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 "공유 보고 딱 한 번 울었어요"(인터뷰)①

[★리포트]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1.09.1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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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균 기자.
누군가 정유미를 레몬과 식초 사이라고 표현했다. 상큼한 레몬과 시큼한 식초 그 사이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배우. 정유미는 '가족의 탄생'과 '차우' '내 깡패 같은 애인' '옥희의 영화' 등에 시큼상큼한 매력을 십분 발휘했다.

정유미는 깡패 같은 남자와 눈을 맞대고 이리저리 꼬이는 남자들을 상대하면서도 늘 상대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봤다. 때로는 당당하게 때로는 얄궂게.


그랬던 정유미에게도 '도가니'(감독 황동혁)는 힘든 선택이었다. '도가니'는 공지영 작가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교장과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폭행과 성폭력을 저지른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정유미는 "배우로서도 그렇지만 사람으로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도가니'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무거운 내용에 자칫 가슴 아픈 이야기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대답 안할래요.(웃음) 어쩌다보니 하게 됐다. 하고 나니깐 있어야 할 곳에 있었구나란 생각이 든다.

-기자시사회가 끝난 뒤 열린 간담회에서 원작을 읽지 않았다고 했는데. 다른 배우들이라면 원작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하기 마련인데.

▶시나리오가 너무 끔찍해서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실제 사건은 더욱 끔찍하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감독님께 했다. 그러면서 책을 읽으라고 하면 읽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감정을 잘 잡기만 하면 된다고 하시더라.

-흔히 시나리오가 정답이라고 하는데. 시나리오를 읽고 마음이 움직였나.

▶시나리오를 읽고 움직인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걱정만 앞설 뿐이다.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여인으로 출연했는데 오버하지도 않고 있을 곳에 있었던 것처럼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은데.

▶과연 내가 배우로서 또 사람으로서 여기에서 뭘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굉장히 치열했다. 결과에 의심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치열하고 잘 했다.

-어떤 치열함이었나.

▶시작부터 내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꾸며낸 이야기라면 '척'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 작품으로 들어가 그 인물이란 옷을 입어야 했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극 중 공유가 맡은 역은 아이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다른 사람들을 대변해 몰입하기 쉽다. 반면 정유미가 맡은 역은 정의롭지만 그만큼 따로 놀 수밖에 없는 인물이기도 한데. 영화 속에서 그 역할의 히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영화에 제대로 있고 싶었다. 연기자로도 사람으로도. 난 '도가니'에서 씬에서 노는 게 아니라 컷에서만 있다. 안에서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툭 나와야 했다. 그러다보니 조금 버겁긴 했다. 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게 5일인데 10일을 바랄 순 없지 않나. 그만큼 더 절실하긴 했다.

-실제 청각장애인들이 법정 장면에 출연했다. 그들의 감정을 받아서 연기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면 카메라가 오지 않아서 힘들었다고 했는데.

▶이왕이면 더 진짜로 하는 것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도움을 받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서 용을 써야 하니깐. 감정이 끓어올라서 법정 장면을 찍다가 카메라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나중에 스태프들이 앞에서 막기도 했다.

-감정을 나눌 상대도 없고 리액션도 드문 역이라 더 힘들었을 것 같은데.

▶한 번 울었다. 내가 완벽한 인간도 아니고. 그 역할의 마음이 느껴져서 뭘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땐 버거웠다. 기대가 생기면 욕심이 커지니 더 버리려 했다. 영화에서 기찻길 장면이 나온다. 공유와 아이가 얽히는 장면이다. 밤새 촬영을 기다리면서 둘이 찍는 것을 지켜봤다. 나가서 뛰어들고 싶더라. 울었다. 날이 밝았고 그날 촬영은 결국 다음으로 연기했다. 기다리는 건 문제가 없다. 오히려 더 좋은 장면을 찍기 위해서 기다려야 한다면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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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균 기자


-'내 깡패 같은 애인'과 '옥희의 영화' '도가니', 모두 다른 역이지만 정유미만의 공통점이 느껴진다. 레몬과 식초 사이에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글쎄. 다른 영화들이라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각 작품들마다 내가 아니니깐. 어떤 하나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레몬과 식초라..그렇다면 발사믹 같은 느낌인가.(웃음)

-정유미가 4차원이라고들 하는데.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데.

▶정말 그렇게 느껴지지 않죠. 날 알려고 하지 않으니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좋은 배우지만 애매한 위치인 게 사실이다. 대중성에 조바심 같은 건 없나.

▶그런 생각은 안해 봤다. 많지는 않지만 기회도 오니깐. 뭐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엎어지기도 하고. 그렇다고 하고 싶은 걸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매모호한 게 사실이다. 자리를 잡았다고들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누구는 재는 뭔데 저렇게 기회를 잡나고 하기도 하고. 날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참 다양한 것 같다. 그래서 더 조바심 같은 것은 안 느낀다.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를 이자벨 위페르와 찍었다. 또 홍상수 감독과 '리스트'를 유준상과 찍었고. 찍은 영화들 말고 찍을 영화들은.

▶홍상수 감독님은 영화를 영화로 찍는 분이다. 너무 감사하다. 다음 작품은 아직. 다양한 작품들 제의가 왔지만 안 되는 건 더디게 안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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