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도가니'의 공유,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와 김상경, '그놈 목소리'의 설경구, '아이들…'의 박용우, '이태원 살인사건'의 장근석 |
'그 놈'을 정말 잡고 싶다…. 실화를 다룬 한국 영화의 상당수가 미해결 범죄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 이형호군 유괴 살해사건,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사건 등이 영화화돼 새롭게 조명됐다. 유족과 사건 관계자들이 생존해 있고, 분노와 안타까움이 남아있는 사건, 그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 뛰어든 배우들의 얼굴은 유난히 많은 여운을 남긴다. 아마도 그들이 연기한 영화 속 인물만큼이나 '그 놈'을 정말 잡고 싶고, 온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진심 때문일 것이다.
"밥은 먹고 다니냐"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장면. 화면 가득히 잡힌 송강호가 그만 털어놓은 이 한마디. 범인이어야 했던, 마지막 용의자에게 대한 연민을 드러낸 그 순간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와 맞물려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화성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은 현재까지도 한국 스릴러의 대표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 미신까지 동원해 어떻게든 범인을 잡고 싶어하는 시골 형사로 등장한 송강호는 '역시 송강호'다운 모습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놈 목소리'의 설경구 또한 지워지지 않는 얼굴을 남겼다. 이형호군 유괴 살해사건을 다룬 이 영화에서 그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됐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나즈막한 범인의 목소리와 타들어가는 속으로 미친 듯이 그를 쫓는 아버지 설경구의 모습은 영화 내내 관객의 마음을 조여온다. '현상수배극'을 표방한 영화는 '그 놈'을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지난해 개봉한 '아이들…'은 1991년 3월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의 비극을 담았다. 2002년 애타게 찾던 다섯 아이들은 시신으로 발견됐고, 타살인 것으로 드러났으나 이미 2006년 이미 공소시효는 끝났다. 그 답답함은 배우의 얼굴에도 나타난다. 특종을 잡기 위해 사건에 뛰어든 다큐멘터리 PD로 등장하는 박용우의 얼굴은 점점 예민하게, 또 치열하게 변해간다.
답답한 실화사건이 바탕이 된 영화는 또 있다. 죽은 피해자는 있으되 살인을 저지를 가해자는 없는 이상한 사건.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이태원에서 벌어진 대학생 피살사건을 그렸다. 당시 2명의 유력한 용의자는 모두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신 한류를 이끄는 한류스타 장근석은 당시 영화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분해 배우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결국 진실을 가려내지 못한 이들 사건은 모두 15년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앞선 세 사건은 2006년 이후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그러나 관심은 변화를 이끈다. 현재는 법이 개정돼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25년으로 늘어났다.
22일 개봉한 공지영의 동명 소설의 '도가니' 또한 충격적인 실화를 담았다. 앞선 사건들과 다른 점은 그 범인들이 밝혀졌고, 이미 법정까지 섰다는 점이다. 2005년 광주의 청각장애인학교에서 교장과 교직원들이 상습적으로 학생들을 성폭행, 추행하고 이를 묵인했던 사건은 이미 알려져 재판까지 치렀다. 흉악한 범죄에도 터무니없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가해자들은 여전히 교단에 서고 있다. '도가니' 역시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
사건을 고발하는 한 교사로 분한 공유는 달콤한 로맨틱가이를 벗어던진 모습이다. 참을 수 없는 부조리를 고발하고 맞서게 된 평범한 남자의 변화를 묵직하게 그려냈다. 공유는 세련미 철철 넘치는 멋쟁이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는 배우임을 증명하며, 실화의 잊지 못할 얼굴 하나를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