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민상 ⓒ이동훈 기자 photoguy@ |
"신인이죠."
툭 내뱉는 말이 아니었다. 눈빛이 선하고 편안한 인상이다. 잘 웃는다. 말투도 단정하고 조심스럽다. 배우 김민상(43)에게 받은 인상이다. 지난 11일, 개봉 20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도가니'(감독 황동혁·제작 삼거리픽쳐스, 판타지오)의 주역이다.
'도가니'는 2000년부터 4년간 광주 인화학교에서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이 장애학생을 상대로 성폭력을 휘두른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
김민상은 영화에서 청각장애를 지닌 남학생에게 성폭행과 폭행을 일삼는 비열하고 소름돋는 박보현 선생을 연기했다. 관객의 공분을 살 정도로 영화에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실제 김민상은 신사, 아니 소년 같았다. "인터뷰를 해본 적이 없어서 어색하고 너무 어설플 것 같다"고 수줍게 웃음으로 첫인사를 건넬 정도로.
"'도가니' 출연이후 포털사이트 인물정보에 내가 검색이 되더라"고 신기한 듯 두 눈망울에 빛을 내며 말했다. 그는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졸업하고 1992년 연극 '바리데기'로 무대에 처음 섰다. 관객을 처음 만난 게 19년 전이다. 연극판에서는 '훈남'으로 통한다. "영화업계에서는 나는 신인이다"고 배시시 웃었다.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사진제공=삼거리픽쳐스> |
그렇다. '도가니'는 김민상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사실상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오디션을 통해 경쟁했고, 당당하게 배역을 얻어냈다. 김민상은 '도가니'를 운명이라고 했다. 김민상은 지난해 10월 말 갑상선암수술을 했다. 휴식을 취하며 회복을 하고 있었고, 컨디션이 좋아졌지만 대부분의 무대는 진행중인 상태로, 연극무대에 설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 '도가니' 오디션 기회를 잡게됐다. 당당하게 배역을 따냈지만, 쉽지 않은 출연 결정이었을 것이다. 만감이 교차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나리오를 읽고 이런 사람 같지도 않은 사람이 있나 싶었다. 마지막장을 보는 순간, 그 나쁜 사람(박보현 선생)의 감정보다는 '나는 살아가면서 뭐했지'라는 감정이 일었다. '기여 하겠다'고 생각했다."
김민상은 연기를 하며 부정(父情)을 떠올리며 연기했다고 고백했다. 영화에서 박보현 선생이 남학생을 집으로 데려가 함께 목욕을 하며 추행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김민상은 이 장면에서 아이의 엉덩이를 쓰다듬는 연기를 했다. 이 장면은 관객들이 손꼽는 추악한 장면 중 하나다.
배우 김민상 ⓒ이동훈 기자 photoguy@ |
"사실 아이들과 그런(목욕 신) 걸 연기한다는 게 힘들었다. 때리는 장면을 연기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보시는 분들은 진짜 때리는 것으로 안다. 아니다. 우연히 스치는 경우는 있었지만... 샤워신, 힘들었다. 박보현 선생은 그 순간만큼은 민수(피해 아동)를 사랑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들을 사랑하는 연기를 했다. 그랬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 더욱 더 징그럽게 느꼈을 것 같다."
김민상은 이 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는 "어찌하다보니 이것저것이 맞아 떨어져서 그 장면이 강한 인상을 심어 준 것 같다. 너무 힘들었다. 몰입이 힘들었다. 순간은 내 아들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재차 말을 이어갔다. "연기의 몰입이라는 게 한번에 확 늘어난다.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건 내려 놓는 작업인 것 같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당시 그랬다. 나도 내 연기에 놀랐다."
"절대 정당화 될 수 없는 인물이지만, 내 머릿속에서 악역을 철저하게 차단을 시켰다. 단지, 그 사람(박보현 선생)으로 나를 몰입시켰다. 실존에 있는 악역을 연기한다는 게 몰입도를 높였다. 배우로서 잘하고 싶었다. 감독님이 도움을 많이 주셨다. 감사하다."
김민상은 단언했다. '도가니' 출연에 후회는 단 1%도 없다고.
"공분을 사든, 어쨌든 나는 뿌듯하다.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꿨다고들 하시는데, 나는 영화를 봐주신 분들이 세상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영화에 참여했다는 건 오히려 즐거운 일이다."
사실 연극무대는 그의 '숨'과 같은 존재지만, 결혼 4년차인 그는 잠시 연극판을 떠났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경제적인 이유에서였다. 사실 연극무대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는 결혼생활을 유지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 이는 대부분 연극인들의 말 못할 슬픈 현실이다.
"결혼을 하고 동대문에서 노상에서 신발도 팔아봤고, 신발 도매상도 했었다. 여러가지 일을 했었다. 경제적인 부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무대 위에 있을 때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됐다. 연기를 하다가 죽는 게 내 바람이다. 얼마나 행복할까."
"연기자는 많아도 배우는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는 천상 배우다.
배우 김민상 ⓒ이동훈 기자 photogu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