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욱 기자 dwyang@ |
그랬던 그가 4년만에 '도가니'를 세상에 선보였다. '도가니'는 2005년 광주의 한 장애인학교에서 교장과 선생,교직원들이 학생들을 성폭행과 폭력을 행사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어두운 이야기에 사회 부조리가 직접적으로 묘사돼 흥행 전망이 밝지 않았다. 하지만 개봉 6일만에 100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 영화에 대한 반향으로 당시 사건에 대한 재조사 요구가 들끓는 등 사회적인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황동혁 감독은 "대학교 시절 사회문제에 치여서 영화를 하기 위해 떠난 것인데 다시 사회 문제 중심에 섰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현재 뜨겁게 일고 있는 '도가니' 붐에 대해 "영화 이외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너무 반응이 뜨거워 감사하는 한편 두렵고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사회파 감독도 아니고 밝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도가니'로 또 다시 어둡고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이쯤 되면 운명 아닌가.
▶운명적인 것 같기도 하고. 90학번(서울대 신문학과)인데 당시 학교에서 사회 문제에 치여 살았다. 졸업할 때쯤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 와중에 비디오 카메라가 생겨서 뭔가를 찍는 데 재미를 느끼고 살았다. 그렇게 영화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사회 문제로 돌아와 있다. 사회 문제에 지쳐서 영화를 시작했는데 그 가운데로 들어와 버렸다.
-시작부터 어려운 기획이었다. 흥행이 되기도 어려운 소재였고. 밝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도 불구하고 가시밭길을 택한 이유는.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제안을 받고 원작을 일주일 동안 읽었다. 너무 힘들어서 읽다가 덮고 읽다가 덮었다. 어떻게 영화를 만들까 답답했다. 하겠다는 대답을 하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원작과 비교도 될 테고 너무 우울한 이야기가 누가 와서 보겠냐는 게 다 부담이었다. 그런데 공지영 작가가 후기에 이런 글을 썼다. 당신도 기사에서 봤다고 했다. 집행유예가 선고했을 때 법정에 농인들의 알 수 없는 울부짖음이 가득찼다는 글귀였다. 나 스스로가 이런 장면들을 화면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또 내가 처음 책을 받은 게 4년 전이다. 21세기에 OECD 가입 국가에 버젓이 이런 일이 생기는 데 나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실화에 원작까지 잘해야 본전이라고 할 만큼 어려운 작업이었는데.
▶양쪽 다 신경 쓰였다. 실화를 왜곡했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원작을 망쳤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으니. 잘해야 본전이고 못 만들면 다시 영화를 못 만들 수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 솔직히 영화를 다시 못 할 수 있단 생각을 하며 만들었다.
그러면서 이 영화를 왜 만들까 생각을 했는데 사건을 환기시키고, 또 이 사건이 어떻게 묻혀져 갔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사회적인 공분이 뜨겁게 일고 있는데. 재조사 요구도 빗발치고 있고.
▶알린다는 게 우리의 목적이었지만 (이 영화를) 봐줄지 조차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산을 적게 받고 시작했다. 그래도 봐주신 분들 사이에선 뭔가 영화 외적으로 반응이 있겠구나란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이렇게 뜨겁고 빠르게 일어나니 놀라고 당황스럽고 한편으론 걱정도 된다.
-영화가 울음 포인트도 없이 쉬지 않고 끝까지 달려간다. '마이파더' 때는 관객의 눈물을 터뜨리는 장치를 만들었었는데. 울게 만드는 게 더 상업적이지 않았겠나.
▶'마이 파더' 때 사실 좋진 않았다. 배우가 안 우는 데 관객이 울어야 좋은 영화지 배우가 앞장서서 울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때는 데뷔 감독이라 울려야 성공한다는 요구가 많았다.
'도가니'는 그렇게 안 만들고 싶었다. 울리려고 만든 게 아니다. 그저 강인호(공유)의 감정만 따라가도 울컥하게 만들고 싶었다. 오히려 짜장면을 먹는 데 더 울컥하길 바랐다.
-음악으로도 울리지 않던데.
▶고민이 많았다. 영화가 절제된 만큼 음악은 울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고 고춧가루 부어서 비벼되는 음악을 넣고 싶진 않았다. 음악도 다른 영화들의 절반 정도 밖에 넣지 않았다.
양동욱 기자 dwyang@ |
▶원작에는 더 강하고 셌는데 줄이기도 하고 덜어내기도 했지만 핵심적인 이야기들을 담으려 했다. 공지영 작가가 소설은 실제의 반도 안됐다고 했으니 영화는 반에 반도 안됐다고 할 수 있다.
조두철 사건도 그렇고 세상에는 이런 사건들이 많지만 듣고서 잊어버린다. 불편하더라도 아이들의 느꼈을 감정을 관객이 간접체험하도록 해보고 싶었다. 진짜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 설 수 있도록.
-아역 배우들이 없었다면 '도가니'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역들이 어려운 촬영을 한 데 대해 비난의 목소리도 나오는데.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 영화 시스템에선 아역들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기준이 없으니깐. 사실 그 장면들은 책 읽을 때부터 제일 걱정이었다. 어떻게 찍고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오디션 과정부터 부모님을 설득하고 촬영할 때도 부모님 입회 하에 찍었다. 노출부터 걱정하셔서 촬영기법으로 그렇게 안해도 할 수 있다고 일일이 설명 드렸다. 성인 배우들한테는 상황에 대한 설명을 했지만 아역배우들에게는 상황은 이해시키기 않고 '자, 아빠랑 같이 목욕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액션만 줬다.
-선한 의도로 만든 영화는 비판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선한 의도에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빠른 진행을 시도했다. 첫 장면은 공포영화 도입부 같고 상당히 장르적인 느낌인데.
▶선한 의도라 성공해야 한다기보단 무조건 잘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재미있냐고 묻기 어렵다. 공감하시냐요라고 물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 절반 전에 재판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빨라야 했다. 누구는 재판 장면이 지루하지 않냐고 한다. 하지만 재판 장면이야말로 이 사건이 어떻게 묻혀지는지 핵심이라 시나리오 그대로 찍었다.
-공유는 워낙 부드러운 이미지가 있어서 영화에 녹이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텐데. 정유미 역은 극에서 히스토리가 사라져버렸고.
▶공유는 이미지에 안 맞지 않냐란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현재 캐릭터로 각색했다. 원작에선 아내가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하는데 공유에게 그런 아내가 있다는 게 상상이 안됐다. 그래서 어머니를 둔 것이다. 정유미는 정말 미안하다. 히스토리가 있는데 속도감을 위해 편집됐다. 원작에선 사실 등장인물이 누가 제일 힘든가를 경쟁하는 것 같다. 영화에서 그 이야기를 다 담을 순 없었다.
-1인2역을 맡은 악역인 장광의 연기도 매우 탁월했는데.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지만.
▶무대 인사 때마다 그래서 설명한다. '슈렉' 목소리 연기하신 분이라고. 실제로 쌍둥이 인줄로 아는 분들도 많다. 독실한 크리스찬이라 연기하시기 더 힘들었을텐데 정말 훌륭하게 해주셨다. 합성 때문에 가장 늦게까지 현장에 있어야 하셨다. 환갑이 넘으셨는데 싫은 소리 한 번 안하셨다.
-영화가 영화로 끝나지 않고 다른 이야기로 더 커져 버렸다. 영화를 만든 사람으로서 불편하진 않나. 황동혁보다 공지영 이름이 더 들리기도 하는데.
▶공지영 작가야 원래 유명하신 분이시고.(웃음) 그런 건 생각도 안해봤다.
다만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건드리니 어느 정도 영화로 끝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뜨겁게 달아오를 진 몰랐다. 영화 자체보다 사건이 더 주목받으니 주객이 전도된 느낌도 든다. 솔직히 요즘 복잡한 심경이다.
-현재 반응은 도가니가 아니라 냄비처럼 끓어오르는데. 이 영화를 통해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도 많고.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교훈을 얻기 위해 극장을 찾는 사람은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를 관객이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려 노력했다. 가르치지 않고.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순 없다. 다만 영화에 몰입했다면 지금 살고 있는 사회를 조금이나마 뒤돌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가니'에서 마음에 드는 대사 하나를 꼽자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바꿀까봐 싸운다는 대사가 있다. 원래 책에선 경찰이 정유미가 맡은 역에게 "왜 이렇게 살아요"라고 물으면 하는 말이다. 너무 좋아해서 마지막 편지에 넣었다.
-본의 아니게 사회파 감독이 돼 버렸는데.
▶사회파 감독이란 말이 이젠 싫다기 보단 부담스럽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도 아니고 난 그저 평범한 강인호 같은 사람인데 말이다. 그래도 영화가 이렇게 커져 버렸으니 고민이다. 밝고 가벼운 이야기를 들고 나오면 변절이란 소리를 듣지 않겠나.(웃음)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을 하고 '괴물'이란 영리한 블록버스터를 했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