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 이제훈 "목숨 걸고 덤볐다"(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1.06.2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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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 ⓒ송지원 기자 g1still@
배우 이제훈(27). 올해 독립영화의 발견으로 불린 '파수꾼'이 건져 올린 신예는 아직 많은 이들에겐 낯선 얼굴이다. 아직도 호프집에 가면 종종 주민등록증 검사를 받는다는 84년생 청년의 얼굴은 티없이 맑고 해사하지만 참 변화무쌍하다.

그 얼굴을 한번쯤 더 눈여겨보는 게 좋겠다. 그는 올 여름 100억 한국 블록버스터의 대표작 가운 하나인 '고지전'(감독 장훈)을 이끄는 당당한 주역이다.


이제훈은 참혹한 한국전쟁 속에서 그 이유도 모른 채 스러져간 젊음을 그려낸 '고지전'에서 전장의 베테랑을 지휘하는 앳된 청년 장교 신일영 대위를 맡았다. 다른 주인공 고수와 신하균이 그의 휘하요, 마지막 결전의 순간 부대원의 마음을 흔드는 연설을 하는 이가 또한 그다. 캐스팅이 확정됐다는 작품까지 마다하고 뚝심있게 '고지전'을 기다린 이 신인의 얼굴은 영화를 본 뒤엔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으리라.

-일단, 어떻게 그 역을 따냈나. 많은 젊은 톱스타들이 탐낸 역이다.

▶오디션을 정말 많이 봤다고 들었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저한테 기회가 온 것만으로도 특별했다. 설사 떨어지더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목숨 한 번 걸어보겠다고 덤볐더니 거기서 일말의 가능성을 봐 주신 것 같다.


좋은 배우들이 그 역할을 탐내셨다는 걸 들으면 의기소침해지곤 했다. 하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4개월을 '고지전'만 기다렸다. 다른 작품도 있었는데, 그걸 하면 '고지전'을 못 할 것 같아 그냥 기다렸다. 무모할 수도 있었지만 내 마음이 그게 안 되더라. 그 모험을 받아들여주셨다는 게 감사하기만 하다.

-막상 캐스팅되고 나니 어땠나?

▶내 욕심에 됐는데, 내가 이 영화에 큰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이구 하난 부담감이 6개월 넘는 촬영기간 매일매일 지속됐다. 아무리 힘들게 촬영해도 다음날이 되면 눈이 '딱' 떠졌다. 그 긴장감이 하루하루 이어졌다.

-신인 배우로서 톱스타들과 대등하게 극을 이끌어야 하는 스스로의 상황이 신 대위와 묘하게 겹친다.

▶제가 처한 상황과 신일영이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내적인 고민이 통하는 지점이 있었다. 그래서 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선배님들이나 감독님도 그런 저를 많이 배려해주셨다.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았겠지만 그 당시에는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쟁쟁한 동료 배우들을 의식하지는 않았나.

▶형들에게 기죽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이 역할에 기죽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자신 없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감독님께 많이 여쭤보고 연습하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다른 선배들은 워낙 경력이 있으시니까 제 눈엔 어떤 여유가 보였는데 저는 그럴 여유가 전혀 없었다. 하루가 지난다고 안심이 되는 게 아니라 매일 매일이 그런 긴장과 과제의 연속이었다.

-'고지전'에 참여한 배우며 스태프가 하는 첫마디가 너무너무 힘들었다는 거다. 본인은 어땠는지.

▶비교할 수 있는 작품이 없어서 그랬는지 그냥 힘들다는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는데도 마찬가지다.

-군대에 가도 6개월 지나면 계급이 올라가고 여유도 생길텐데.

▶맞다. 내내 훈련병, 이등병 마음이었다.(웃음)

-몸은 괜찮았나?

▶컨디션 조절도 신경을 써야 했다. 긴장감 때문인지 '오늘은 피곤한데' 이런 생각이 촬영 중에는 안 들었다. 상처가 나고 멍이 들고 하는 건 당시엔 별 신경쓰인 부분이 아니었다. 그저 막 열심히 총 들고 가파른 산 올라가고 했는데 어느 순간에는 고개가 안 돌아가더라. 그런데 제 얘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고 스태프는 더했다. 다들 쉬는 날이면 한의원 가서 침 맞고, 정형외과 가고 그랬다. 스태프는 그마저도 못 쉬니까 그분들을 보며 더 힘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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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 ⓒ송지원 기자 g1still@


-뒤늦게 배우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 전엔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공대생이었다. 그 전부터 연기 학원도 다니고 뮤지컬도 서보고 했는데 언젠가부터 이걸 직업으로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불안감도 있고. 그러다가 '안 되면 군대 가야지' 하면서 한국종합예술대학 연극과에 실기시험 한 달을 앞두고 접수했는데 덜컥 붙었다. 그러다 영화 '약탈자들'에서 김태훈 아역으로 나왔고 그 인연으로 소속사를 만났다. 그러다 한 작품 더하자면서 '파수꾼'을 했는데 그 인연이 여기까지 왔다.

-고등학생 역할도 했지만 참 앳된 외모다.

▶아직도 호프집 가면 주민증 검사를 받을 때가 있다.(웃음) 나이 어린 역할을 했다는 건 제게도 의미가 크다. 평생 연기를 하고 싶은 사람인데, 아직도 교복입은 학생, 빡빡머리 군대 초년생의 모습이 남았다는 게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가면 스트레스 받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기분좋다.

-앞으로 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수많은 역할이 있다. 디테일하게 참 많은데, 여배우들과의 로맨스가 있으면 참 좋겠다.(전작 '파수꾼들'은 남고생들이 주인공이다) 너무 남자들의 우정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니까 좋기는 한데…. 직업은 귀천이 없으니까 상관이 없는데 다만 로맨스가 있었으면 좋겠다.(웃음)

-앞으로 연기를 하며 꼭 지켜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금 굉장히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 의욕이 넘치고 열정이 가득한 것 같다. 앞으로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의욕들이 분명 꺾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연기를 하고 싶다는 의지만큼은 버리고 싶지 않다. 모든 걸 다 버려도 연기에 대한 의지만큼은 제 평생 가져가고 싶다. 다른 배우들의 인터뷰 등을 보다보면 의욕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직은 이해가 안 간다. 나도 시간이 지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혹여라도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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