 선보이며 대중을 유혹한 그들이, 시나위 출신 서태지답게 록 장르로 변신해 일대 파란과 극찬을 받은 바로 그 해였다. 이 해 서태지는 당시 15세였던 이지아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고, 4년 후에는 미국에서 그녀와 결혼까지 했다.
서태지는 96년 1월 "창작 에너지가 다 떨어졌다"며 은퇴를 선언한 후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후 이지아가 영어 및 기타 현지적응을 도와주며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졌다. 결국 한국 대중음악 신을 홀연히 떠난 서태지는 97년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2000년 6월 컴백 때까지 애틀란타와 애리조나에서 결혼 생활을 했다.
이렇듯 이지아는 '서태지 역사'를 푸는 갑작스러운 키워드가 돼 버렸다. 서태지와 이지아가 처음 만난 93년부터 96년 은퇴 때까지, 그리고 결혼 및 2000년 컴백 때까지. 데뷔 첫 해만을 빼놓고는 '아티스트' 서태지 뒤에는 이지아라는 연인이 그리고 아내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비록 대중만 몰랐던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제 20세기 말 한국 대중음악사는 서태지 음악세계에서 '연인'이자 '아내'라는 키워드를 찾아내야 할 시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