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근 기자 |
심해 괴물과 싸우는 열혈 여전사, 100억 블록버스터 영화의 원톱 여주인공…. 영화 '7광구'(감독 김지훈)의 여주인공으로 하지원(33) 외에 누구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웬만한 남자는 울고갈 배짱과 강단, 불같은 성미를 지닌 해저장비 매니저 차해준은 애초부터 그녀의 몫이었고, 하지원은 기꺼이 그 임무를 맡았다.
심해저 버전 '에일리언'을 연상시키는 '7광구'에서 그녀는 시고니 위버 몫의 열연을 펼쳤다. 그녀는 사투라는 표현이 딱 맞는 후반 30분을 홀로 이끌지만 "하지원이잖아∼" 라는 한마디로 모든 설명이 끝난다. 화려한 흥행 성적표를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다. 하지원은 이미 신뢰의 이름이 됐다.
"근육 늘어 3kg 쪄..스키니 바지 그리워요"
이미 권투선수, 여검객, 기생, 스턴트우먼… 별의 별 역할을 다 해본 하지원도, 고생하기로는 '7광구'를 "무조건 1등"이었단다. 뛰고 구르고 바이크를 타고 물에도 뛰어들었다. 여러 남자 스타들 사이에서도 눌리지 않아야 했다.
"대사도 없이 괴생물체와 눈싸움을 하면서 게임하듯 끌고 가야하는데 캐릭터가 없으면 힘이 없잖아요. 어떻게 하면 남자들 사이에서도 커 보일까, 강해 보일까 하나하나 연구했어요. 허리에 손을 올리고 서 있는 자세, 헤어스타일, 눈빛… 모두 계산한 거예요. 머리도 서너번을 바꿨죠. 너무 짧아 카리스마가 없다고 더 기르기도 했어요."
여성적인 몸짓, 웃음은 하나하나 배제했다. 다부진 몸도 만들었다. 운동을 하다보니 근육이 붙어 도리어 3kg이 쪘다. 무턱대고 근육질을 만들기보다는 탄탄하고 건강한 몸을 만들었다. 그녀의 탄탄한 다리를 두고 '말벅지'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하지원은 '헉' 하며 '찡긋' 눈짓을 보냈다.
"근육을 일부러 만든 건 아닌데 쉽게 빠지지 않더라고요. 딴 거보단 '7광구' 전에 사 놓은 스키니 바지들이 근육이 붙으니까 입기 힘들더라고요. 그게 조금 슬퍼요. 몇 번 못 입었는데. 가끔 스키니 바지를 입고 싶을 때 근육 없는 다리가 그리워요.(웃음)"
그렇게 탄생한 블록버스터의 여전사는 거대한 괴물과의 대결이 결코 어색하지 않을 만큼 당차고 멋지다. 작업복이나 장총과도 썩 어울리는 그림이 나왔다. 혹자는 그녀를 한국의 안젤리나 졸리에 비유하기도 했다.
"과분하지만 기분 좋아요. 왜냐면 저는 예쁜 여자도 좋지만 멋진 여자를 더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힘들지만 그런 역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그 인생을 사는 거니까요. 안젤리나 졸리도 멋지잖아요. 하지만 사실 연기를 하면서 참고한 건 '에일리언'의 시고니 위버였어요. 해준이가 섹시할 필요는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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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척 하면서 촬영..애교부릴 순 없잖아요"
김지훈 감독은 그녀를 두고 "감독을 부끄럽게 하는 배우"라고 했다. 고된 촬영에 실신하고 매일 링거를 맞아가면서도 "스태프가 기다린다"며 현장행을 고집했다. 스턴트맨을 데려오라 했는데 찍다보니 그 사람이 하지원이었던 일도 있다.
스스로도 여전사이고 싶었던 걸까. 하지원은 고된 투혼을 스스로 이야기하기가 영 부끄러운 눈치다. 스턴트우먼 역을 맡았던 드라마 '시크릿가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연기하고 있는 캐릭터가 강하면 현장에서도 늘 강한 척을 했던 것 같아요. 강인한 캐릭터의 옷을 입고 있는데 제가 애교부리고 '아야야' 하면 맞지가 않잖아요. 투정 이런 게 안 나오더라고요. 현장 지키는 내내 해준이처럼 강했어요. 아픈 표현도 안하고, 낮에 치료받고 오면 밤에 또 찍을 수가 있었어요. 또 아프다고 자랑은 아니잖아요. 제 몸을 지키는 건 제 책임이죠."
그녀가 고됐던 액션 연기보다 먼저 떠올린 순간은 안성기, 박철민, 송새벽 등 유쾌하고 따뜻한 배우들과 함께했던 즐거움의 시간들. "찍을 때 정말 웃겼다"며 벌떡 일어나 석유시추 장면을 신나게 시범 보이기까지 했다. 현장의 활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너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까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버텨낼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제작보고회 때 잠시 울컥했던 것도 그때의 즐거움이 감동으로 다가와서였어요.
영양제 맞고 지쳐 있다가도 저를 막 웃겨주시면 힘이 막 올라갔거든요. 행복하고 감사했어요. 그래서 또 느끼는 건 나도 나중에 좋은 선배가 돼야겠구나 하는 거예요. 선배님들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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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완벽주의자?
하지원은 작품마다 늘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7광구'를 위해서는 바이크 자격증을 땄고 스킨스쿠버도 배웠다. 그게 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한 일이다. 매 작품마다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을 이어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7광구' 다음 작품인 '코리아'에서는 탁구선수가 돼 고된 훈련을 이어갔다.
"저희 매니저는 제가 촬영 안 할 때가 더 싫을걸요. 제가 스케줄을 만들어요. 웨이트 트레이닝에 필라테스, 레슨 이런 식으로 아주 타이트하게 짰다가 어느 순간 너무 힘들어서 보면 다 제가 만든 일이에요. 저한테 '바보' 이러기도 하고, 힘들면 그냥 며칠 놀기도 해요. 작품도 어쨌든 제가 선택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힘들지만 신나게 살아요. '7광구' 괴물과의 사투. 정말 힘들지만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죠. 정말 힘이 나는 건 고생해서 찍은 작품을 관객이나 시청자께서 사랑해 주실 때에요. 그 힘 때문에 또 다음 작품을 하는 것 같고요."
누군가는 일 중독이 아니냐 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혹시 안 드는 건 아니냐고 했다. 곰곰히 잠시 생각하던 하지원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을 바꾸면 되는 일이란다.
"저는 점점 촬영장이 더 즐겁고 좋아져요. 신인 땐 '나도 내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 '왜 내 인생은 없을까' 불만도 많았어요. 어느 순간부터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해준이든 길라임이든 누구든 그 인물들로 보낸 시간들이 내 인생이었구나 하는 거였어요. 그것 또한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더 신이 났어요. 해준이가 멋진 여자면 더 멋지게 터프하게 즐기는 거죠."
다만 그간 해온 역할들에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은 있다. 유독 부모님이 없는 가정에서 자란 역할들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하지원은 "어떨 땐 엄마 아빠한테 미안하다"며, '7광구'의 차해준이 아닌 사랑스러운 딸 하지원으로 돌아가 징징거렸다.
"아빠가 정말 가정적이세요. 힘들면 엄마랑 소주 한 잔 하면서 수다 떨 정도거든요. 엄마 아빠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는데, 작품 하면서 '아빠 이번에도 나 아빠가 없어' 이렇게 이야기할 땐 미안하다고 해야되나, 민망하다고 해야되나. 뭐라고 이야기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롤러코스터 타는 인생이 더 재미있잖아요. 그런 것도 해보고 싶어요. 부자인데 캔디처럼 착하고 귀엽고 좌충우돌하는, 사랑하는 남자는 가난해야되고요.(웃음) 여자 김주원요? 좋다좋다. (대본) 써 오세요. 제가 바로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