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심의수난사..75년 '미인'·'왜불러' 대량금지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1.08.2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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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한잔의 추억'이 수록된 '별들의 고향' OST, '아침이슬'이 수록된 김민기 1집, '그건 너'가 수록된 이장희 앨범, '미인'이 수록된 신중현과 엽전들 1집.


'술, 담배' 등의 사용 및 이용을 권장했다는 이유로 인기 포크듀오 10cm의 '아메리카노',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 등이 여성가족부에 의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선정된 것을 두고 현행 가요 심의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더욱이 서울행정법원이 25일 SM엔터테인먼트가 여성가족부 장관을 상대로 낸 청소년유해매체물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SM 손을 들어줌으로써 논란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앞서 여성부는 지난 1월 SM더발라드의 '내일은..'의 가사('술에 취해 널 그리지 않게' 등)에 '유해약물'이 언급됐다는 이유로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했었다.


하지만 심의를 통한 한국가요 수난사는 생각보다 역사가 길다. 우선 방송윤리위원회는 1963년부터 69년까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남진의 '비 내리는 영등포' 등 총 344곡에 대해 '왜색' '창법 저속' 등을 이유로 방송금지 처분을 내렸다.

이중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은 1967년 문공부가 주최했던 제2회 무궁화상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노래였다. 64년 발표됐다가 68년 왜색을 이유로 금지된 '동백아가씨'는 금지곡 선정 당시에도 '광복 이후 가장 많이 팔린 노래'를 금지한다고 말이 많았다.

그러나 대한민국 가요심의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시기는 역시 '대마초 파동'으로도 유명한 1975년이다.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예륜)는 정부의 '가요정화대책'에 발맞춰 이 해 6월 43곡, 7월 45곡 등 기존 발표곡을 무더기로 '금지가요'로 묶었다. 이 때 '금지가요'는 지금의 '청소년유해매체'가 당하는 불이익과는 비교가 안 된다. 해당 금지가요는 방송은 물론 어떤 형태의 공연이나 음반판매 등이 일체 금지됐다.


이 당시 금지가요는 특히 당대 히트곡이 대부분이어서 대중과 가요관계자들이 느낀 충격은 더욱 컸다. 대표적인 게 신중현과 엽전들이 74년 8월 발표해 이 해 음반 판매량 1위를 달릴 정도로 국민가요 대접을 받고 있던 '미인'. '한번 보고 두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로 시작하는 '미인'은 '퇴폐적 가사와 저속한 창법' 때문에 금지됐다.

송창식이 부른 '왜 불러'와 '고래사냥'도 함께 금지됐다. 이 두 노래는 이 해 4월 개봉한 영화 '바보들의 행진'의 OST로도 쓰였는데 단지 '시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지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당시 영화 내용 중 경찰의 장발 단속을 피해 주인공이 도망치는 장면에서 '왜 불러'가 나왔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무성했다.

이밖에 74년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에도 사용됐던 이장희의 '한잔의 추억'을 비롯해 '그건 너' '불꺼진 창', 이미자의 '기러기 아빠', 이승연의 '일요일의 손님들', 조미미의 '댄서의 순정', 윤시내의 '나는 열아홉살이에요' 등도 금지됐다. 이와 관련 이장희는 방송에서 "'그건 너'가 남한테 책임을 전가하는 내용이라고 금지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75년 가요 대학살' 직후 해당 금지곡이 들어가 있는 음반과 카세트 테이프가 오히려 판매가 늘어나는 기현상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금지가요는 노태우 정권의 6.29 선언 이후인 1987년 8월18일 당시 공연윤리위원회(공윤)가 186곡을 금지해제시킴으로써 복권됐다.

이때 해제곡을 금지사유별로 살펴보면 ▶왜색조 금지곡=동백아가씨, 뱃고동아 전해다오, 사나이 순정, 유달산아 말해다오, 이정표 ▶가사 퇴폐 및 창법저속 금지곡=거짓말이야, 겨울이야기, 고아, 그건 너, 기러기 아빠, 나는 몰라, 네온의 부루스, 댄서의 순정, 마도로스 도돔바, 맥시 아가씨, 미인, 한잔의 추억, 일요일의 손님들, 사의 찬미 ▶기타=고래사냥, 왜 불러, 아침이슬, 불꽃, 설레임 등이다.

공윤의 사전심의는 96년까지 계속됐다. 공윤은 앞서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 '시대유감'의 가사가 사회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금지곡 결정을 내렸고, 이에 서태지가 아예 노랫말을 뺀 연주곡만으로 '시대유감'을 내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낳았다. 결국 공윤의 음반 및 노래에 대한 사전심의제도는 96년 6월7일 폐지됐다.

이후 가요 심의는 개별 방송사가 사후심의를 통해 방송부적격 판정을 내리는 형태로 바뀌었다. MBC는 2000년 12월31일까지 자체 심의를 통해 방송부적격 판정을 내린 노래는 이현도의 '힙합'(영어가사가 너무 많아서) 등 468곡에 달한다. KBS도 비슷한 시기에 박상민의 '무기여 잘 있거라'(외설 퇴폐 불륜 조장), 서태지와 아이들의 '1996년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가사부적격) 등에 대해 방송부적격 판정을 내렸었다.

방송사 자체 심의와 함께 1997년부터는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보건복지가족부(현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에 의해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제도가 도입됐다. 비의 '레이니즘', 백지영의 '입술을 주고', 동방신기의 '주문-미로틱', 승리의 '스트롱 베이비', 쥬얼리의 '원 모어 타임' 등이 '선정적 가사' 혹은 '불건전 교제 조장 우려' 때문에 '19금 딱지'가 붙은 게 대표적 사례. 이승기의 '사랑이 술을 가르쳐'나 보드카레인의 '심야식당'은 '유해약물의 표현' 등이 '19금'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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