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범 기자 |
'갑자기 파란만장의 아이콘이 됐다'고 장난스럽게 말문을 열었다가 큰일 날 뻔 했다. 배우 박용우(41) 이야기다. 연이어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어릴 적 너무 소심해 '자폐증' 정도였다'는 이야기, '힘들어 '자살'도 생각했었다'는 이야기가 기사로도 나왔던 터.
박용우는 "모두들 문맥을 다 떠나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며 대체 왜 그러냐고 도리어 질문을 쏟아낼 기세였다. 그의 짜증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다. 연기자로 살아온 지 18년. 박용우는 갑작스레 그런 우울한 단어가 자신을 설명하는 수식어가 되어야 할 필요가 없는 배우다. 투명한 눈으로 진심을 말하는 연기자다.
오는 2월 1일 개봉을 앞둔 '파파'에서 박용우는 투자금을 들고 도망간 후배 매니저를 잡으려고 기를 쓰고 미국에 온 매니저 춘섭 역을 맡았다. 제목인 '파파'가 바로 그를 가리키는 말이다.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지 않으려 위장결혼을 했으나, 하룻만에 본의 아니게 여섯 아이들의 아빠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박용우는 그렇게, 아빠 역할이 도통 어울리지 않는 남자가 되어 낯선 미국에서 고아라를 비롯한 6명의 어린 친구들과 어울려야 했다. 고생을 각오한 건 시나리오 때문이었다. 재미, 감동, 여운 3박자가 그 안에 있었다. '밝고 따뜻한 이야기고, 아이들이랑 하니까 보듬어주면서 하면 되겠구나' 박용우는 생각했다. 그런데 복병이 있었다.
"12시간 찍고 12시간 쉬는 게 미국 스태프의 시스템이에요. 여유가 있죠. 그런데 그것 때문에 한국 배우나 스태프가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여기선 밤을 새우는 일이 부지기수라 거기에 단련이 돼 있으니까 심리적으로 불안하기도 하고, 12시간 촬영 일정에 맞추려니까 모든 게 턱없이 부족한 거죠. 거꾸로 12시간을 24시간처럼 촬영해야 했어요. 다 제작비인데 회차를 여러 번 갈 수도 없잖아요. 프리프로덕션을 충분히 진행키로 했었는데 가자마자 바로 촬영이 시작된 거예요. 이건 뭐, 정말 과장되게 말하면 물 한 모금 마실 시간이 없었다니까요. (2개월) 기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한국이었다면 6개월 찍을 분량을 그 기간, 그 회차 안에 끝내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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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모를 고충도 있었다. 그가 맡은 매니저 춘섭은 단순 무식의 끝을 달리는 시끄러운 인물. 대사가 많고 동작이 크고 액션도 빨랐다. 자연히 배우의 에너지 소모도 컸다. 그러나 늘 그렇듯 아이들이 우글거리는 현장은 늘 우선순위가 아역 배우들. 그 바쁜 일정 속에서도 박용우는 카메라에 잡히지 않더라도 외국인 아역 배우들이 감정을 잘 잡고 연기할 수 있도록 함께 연기를 해주고 수차례를 반복해야 했다. 노래와 춤을 함께 소화해야 했던 고아라를 배려해야 했던 것도 박용우였다.
"생각보다 에너지 소모가 심하더라고요. 제가 예민한 편이어서 잠을 잘 못 이루는 편인데 그거 다 핑계예요. 불면증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어요. 숙소 오면 바로 기절했다가 눈 뜨면 아침, 그리고 바로 촬영장으로 직행했죠.
현장에서 감독님 별명이 '원 모어 타임' 이었는데 저는 최대 세 테이크를 안 갔어요. '오케이 가자' 하시는데 초반에는 '나를 믿어주시는구나' 하다가 나중엔 '이게 뭔가…' 이렇게 됐죠. 이런저런 게 겹쳐 정말 못 참겠다 했던 날 한 번은 마음먹고 감독님이랑 싸워볼까 했어요. 그런데 감독님 얼굴을 보는데 거의 시체가 된 얼굴로 '용우야 나 너무 힘들다' 그러시더라고요. 아이구, 말을 못하겠어요. 감독님은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애들 구슬려야지, 미국 스태프랑 싸워야지, 시간이랑 싸우고 제작비랑 싸우고. 사람 하나 죽겠구나 싶어서 다시 열심히 했어요.(웃음)"
이제야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는 달라진 현장 덕에 생긴 장점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가며 촬영하느라 생긴 미운 정 덕에 자연스럽게 춘섭의 마음에 동화가 됐고, 시간이 지나며 그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지는 일도 똑같이 경험할 수 있었다.
"자식이 그런 느낌이라면 빨리 결혼해서 아이가 생겼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자식이 '웬수'가 되는 걸 너무 많이 봤어요.(웃음)"
시간이 급하니 현장 편집본을 보길 좋아하는 박용우의 평소 스타일까지 바뀌었다. 모니터링 한 번 한 적이 없을 정도였다. 박용우는 아무 것도 재지 않고 연기만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체되는 시간 없이 촬영하니 감정선 또한 흐름대로 이어졌다.
"진솔한 연기, 그게 진심인데 또 그게 제일 힘든 거거든요. 악조건 때문에 오히려 그 진심이 발휘된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해가지고' 이런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는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대견스럽기도 해요. 그렇게 고생하고 밟힐수록 성장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제 성향 자체가 다 쏟아내질 않으면 뭔가 개운치가 않거든요. 이번엔 속이 다 너무 후련해요. 지금은 다 진이 빠진 다음에 조금씩 충전하든 단계죠. 아, 그렇다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고생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웃음)"
ⓒ이기범 기자 |
영화 이야기, 미국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돌고 돌아 화제는 처음 이야기했던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로 돌아왔다. 박용우는 "현실은, 특히 요즘은 중첩된 이미지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처음 얘기했던 방송만 봐도 그래요. 저는 이미 자폐증 걸린 사람, 자살 기도했던 사람이 돼서 눈빛이 슬프다는 얘길 요즘 들어 들어요. 선하다, 맑아 보인다 이런 것도 이미지죠. 반면 제게도 악함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걸 보여주면 그게 또 제 이미지가 될 수 있죠. 나중에 한번 보여드릴게요.(웃음)"