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균 기자 tjdrbs23 |
"출연자들을 보면, 대부분 행복해 보여요. 그 사람들 보면서 '내 삶은 행복한 삶인가'하고 뒤돌아보게 됩니다. 많이 배워요."
케이블채널 tvN '화성인 바이러스'는 벌써 120회를 맞이하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수많은 프로그램이 생겼다 사라지는 예능프로그램 판도에서 120회를, 그것도 케이블채널에서 달성했다는 것은 여간 대단한 기록이 아니다. 게다가 평균시청률도 2%에 달하고 화제의 출연자에 대한 기사량도 지상파에 뒤지지 않으니, 대박 프로그램이 아니래야 아닐 수 없다.
19일 오후 CJ E&M센터에서 '화성인 바이러스'의 연출을 맡고 있는 이근찬PD를 만났다.
이근찬PD는 '화성인 바이러스' 1년차에 투입됐다. 당시 분위기는 '1년 동안 할 만큼 했다'라며 큰 기대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는 '독한 방송'으로 자리매김한 '화성인 바이러스'에 다른 색깔을 입히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이전엔 지구에 사는 화성인을 검출해 지구인이냐, 화성인이냐 여부를 판단하는 게 큰 틀이었어요. 그러다보니 MC 김구라씨가 독한 소리를 많이 했죠. 그리고 출연자들이 심하게 비정상인 취급을 받더라고요.
저는 이 사람이 '왜 화성인일까'라는 생각을 먼저 했어요. 알고 보면 화성인이란 게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 중 하나잖아요. 다를 뿐 틀리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는 게 정답이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와 다른 사람을 먼저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누구의 가치관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겠어요. 미국이나 아프리카에 있었다면 추앙받을 수도 있었을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출연자가 원하지 않는 이상 그를 바꾸려거나 하는 일은 없어요."
'화성인 바이러스'는 차마 믿기 힘든 출연자들의 등장으로 인해 간혹 조작 논란에 휩싸인다. 특히 수년간 독특한 생활방식을 고수해 온 이들이 방송 출연으로 인해 이를 개선하기 때문이다. SS501의 김현중 머리를 고수했던 20대 청년이 방송 출연 후 머리를 자른 것이나, 집안일에는 손도 대지 않는 '철없는 아내'가 살림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 등의 모습을 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남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면은 '진실성'입니다. 이건 출연자와 제작진 모두에게 적용돼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포장하면 다 드러납니다. 오히려 너무 자극적인 것은 나중에 출연자에게 해가 될까봐 거르는 편이죠.
'김현중머리' 청년은 스스로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어요. 머리가 잘 되면 기분이 너무 좋고 행복한데 안 그러면 되게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리고 주위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해서 외롭고 힘드니까 자신을 바꾸고 싶어서 나온 것이었어요. '철없는 아내'도 고치고 싶어서 출연했어요. 스스로 위기의식을 느낀 거죠. 그런데 자기 힘으로 어느 날 갑자기 바꾸기 힘드니까 계기가 필요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저희의 설득 끝에 출연했고 변화하게 된 거죠."
인터뷰에 앞서 여러 지인에게 "'화성인 바이러스'PD에게 가장 궁금한 점"을 물었다. 대답은 한결같이 "대체 그런 사람을 어디서 찾느냐"하는 것이었다.
"제보를 받긴 하는데 제보는 홍보성이 많아서 직접 찾아야 해요. 홍대 같은 곳에 자주 가긴 하는데 옷차림만 특이할 뿐 사실 '화성인'은 찾기 힘들어요. 요즘은 싸이월드나 블로그 등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많아서 주로 온라인을 통해 찾습니다. 젊은 분들은 창피해하지 않고 개성을 표출하잖아요. 사진 등을 많이 올리고 방문자 수가 높은 미니홈피 등을 뒤져서 특이한 점을 찾아요. 예를 들면 사진에 모두 분홍색 옷만 입고 찍었다면 '핑크마니아'가 아닐까 하고 의심해보는 식입니다. 관련 동호회도 알아보고요. 출연했던 분들이 추천해주기도 합니다."
ⓒ임성균 기자 tjdrbs23 |
출연을 위해 스스로 설정을 해서 나온 사람도 부지기수. 매운맛 최강자라고 해서 인터뷰를 했는데 청량고추 먹다가 도망간 사람도 있고, 못생긴 남자가 미인이랑만 사귀었다고 해서 만났는데 여자친구가 미인이 아닌 적도 있었다.
"녹화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의심합니다. 녹화가 들어가면 그 순간부터는 100% 신뢰하죠. 미인이랑 사귀었다고 주장했던 분은 녹화 전에 3차 미팅까지 갔는데 끝까지 미심쩍은 부분이 있더라고요. '솔직히 말해보자'라고 했더니 홍보를 위해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거짓말 방송하면 큰일난다고 설득해서 돌려보냈어요. 가끔 녹화를 해도 끝까지 믿음이 안 갈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버립니다. 방송 후에 조금이라도 논란이 있으면 안 되니까요."
같은 주제로 여러 출연자가 나오기도 한다. 가슴이 지나치게 큰 여성의 경우 3명이 출연했고,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사람도 여럿 출연했다. 소재의 고갈일까.
"예전에는 회의에서 이런 사람 찾아봐 했는데 이젠 사실 나올 만 한 분은 다 나와서 소재로는 승부할 수가 없어요. 회의에서 나올 수 있는 생각을 뛰어넘는 사람이 나와야 '화성인'이죠. 저희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소재 자체가 아니라 그 소재 이면에 정립돼 있는 가치관이에요.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말할 수 없다면 출연이 안 되는 거죠. 저희는 특이한 행동이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쇼'가 아니라, 특이한 인생을 소개하는 '토크쇼'거든요. 자신의 얘기를 하는 거니까 말을 잘 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고요. 예를 들면 G컵 화성인, F컵 화성인은 둘 다 가슴이 크지만 살아온 방식은 다르잖아요. 똑같이 다이어트에 집착해도 그러는 이유는 다를 거고요."
이근찬PD는 1000만 스마트폰 시대에 아직도 016으로 시작하는 2G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가끔 화성인 소리를 듣는다는 그는, 화성인을 가장 잘 이해하는 능력을 지닌 '화성인' 같았다.
그는 오는 8월 '화성인 바이러스'에서 하차한다. 제작진 전체 교체, 세트와 포맷 변화 등 프로그램 전체가 달라질 예정이다. '화성인 바이러스'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 그는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줬기 때문에 미련은 없다. 새로운 프로그램에서 맹활약을 펼칠 '화성인' 이근찬PD의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