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PDⓒtvN 제공 |
"남자, 여자 몰라요. 여자, 남자 몰라요."
코미디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소리 내어 따라봤을 법한 대사. 남자와 여자 사이의 생각과 행동 차이를 맛깔나게 버무려낸 tvN '롤러코스터-남녀 탐구생활'의 메인 카피다. 지난 2007년 7월 첫 선을 보인 후 공감을 바탕으로 한 새롭고 기발한 코미디의 선봉에 선 '롤러코스터'(이하 '롤코'). 어느덧 사람들에게 '롤코'는 '나도 저런데'의 동의어가 됐다.
1회부터 100회를 넘어선 지금까지 4년째 굳건히 '롤코'를 지켜오고 있는 김경훈PD를 만났다.
-'롤코'는 당시 색다른 장르였다. 어떤 모토로 시작했나.
"원래 제목은 '카메라 스케치쇼'였다. 버라이어티와 이것저것 다 섞어보자고 출발했다. 주로 공감대와 연애문제에 초점을 맞췄지만 '롤코'는 아무거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시트콤, 교양까지 할 수 있다. 공개코미디 하면 떠오르는 게 '개그콘서트'고, 나도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분야, 야외코미디 쪽으로 나가게 됐다. 올(ALL) 야외로 만들어보자고 시작한 게 '롤러코스터'다.
-당시 '무한도전', '1박2일', '패밀리가 떴다' 등 리얼 버라이어티가 판치고 있었다. '롤러코미디'는 야외 코미디를 실내로 들어왔다고 봐야 하지 않나.
▶ 안으로 들어온 건 맞다. 버라이어티를 추구한 건 아니다. 코미디 장르에서 극본이 있는 걸 만들고 싶어 했다. '테마극장'처럼 정형화된 시나리오가 있는 걸 만들고자했다. 그런데 갇혀놓고 잘 짜여진데서 하거나 그런 게 없다. 그래서 겁날 때도 있다.
-코너 매 번 짤 때마다 아이디어 어디서 얻는가.
▶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인데, 모든 일을 할 때 어떤 포인트를 잡아야 될 지 생각하듯이 일상적인 얘기하면서 많이 얻는다. 흘러가는 얘기들이 다 아이템이 되는 것 같다. 뭘 하고자 추구를 했다면 공감대다. 특이한 얘기하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살아온 얘기도 많이 들어갔다.
-처음에 '롤러코스터'가 자리 잡기까지 서혜정 성우의 덕을 많이 봤다고 본다.
▶ 워낙에 유명하신 분이다. 예능 쪽은 거의 안 하시고 교양에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제의했더니 약간 당황하시더라. 그 분이 114멘트의 원조인데 우연히 114 안내멘트를 듣고 그 분을 떠올리게 됐다. 무미건조한 소리로 표현하려고 되게 고생을 했다. 감정을 넣어야 되는 게 정답이냐 고민하다가 감정을 뺐더니 재밌더라.
-가장 성공적인 코너는 뭐라고 생각하나.
▶ 생각하다시피 '남녀 탐구생활'(이하 남탐)이다. 회의하다 화장실 얘기가 나왔는데 내가 '손 안 씻을 수도 있다'라고 했더니 여자 작가들이 다 거짓말이라며 믿지 않았다. 때마침 팀장님이 화장실을 다녀오기에 물어봤더니 안 씻었다고 하더라. 남자PD 대 여자작가 구도로 말하다 '남탐'이 탄생하게 됐다.
ⓒ사진=tvN 홈페이지 |
-정가은은 어떤 배우인가.
▶ 코미디란 장르는 망가져야 하는데 이 예쁜 여자가 망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이 들었다. 왜 코미디언이 해야 될 자리에 슈퍼모델 같은 사람이 왜 할까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정가은은 '남탐'의 이미지와 맞으면서도 약간 남성적인 성격이라 내숭 같은 게 없다. 고생을 좀 많이 해서 그런지 몰라도 현장에서도 분위기 메이커 같은 행동도 많이 했다. 민망하게 처음 만난 자리에서부터 화장실 기마자세를 부탁해야 했다. 신인이라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이 앞서서인지 못한다는 것도 없었고 마찰도 없었다. 그것 때문에 많이 친해졌다.
-정가은을 있게 한 건 '남탐'인데, 중간에 하차했다.
▶ 정가은을 있게 했다는 건 본인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워낙에 힘들다보니까 건강이 안 좋아졌다. 한번 들어가면 18시간 정도 오래 찍는다. 잠도 못 자고 새벽까지 찍다보니 지쳤고 쉬고 싶었을 거다. 또 키가 큰 데다 힐을 신으니 허리가 안 좋기도 했다. 촬영요건이 정말 힘들었다.
-정형돈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 연기를 되게 잘 한다. 당시 정형돈에 대해 '웃기는 거 빼고 다 잘 한다'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우린 웃길 마음이 없었다. 공감대 부분이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누구보다 그 생활을 많이 한 사람이었다. '남탐' 남자의 생활을 가장 많이 하고 천재라고 할 정도로 이해와 숙지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현장에서 '정감독'이라 불렀다. 기본적으로 '남탐'은 경험이 없으면 표현하기 힘들기 때문에 아무리 연배가 높은 배우들도 힘들어했다. 자신의 경험에서 느끼는 감정 있어야 되고 애드리브도 세야 했다.
-잘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별로라 아쉬웠던 코너는 없나.
▶ 너무 많다. '루저전'이 그래도 굉장히 애착이 가고 아쉽다. '루저전'할 때 시나리오 쓰느라 작가들이 너무 괴로워했다. 공감이 빠진 대본은 우리한테는 의미가 없고 큰 액션 볼 거면 차라리 영화를 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롤코'를 오락으로 보기 때문에 공감이 있으면서도 세태가 담긴 시나리오를 짜내는 데 힘썼다.
-최근 새롭게 선보인 '홍대정태'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 김성덕CP가 맡아서 하는데, 댁이 홍대에 있다. 54살인데도 불구하고 젊은 분위기를 좋아해 마인드가 젊고, 홍대를 좋아한다. 홍대에만 있는 문화를 보여주고 싶어 한 데서 출발한 것 같다.
-김정태가 뜨고 나서 구상된 건가. 아니면 이전부터 만들었나.
▶ 뜨기 전부터 이미 짜여 있었다. 영화를 보고 캐스팅한 건데, 결정된 상태에서 '1박2일' 출연으로 떠서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같은 드라메디(드라마+코미디) 장르긴 하지만 '홍대정태'는 '루저전'과는 다른 느낌이다. '루저전'에는 공감이 살아 있었지만 '홍대정태'는 그냥 시트콤 아닌가. '롤코'의 색깔과 맞지 않는 것 같다.
▶ 색깔이 다른 판타지에 가깝다. 드라마라는 장르는 길게 끌고 나갈 때 공감만으로는 힘들다. 보는 드라마들도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다. 그래서 공감과 판타지를 조화시켰다.
-'롤코'의 최종 목표는 뭔가. 갈 방향이라고 해야 하나.
▶ 장수프로그램으로 가는 게 최종목표다. '개콘'을 10년 넘게 했듯이 오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고 싶다. 야외에서는 최고가 되는 게 목표다. '롤코 스타일', '롤코스럽다'라는 말 들을 때 기분 좋다. 스케일 크지 않고 어색하게 찍진 않으면 서도 '롤코 같네'라는 말 오래 듣고 싶다. MBC '일밤'도 계속 안 없어지고 장수하고 있다. '롤코'도 시청률이 확 높진 않더라도, 이슈가 안 되더라도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틀을 잡고 이 장르는 우리가 최고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