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근 기자 |
화려한 무대의 여왕이자 신뢰받는 연기자인 그녀는 무려 20년 가까이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이렇다 할 롤모델이 없었던 그녀는 스스로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어가는 중이다. 노래와 연기의 간극도, 가수와 연기자 어느 하나에만 속하지 않는 위치도 익숙해지고 또한 즐겨가면서.
다음달 2일 개봉을 앞둔 영화 '마마'(감독 최익환)에서 엄정화는 홀로 아픈 아들을 키우는 억척 엄마가 됐다. 푸근하게 살이 오른 얼굴은 과연 그녀가 퍼포먼스의 여왕 엄정화인지를 의심케 할 정도다. 야쿠르트 아줌마 옷도 '풀세트'로 척척 입어내고, 리어카를 밀고 끌며 씩씩하게 하루를 산다. 그러나 갑작스레 찾아온 암 소식은 보는 이들마저 한숨짓게 할 정도다.
엄정화에게도 그랬다. 지난해 갑상선암을 이기고 복귀한 그녀는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지만 그래도 자신을 보며 힘을 얻었다는 사람들의 메시지에 보답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맞다. 그녀는 엄정화다.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이 궁금하다.
▶슬펐다. 제 장면에 제가 울기는 그랬지만, 슬픈 이야기랑 재미있는 이야기가 잘 버무려진 느낌이랄까.
-스스로 암을 겪은 지 얼마 안 돼 이같은 역할을 맡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굉장히 좋았다. 희망이라는 메시지가. 갑자기 (암을) 발견하게 돼 이겨내야 한 시간이 있었는데, 저와 같은 문제를 갖고 있던 분들로부터 힘을 받았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절망적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쉽지는 않았다. 중간에 못하겠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으니까. 감정도 너무 무겁고,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분들의 메시지에 저도 힘을 받았고, 저도 보답하고 뭔가를 전해드리고 싶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절망 중에 찾은 '희망'이란 메시지가 강하게 다가온다.
▶이번 영화가 그렇게 되길 원했다. 다행히 가능했다. 아니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수술실 신은 괴롭기도 했다. 하지만 뭔가 착한 마음으로 했던 것 같다.
-엄정화는 많은 후배들의 희망이기도 하다. 많은 가수 후배들이 롤모델로 꼽는 선배다. 이효리씨나 보아씨와 트위터를 하는 걸 보면 후배들과 소통도 굉장히 자유로워 보인다.
▶선배고 나이 차이도 있지만 막상 만나면 제가 좀 친구처럼 그런다. 언니라서 해줄 수 있는 이야기도 있고, 실제로 잘 어울리기도 하고, 만나면 너무 좋다. LA에 가서 보아를 만나고도 왔고, 효리는 시사회에 와서 끝나고 만나고 그랬다. 그런 후배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그런 데서 오히려 힘을 얻고 자극도 된다. 동생들이 잘 하는 것을 보면 자극이 된다. 10년 전 쯤 인터뷰를 할 때 제가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그 땐 제가 롤모델로 삼아 따라갈 수 있는 선배가 드물었다. 영화계에선 이미숙 선배님도 그렇고 마흔 넘어서도 멋진 선배들이 계시지만 가수들, 특히 댄스 가수 쪽으로는 막연하던 게 있었다. 물론 저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지 책임감만으로 여기까지 온 건 아니지만, 제가 있음으로 인해서 길이 될 수 있는 그런 역할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싶다. 발전하고 싶다.
-그래서 엄정화는 분류하기도 어렵고, 다음 행보가 더 궁금한 사람이 됐다.
▶처음부터 노래와 연기를 같이 했으니까, 어느 범주에 저를 끼워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는 익숙하다. 굳이 누구와 비교한다거나, 어떤 사람의 길을 간다거나 하는 건 없다. 그건 제가 만들어야 하는 느낌이다.
요즘엔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은데, 그런 간극을 좋아하는 것 같다. 비슷한 류의 작품을 피해갔는데 잘 되는 작품도 꽤 있다. 누구나 그런 경험 있을 거다. 히트작을 놓친 것. 하지만 작품적으로 후회하지 않고, 아깝지는 않다.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해서 더 잘 어울렸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예뻐 보이고 싶은 욕구와 멋지게 역할을 소화해야겠다는 욕심이 충돌하지는 않나.
▶그런 걸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거다. 그런 역할만 맡는 게 아니니까. 무대에선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가 있지 않나. 패셔너블하고 색다른 걸 또 보여드릴 수 있다. 아줌마 역할로 끝이 아니니까 그렇게 보이는 데 대해 연연해하고 싶지 않다.
▶처음엔 저도 싫었다. '모자까지 써야돼?' 그랬는데, 입고 나니 모자까지 쓰고 싶어지더라. 그게 그럴듯 했고. 일단 영화에 들어가면 그 인물처럼 되고 싶다. 그 옷을 입고 정말 그 사람처럼 보이게. 올 겨울에 얼마나 추웠나. 속옷도 막 껴입고 핫팩도 붙이고 했다. 밥도 꽉꽉 먹고.(웃음) 그게 생각보다 옷이 작다. 어쩜 저한테 그렇게 딱 맞는 사이즈를 찾아오셨는지, 핏은 잘 나오더라. (웃음)
-푸근한 인상이 더 극중 엄마처럼 보였다.
▶적당히 살이 올라 있어서 더 엄마처럼 보이는 게 좋았다. 생활고에 찌들어서 마른 엄마로 할까, 푸근한 엄마로 할까 했는데 후자가 좋다고 생각했다. 제가 웬만큼 마르지 않으면 잘 티가 나지 않는다. '베스트셀러' 때도 46kg까지 뺐는데 그렇게 말라보이지 않더라. 김민희, 정려원과는 다른 거지. 마른 걸로는 자신이 없어서 푸근한 걸로 가자 했다.(웃음)
-꾸준한 미모의 비법이 있다면?
▶꾸준한 관리?(웃음) 20대 때도 시간나면 운동하고 마사지도 받고 그랬다. 좋을 때부터 관리해야 된다. 운동하고 하는 게 자기에게도 활력이다.
-당당한 솔로인데.
▶지금은 누군가 나타나는 걸 기다리는 중이다. 쟁취는 저랑 안 맞다. 억지로 찾다가는 엉뚱한 사람을 만날 수 있잖나. 그런 실수는 안 하고 싶다. 그냥 기다리는 중이다.
-차기작은 '댄싱퀸'이다. 딱 엄정화 이야기다 했다.
▶저도 제가 안 하면 서운했을 거다. (웃음) 윤제균 감독님(제작자)이 아줌마가 댄스가수가 되는 꿈을 이루는 영화를 해 보자고 하셨다. 3년 전부터 이야기를 했는데 그간은 시나리오가 안 나와서. 작년 겨울에 '시나리오 나왔어' 하고 기쁘게 이야기하시더라. 헬스클럽 강사로 나오는데 20일 쯤 있으면 촬영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